클림트의 기적이 뭔가요?

[전시후기]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 — 감춰진 얼굴, 돌아온 초상화

by Jieunian

정확히 말하면 <클림트와 리치오디의 기적>이다.
지난 12월부터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명으로, 도슨트 해설과 함께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전시 제목에 ‘클림트’가 들어가 있지만, 이 전시는 클림트만의 전시라기보다는 그가 등장하기 직전,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이탈리아 회화의 흐름을 함께 보여주는 전시에 가깝다.


전시는 이탈리아 피아첸차에 위치한 리치오디 미술관(Collectione Ricci Oddi)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흔히 ‘주인공’으로 불리지 않았던 화가들의 작품이 차분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끝에서, 클림트의 한 점이 등장한다.






풍경 '영혼의 구실' : 안토니오 폰타네시


전시의 초반부는 예상보다 어둡다.
안토니오 폰타네시(Antonio Fontanesi)의 풍경화가 그렇다. 그는 자연을 그렸지만, 그 풍경은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흐린 하늘, 눌린 색조, 화면 전체를 감싸는 묵직한 정서가 먼저 다가온다.

안토니오 폰타네시.jpg 안토니오 폰타네시 <토리노의 포 강가에서>,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폰타네시는 이탈리아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인물이었고,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그가 그린 풍경이 낭만적이지 않은 이유는, 자연이 아니라 시대의 정서를 품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메이지유신 직후 일본 정부의 초청을 받아 일본 최초의 서양화 교육을 담당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1876년, 그는 도쿄 공업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의 전신)에서 서양식 풍경화를 가르쳤고, 일본 근대미술 초기에 큰 영향을 남겼다. 한 나라의 격동기를 통과한 화가가, 또 다른 나라의 근대를 가르쳤다는 사실은 그의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일상을 크게 그리다: 스테파노 브루치

스테파노 브루치(Stefano Bruzzi)의 작품으로 넘어가면 화면의 온도가 조금 바뀐다.
리치오디 미술관이 위치한 피아첸차 출신 화가인 그는, 목가적인 풍경과 동물을 자주 그렸다. 이전까지 회화의 중심이 아니었던 ‘일상의 장면’, ‘평범한 풍경’을 큰 화폭에 올려놓는다.

그의 그림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인상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을 충분히 바라보는 태도는, 이후 인상주의로 이어질 감각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스테파노 브루치_반항아들.jpg 스테파노 브루치, <반항아들>, 1890-1895, 캔버스에 유채, 71×113cm,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STEFANO BRUZZI - Siesta - Óleo sobre tela - 1900.jpg 스테파노 브루치, <낮잠(Siesta)>, 1900, 캔버스에 유채,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감정을 담은 풍경: 조르지오 벨로니

조르지오 벨로니(Giorgio Belloni)의 풍경은 보다 주관적이다.

전체를 설명하려 들기보다, 잘려 있는 장면과 근경에 집중한다. 그의 풍경은 장소를 보여주기보다는 감정을 전달한다.

Image (1).jpg 조르지오 벨로니, <풍랑 (Storm Surge)>, 1910, 캔버스에 유채, 90×140cm, 리치오디 현대미술관



위 그림에서는 거친 파도와 무거운 구름이 화면을 뒤덮지만 이상하게도 공기는 고요하다. 소리 없는 파도, 곧 비가 쏟아질 듯한 회색빛 대기. 벨로니는 장소를 재현하기보다 분위기를 그려낸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설명적이기보다 감각적이고, 천천히 보고 있으면 날씨보다 마음의 상태가 먼저 읽힌다.


클림트가 후기 풍경화에서 자연을 단순한 재현이 아닌 '우주의 한 단면'으로 바라보았다면, 벨로니는 그 단면을 정서의 언어로 번역한 화가에 가까웠다. 자연이 외부 대상이 아니라 내면의 풍경이 되는 순간 — 벨로니의 회화는 그 지점에서 비로소 재미있어진다.



세기말의 시선, 여인을 바라보다: 자코모 그로소

자코모 그로소(Giacomo Grosso)의 작품 앞에서는 시선이 잠시 멈춘다.
어두운 실내, 고전적인 누드의 구도. 그러나 이 여인은 이전과 다르다.

in-the-mirror-giacomo-grosso.jpg 자코모 그로소 Giacomo Grosso <거울 속(In the Mirror)>, 200x75cm, 리치오디 현대 미술관

짧은 머리의 신여성은 거울을 바라본다. 작품의 제목처럼 In the Mirror,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여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존재였다. 고전주의적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도발적인 시선을 담아낸 이 그림에서는 (고전주의 여성 누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겨털!이 보인다), 이른바 ‘세기말 에로티시즘’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클림트가 성서 속 유디트를 관능의 얼굴로 재해석한 배경 역시, 이러한 시대적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탈리아에도 인상주의가 있었다: 마키아올리 화파

캡처.PNG 페데리코 잔도메네기 (Federico Zandomeneghi), 흰색 칼라를 한 소녀 (Girl with the White Collar), 41x3305cm, 1890


페데리코 잔도메네기(Federico Zandomeneghi)는 이탈리아 인상주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출발은 이탈리아였지만, 그는 파리로 건너가 에드가 드가와 교류하며 프랑스 인상파의 한 축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부르주아적이지만 과장되지 않고,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조용히 존재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마키아올리' 화파는 프랑스 인상주의 보다 앞서 자연과 빛, 색을 연구한 화가들로 평가된다. 이들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형태보다 빛, 색 덩어리 (macchia=얼룩, 색반점)가 먼저 보이는데, 이 특징 때문에 마키아올리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가 인상주의라고 부르는 감각이 결코 프랑스 한 나라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클림트의 기적 <여인의 초상>

클림트-여인의초상.PNG (좌) 여인의 초상; (우) Backfisch (The Adolescent)


전시의 마지막에 놓인 작품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여인의 초상>이다. 이 작품이 ‘기적’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림 자체보다도 그 이중 초상화의 사연에 있다.


당시 피아첸차 리치오디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보던 한 학생이 졸업 논문?작성 중 사진으로만 남아 있던 다른 클림트 초상(당시 ‘분실작’으로 알려져 있던〈젊은 여인의 초상/Backfisch〉)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점을 알아챘고 이후 엑스레이 분석을 통해 현재 보이는 <여인의 초상> 아래에, 다른 초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클림트가 기존 초상을 캔버스 위에 남겨둔 채, 그 위에 다시 그려 덮었다는 뜻이었다.


작품의 운명은 여기서 더 극적으로 꼬였다.
이러한 놀라운 발견을 기념하며 전시를 앞두고 준비하던 시기에 작품이 도난 당한 것이다. 사건 직후 그림의 '액자'만 미술관 지붕 위에서 발견되면서 “천창을 통해 훔쳐 달아났다”는 식의 시나리오가 퍼졌다.


그리고 2019년 12월, 반전이 일어났다. 미술관 외벽의 담쟁이를 정리하던 정원사들이, 외벽의 숨겨진 공간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 공간에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그림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그림이 바로 23년간 사라졌던 <여인의 초상>이었다. 이후 감정을 거쳐 2020년 1월 진품으로 확인되었다.


검은 봉지는 작품이 분실되었던 시기보다 훨씬 뒤에 제작된 봉투였고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것에 비해 작품은 아주 깔끔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Image.jpg 저런 외벽에 담쟁이 덩굴로 가려진 쇠문이 있고, 그 안의 검정봉지에 담겨진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모나리자가 도난 사건을 계기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듯, 작품의 뒷이야기는 때때로 작품의 생애를 다시 쓴다. 겹쳐진 얼굴, 사라졌다 돌아온 시간, 우연히 다시 발견된 서사까지.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품은 초상은, 언젠가 클림트의 작품 중에서도 특별한 방식으로 불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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