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 황금빛 곡선과 불안의 직선
1900년 무렵의 비엔나는 이상한 도시였다.
수세기 동안 유럽을 지배해온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라는 이름은 여전히 찬란했지만, 그 찬란함은 이미 균열을 품고 있었다. 제국의 권위는 흔들렸고, 전쟁과 불안은 서서히 일상 안으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변화의 속도에 압도될수록 더 절실히 새로움을 갈망했다. 기존의 미술 제도와 취향을 깨고 ‘지금’의 감각을 표현하겠다는 열망, 그 갈망이 모여 탄생한 것이 바로 빈 분리파(Wiener Secession)였다.
그 한복판에 두 화가가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한 사람은 황금과 곡선으로 시대를 매혹시켰고, 다른 한 사람은 선과 뼈, 불안으로 인간을 해부했다.
같은 도시, 같은 시대. 그러나 두 사람의 예술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빛났다.
한쪽은 황금으로 불안을 덮었고, 다른 한쪽은 불안을 직선으로 찢어내듯 그렸다.
클림트는 금세공가의 아들이었다.
그에게 황금은 단지 화려한 색채가 아니라, 태생부터 손끝에 밴 감각이었다. 그는 초기에는 ‘화가’라기보다 공간을 장식하는 장식가에 가까운 커리어를 쌓았다. 그리고 그 방식은 시대에 꽤 잘 맞았다. 그는 빈 부르크극장(Burgtheater)의 계단 장식 작업으로 주목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고, 공공 프로젝트를 맡는 젊은 예술가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 무렵 발표한 <구(舊) 부르크극장의 객석(Auditorium in the Old Burgtheater)>은 클림트의 명성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리모델링을 앞둔 구 부르크극장의 내부를 기록하듯 그린 이 작품에서, 관객석을 채운 상류사회 인사들은 거의 초상화에 가까운 정밀함으로 묘사되어 단숨에 화제가 되었다. 자기 얼굴을 찾아보는 재미가 상당했을 것 같다.
이후 그는 빈 분리파의 중심 인물, 더 정확히 말하면 ‘수장’으로 떠올랐다. 빈 분리파는 그저 미술 단체가 아니라, 기성 살롱과 아카데미주의에 대한 반발이자 새로운 시대의 미감을 선언한 예술 운동이었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그들의 표어처럼, 비엔나는 더 이상 과거의 취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클림트의 화면은 관능적이었다. 그러나 그 관능은 싸구려 자극이 아니었다. 그는 욕망을 ‘아름다움의 언어’로 번역했다.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조차, 금빛과 문양 속에 감싸 안으며 한 장의 신화로 만들어버렸다.
황금빛이 번쩍이는 화면은 탄성을 자아낸다. 남자의 얼굴은 끝내 드러나지 않지만, 여자는 남자의 목을 힘껏 끌어안고 있다. 배경은 현실의 풍경이라기보다 무대 같았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꽃밭인지 절벽인지 애매하기도 하다. <키스> 속 여인의 정체는 지금도 단정할 수 없지만 자주 거론되는 두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에밀리 플뢰게(Emilie Flöge)로, 그녀는 당시 비엔나에서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였고, 클림트와 평생을 두고 깊게 연결돼 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여성은 결혼을 하면 '내조'의 역할에 머물러야 했고, 그래서인지 둘은 끝내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오래도록 서로의 삶을 지켜본 관계였다. 그래서 <키스>를 에밀리로 읽으면 이 포옹은 ‘젊은 사랑’이라기보다 평생 가까이 있었지만 끝내 한 형태로 묶이지 못했던 관계의 절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손에 닿을 듯 가까우면서도, 어쩐지 한 발 비껴 서 있는 거리감까지.
반면 이 여인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Adele Bloch-Bauer)로 상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델레는 클림트가 황금 양식을 완성하던 시기의 상징 같은 존재였고, 그의 대표작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I> 속에서도 비현실적인 황금빛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유한 후원가의 아내였던 그녀와 클림트, 두 사람의 관계를 둘러싼 소문이 오래 따라붙었던 것 역시 유명하다. 당시에는 상류 계층에서의 불륜이 통용됨은 물론, 일종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만약 <키스>의 여인이 아델레라면, 이 포옹은 순수한 사랑이라기보다 부유한 살롱 문화의 우아함과 욕망, 그리고 사회적 긴장감까지 끌어안은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이 작품의 매력은 정답이 없다는 데 있었다. 누구로 읽느냐에 따라, 〈키스〉는 서로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 그림이 ‘한 사람을 그린 초상’이라기보다, 클림트가 평생 붙잡고 싶었던 관계의 순간 자체를 봉인한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클림트의 또 다른 대표작 <유디트 I>에서도, 모델이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였다는 설이 자주 거론다. (이전에 카라바조와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에 대해서도 감상문을 남겼는데, 셋 모두 다른 느낌이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실레는 역장의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집안의 가장 큰 그림자는 아버지의 병이었다. 아버지는 매독으로 인해 정신적 불안과 광증을 겪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실레에게 육체는 아름다움 이전에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 두려움은 곧 성에 대한 강박과 집착으로 뒤틀리듯 이어졌고, 그의 그림에서는 그 감각이 너무 일찍부터 나타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충격적일 만큼 대담한 누드 드로잉을 했다. 재능은 분명했고, 실레는 아카데미에 진학했지만 곧 체제와 충돌했다. 실레는 순응하지 않았다. 그는 반골이었다. 그리고 그 반골성은 오히려 그를 ‘미술가’로 만들었다.
그러던 그가 클림트를 만났다. 나이 차이는 30년 가까이 났지만 재능은 나이를 무력화했다. 실레는 클림트를 통해 예술계의 한복판에 들어섰고, 클림트는 실레를 통해 시대의 변화가 얼마나 빠른지 실감했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실레가 클림트에게 스케치를 바꾸자고 제안했을 때, 클림트가 말했다고 한다.
“왜? 자네 것이 훨씬 뛰어난데.”
칭찬처럼 들렸지만, 어쩐지 그 말에는 예감이 섞여 있었다. 젊고 잔혹한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예감.
클림트의 그림이 아름답다면, 실레의 그림은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강렬함이 있다.
클림트의 <키스>를 오마주 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제목부터 불온한 이 작품에서는 클림트의 작품에서 느껴지던 황금빛의 온기는 완전히 지워진다. 포옹하는 구도, 장식적인 배경. 그러나 이 그림에서의 사랑은 축복이 아니라 금기였고, 욕망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죄의 냄새를 풍겼다. 높은 성직자로 상징되는 '권위'가 수녀의 몸을 억압하듯 끌어안는 장면은 애정이라기보다 폭력에 가깝게 느겨진다. 그러나 더 불편한 것은 시선이었다. 추기경은 마치 관객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듯, 관객들을 흘겨보며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죄악을 들킨 사람 처럼 커다란 눈으로 우리를 마주하는 수녀의 눈빛은 더더욱 관람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클림트가 욕망을 황금으로 감싸 ‘아름답게’ 만들었다면, 실레는 욕망을 가감 없이 꺼내 관객에게 들이밀었다.
또 다른 작품, <죽음과 소녀> 에는 발리 노이질(Wally Neuzil)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실레의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발리는 그가 가난하고 불안정했던 시절을 함께 버텨준 사람이었다. 생활을 함께 꾸리며, 실레가 외설 혐의로 감옥에 갔을 때도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힘썼으며 살뜰히 돌보았다. 그러나 실레는 어느 순간 ‘안정된 결혼’을 선택했고, 그 결정은 발리에게 상처로 남았다. (심지어 결혼을 마음 먹은 여자에게 연애편지를 대신 전해달라 시키기도 하고, 데이트에도 동행시켰으며, 결혼해도 여름 휴가 정도는 같이 보내주겠다며 똥차짓을 했다!)
그림 속 두 인물은 꼭 껴안고 있지만, 그 포옹은 따뜻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에게 매달리는 듯도 하고, 죽음이 살아 있는 사람을 끌어안는 듯도 했다. 사랑이 구원이 아니라 절박함이 되는 순간. 실레는 그 절박함을 한 치의 미화 없이 피부와 뼈, 그리고 침묵으로 그려냈다.
반면 클림트는 죽음을 한 개인의 비극으로 끌어내리기보다 상징적인 존재로 멀찍이 세워두었다. 화면 한쪽에서 죽음이 삶의 무리를 바라보고, 다른 쪽에는 서로의 몸을 겹치며 잠든 사람들이 있었다. 죽음은 삶 전체를 감싸는 운명처럼 보였고, 삶은 그 앞에서 잠시 반짝이는 무리처럼 보인다.
같은 죽음이라는 주제였지만 두 화가의 거리감은 완전히 달랐다. 클림트에게 죽음은 ‘밖에 서 있는 것’이었지만, 실레에게 죽음은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죽음과 소녀>의 포옹은 사랑 같기도 했고, 마지막 인사 같기도 했다.
에곤 실레의 <은둔자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검은 옷의 두 인물은 겹쳐 서 있는데, 앞에 선 인물은 실레, 뒤의 인물은 클림트로 해석되곤 한다. 실레는 정면을 응시하며 서 있다. 날카로운 눈빛과 자신만만한 태도는 마치 “이제 내 시대가 온다”고 말하는 듯 하다.
반면, 클림트는 한 걸음 뒤에서 젊은 남자에게 기대듯 서 있다. 시선은 어딘가 흐릿하고, 얼굴은 마치 안개 속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화면 왼쪽 하단의 디테일이다. 실레 쪽에는 활짝 핀 꽃이, 클림트 쪽에는 시들어가는 꽃이 이어져 있다. 존경과 애정이 남아 있는 동시에, 역할이 바뀌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치였다. 이 그림은 단순한 초상도, 공동 작업도 아니었다. 실레가 스스로를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로, 클림트를 ‘이미 지나온 시대’로 배치한 선언에 가까웠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실레는 조금 달라보이기도 한다.
<가족> 속 인물들은 이전처럼 뾰족하지 않았다. 어딘지 포동포동했고, 덜 날카로웠다. 실레가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어 했던 것처럼 보였다. 불안한 자아와의 전쟁을 조금 내려놓고, ‘가정’이라는 형태를 꿈꾼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이 그림은 유작이 되었다. 아내 에디트는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고, 그림 속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다. 아내를 돌보던 실레도 3일 뒤 전염병에 감염되어 사망하고 만다. 가족을 이루려는 의지는 화면 속에서만 남았다. 삶을 붙잡으려던 순간, 그는 가장 빠르게 사라졌다.
같은 비엔나, 같은 시대였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대를 견뎠다.
클림트는 황금으로 불안을 덮었고, 실레는 불안을 직선으로 해부했다. 하나는 시대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다른 하나는 시대가 숨기고 싶은 진실을 드러냈다.
(글 제목은 국중박 전시 이름을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