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이 생기면 갈아입거나 껴입자
나는 수면의 질에 진심이다.
잘 잠들고, 푹 자기 위해서는
온도에 맞춰 갈아입을 잠옷이 필요하다.
외출복은 같은 옷만 교복처럼 입는 내가
잠옷은 두께별, 소재별, 색깔별로 가지고 있다.
밤 열한 시, 자려고 누우면 몸이 부대낀다.
이럴 때는 조금 춥더라도 얇게 입어야 잠에 잘 든다.
나는 부드러운 면 반팔티와 얇은 면바지를 입고 잠든다.
새벽 세 시, 춥기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싶어서 깬다.
이때 낮아진 온도로 재채기가 나오기 전에
얇은 기모 긴팔을 껴입고
얇은 기모 긴바지로 갈아입는다.
마지막으로 새벽 다섯 시, 양털처럼 뽀글뽀글한 두꺼운 기모 긴팔과
발목으로 바람이 안 들어오게 막힌 두꺼운 기모 바지로 갈아입는다.
몸이 추우면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날 힘이 안 나기 때문이다.
잠옷을 이렇게 갈아입는데도 신기하게 귀찮다는 생각이 안 든다.
시간대에 따라, 온도에 따라, 기분에 따라
옷을 바꾸어 입으면 수면의 질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은 예측불가에, 힘든 일이 많지만
그때마다 마음가짐이나 성격을
옷 갈아입듯이 바꾸면
더 가벼운 마음으로
고난을 넘길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힘들 수는 있어도, 그 힘든 마음이 무거울 필요는 없다.
누군가 나를 비난한다면 '무시'라는 티셔츠를,
소중한 사람에게 버려졌다면 '용기'라는 바지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놀랐다면 '평안'이라는 재킷을 입어보자.
그리고 이 옷을 혼자서 못 찾겠다면
옆집에 패션 좀 아는 언니나,
스타일리스트 경험이 있는 형이나,
옷에 대한 글을 쓰는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도움을 받자.
완벽한 옷장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마음만 있으면
옷장은 세월이 흐르며 서서히 채워지는 것 아닐까?
-벽장 속 겨울 옷을 정리하며
빠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