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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lololol 5시간전

스티그마

σ τ ί γ μ α

3장 영실이 아이 


소년의 엄마는 아이가 학교에서 피를 토했다는 말을 듣고, 손발이 덜덜 떨리며 속이 내려앉는 듯했다. 가슴이 쿵쿵 뛰며, 머리는 텅 비는 것처럼 멍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방으로 들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워매, 어째야 쓰까..."


그녀는 거칠고 거무스름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췄다. 손가락 사이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순간, 남편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분노와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아, 이 인간은 새끼가 아픈 줄도 모르고, 아침 댓바람부터 술 처묵으로 돌아나 댕기고... 아이고, 어쩌냐..."


그녀는 목소리에 힘을 주려 했지만, 억눌린 한숨이 그 말끝을 끊어버렸다. 남편의 무책임한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더 먹먹해졌다. 지금이라도 돌아와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해주길 바랐지만, 그것이 헛된 기대라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옴마,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여..."


그녀는 눈물을 참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흙바닥 위에 얇은 장판을 깐 방 안은 한겨울에도 눅눅했고, 오래된 흙냄새와 땀에 밴 시큼한 기운이 코를 찔렀다. 순간 풍기는 탁한 냄새는 그녀의 현실과 아이의 고통을 덮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 속에서 어제 피범벅이 되어 겁에 질렸을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고, 마음속에 다시금 다급함이 일었다.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자리에서 발을 뗐다.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신기촌에 있는 무당에게로 곧장 길을 잡았다.

무당의 집은 작은 오두막집이다. 잡다한 나무로 희한하게 엮어져 있는데 그 누구도 이 집이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모른다. 처마 밑에는 형형색색의 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싸리대문 옆에는 오래된 장승 하나가 세워져 있었고, 장승 머리 위에는 닳고 닳은 새끼줄이 감겨 있었다. 문 앞에는 짚으로 엮은 여러 모양 장식과 함께 누렇게 바랜 부적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소년의 엄마는 한숨을 깊이 내쉬며 낡은 싸리문 앞에 섰다. 북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나지막한 염불 같은 소리가 귀에 닿았다. 그녀는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손바닥에 땀을 닦고 떨리는 목소리로 무당을 불렀다.


"할매, 계시요?"




할매는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남편과 자식들, 며느리와 손자들까지 함께 북적이던 집안은 그야말로 화목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 건 첫 번째 자식이 병에 걸리면서부터였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아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 뒤로도 그녀의 가족들에게 불행이 끊이질 않았다.


둘째 자식도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아 있던 막내는 어느 날 말도 없이 집을 떠났다. 큰며느리는 악몽과 환시에 시달리다 도망쳤고, 둘째는 사내랑 정분이나 새끼를 버리고 야반도주하였다. 마지막으로 믿었던 손자들마저 어느 여름날 저수지에 빠져 차갑게 식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하늘을 원망하면서도 가슴서리게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 일이 시작이었을 테다. 처녀 때 신 내림의 기운이 왔을 때, 그녀는 그것을 거부했다. 신과의 인연을 끊으려 애썼고, 점쟁이들을 찾아가 굿 대신 부적을 사서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결국 불행은 막을 수 없었다.


"신을 거부허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당께."


사람들의 말을 외면하며 비웃던 그녀도, 마지막 손자마저 잃고 난 뒤에는 더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손자들을 잃은 날, 그녀는 스스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그녀가 신을 받아들였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는 신에게 용서를 빌었을 뿐이었다. 내림굿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살지 않으려는 신기촌에 혼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나는 굿도 하지 않소. 내 손길이 필요하면 와서 물어보기나 하쇼."


그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은 늘 맞아떨어졌다. 병을 앓던 사람은 그녀의 조언을 따라 낫기도 했고, 잃어버린 물건이나 사람을 찾기도 했다. 할매는 자신이 신을 온전히 받아들인 무당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무당으로 불렀다.


그녀가 사는 집은 사람들의 말처럼 음산했다. 집이 있는 곳곳에 오색 천이 바람에 나부꼈다. 제단이 있는 방에는 촛불과 향이 늘 켜져 있었고, 방 한구석에는 말린 약초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녀는 문 밖을 잘 나가지 않았고, 마을에서조차 그녀를 찾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사람들은 할매를 두려워하면서도, 자신들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희망으로 여겼다. 그녀는 굿을 하지 않았지만, 제단 앞에 앉아 조용히 점을 보고, 필요한 말을 남겼다. 귀신이 많다는 소문이 돌던 신기촌에서, 그녀는 오히려 귀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할매의 집에서 나오는 북소리와 염불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평온함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찾아왔던 불행의 대가가 어디까지 미칠지, 그리고 그 불행이 끝날지조차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할매, 할매 계시냐 말이요?"


안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더니, 삐걱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흰 고무신을 신은 무당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무당은 허리가 약간 굽은 노인이었고, 하얀 두루마기에 허름한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햇볕에 검게 그을렸지만, 날카로운 눈빛은 그 누구도 쉽게 속일 수 없을 듯했다.


"어서 오소, 영실이. 대낮부터 이 험한 데까정 뭔 일이여?"


무당은 소년의 엄마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아따, 부끄럽게 어째 지 이름을 부르신다요. 봉구댁이라고 하시랑께요."


무당은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에그, 이거 참 불쌍허다잉... 니 열셋에 구신 된 어미가 니 이름 불러주라 허것냐? 봉구 그놈은 아직도 술구렁이가 꽉 조이고 있구먼."


영실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할매, 우리 아가 학교서 피를 토했다는디...무사워서라이. 별라도 등이 싸늘허고 방에서 무사운 냄시가 도는디, 어째야 쓰까 몰라서... 할매께 여쭤보러 왔어라이."


무당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시 영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집 안으로 몸을 돌리며 손짓했다.


"들어가세. 내가 한번 봐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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