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지만 믿는 마음

by yoon

종교 : 무교


친조부모와 외조부모, 부모님까지 모두 불교 신자였고,

나 역시 어릴 적엔 그 손을 잡고 절에 다니곤 했다.

초등학생 때는 불교학교에 참여해 삼보일배와 108배, 발우공양도 배웠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여겨본 적은 없었다.

불심이 깊지도 않았고, 매주 절을 찾는 삶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종교를 적는 칸에는 늘 '무교'라고 썼다.


'힘든 삶의 끝자락에서야 종교를 찾게 된다. 그렇게 찾은 믿음이 더 단단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예전엔 그냥 그렇겠거니 했지만,

친할머니의 장례식에서 그 말이 조금 이해되었다.


어릴 적 친할아버지 장례는 스님과 목사님이 함께 진행했다.

출가외인이 된 고모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불자였기 때문이다.

목탁소리와 찬송가가 번갈아 울렸고, 내 인생 잊지못할 신기한 광경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할머니의 장례식은 온전히 기독교식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치르든 중요하지 않았고, 할머니의 뜻이겠거니 했다.

가족 모두가 둥글게 둘러앉아 기도하던 그 자리에서 처음 알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일흔이 넘도록 불자로 살아온 분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이 낯설고 놀라웠다.

하지만 요양원에서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이 약해지신 할머니에게,

누군가의 기도와 말 한마디가 평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위로가 마음에 닿아 믿음으로 이어졌을지도.


불교는 죽음을 새로운 생의 시작이라 하고,

기독교는 육신의 끝이 아니라 영혼이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는 일이라 말한다.

그 차이를 생각하다 보니,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할머니의 마음이 떠올라 괜히 더 슬펐다.


나도 언젠가, 마음 둘 곳이 필요할 만큼 힘들거나 간절한 일이 생기면

나만의 종교가 생길까.


그래도 절은 익숙한지라, 가게되면 자연스럽게 절을 올린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 내 사람들의 안녕, 그리고 나의 소소한 바람을 조용히 빌어본다.


얼마 전 공주 영은사에 들러 삼배를 드리며 이렇게 기도다.


'길을 잃지 않게 해주세요.'


요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어려웠던 터라 그 순간 괜히 울컥했다.

근데 그 순간만큼은 내 이야기가 닿을 곳이 어딘가 있을 것 같았고,

이내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는구나.


하나의 종교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말로 꺼내놓기 어려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마음이 일렁일 때마다

하늘에라도 조용히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싶었다.


내 이야기가 어디엔가 닿을 것이라 믿는다면,

내가 가는 길이 흐려지지 않도록

그 누구든 나를 인도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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