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들, 이것은 텔레비전이 아닙니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과제도 하고 바람도 쐴 겸, 엄마랑 카페에 갔다.
엄마는 라테, 나는 과일주스를 주문해 자리를 잡았다.
그날은 평일이라 사람이 많진 않았는데, 대각선에 위치한 테이블에 어머님들 네 명이 앉으셨다.
내가 꿈꾸는 중년의 우정처럼 음료를 마시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미소 가득 머금은 표정으로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가끔씩 웃음을 크게 터뜨리시는 모습들이 정말 따뜻하고 행복해 보이셨다.
과제에 한참 열중하고 있던 중, 엄마는 화장실에 갔고 나는 테이블에 혼자 남았다.
오 분도 안 지나 대각선 테이블 어머님들의 대화가 차분하게 잠잠해지더니
그중 한 분이, 속삭이는 목소리지만 꽤 잘 들리는 크기로 말씀하셨다.
"저 쥐색 바람막이 말이야, 보이지? 내가 말한 게 저거야."
그날 나는 코트 길이 정도의 쥐색 바람막이를 입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하고 계속 노트북만 쳐다봤다.
사실 나는 어머님들의 대화를 더 정확히 들으려고
온 신경이 바깥으로 향해 있지만
마치 엄청 바쁘고 귀가 어두운 대학생처럼 노트북에 아무 자판이나 두드리고 있었다.
그랬더니 또 다른 어머님이 맞장구치셨다.
"그래 그래 보인다! 정말 예쁜 색이네."
내가 두 발자국 거리에 있는데
마치 텔레비전 속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앞대화(앞담화가 아닌 앞대화)가 자연스러워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조금 있으니 다른 어머님들께서 일제히 내 쪽을 쳐다보는 시선이 눈알의 끝쪽에서 느껴졌다.
처음 겪어보는 재미있는 상황에 겉으로는 포커페이스를 했지만 안쪽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내가 조금 더 사교적이었다면, "감사합니다 어머님! 저도 이 색 참 좋아해요"라고 말했겠지만
속삭이시는 것으로 보아 왠지 안 들리는 명연기를 펼쳐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냥 살짝 미소를 지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면 대화를 끝까지 못 들을까 봐 궁금증에 못 이겨 메소드 연기를 계속했다.
그러더니 대화를 시작한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말이야, 저 쥐색 바람막이 사려고 했는데 못 구했잖아"
목소리를 들으니 진심으로 갖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같은 색 애호가로서 도움을 드리지 못해 아쉬웠다.
그 후 엄마가 화장실에서 돌아왔고
내가 있었던 일을 집에 가서 말했더니
엄마가 웃으며,
텔레비전 홈쇼핑 보면서 대화하는 상황 같다고 재미있어하셨다.
그날 처음 뵌 분들이지만, 우리는 모두 사람구경을 제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쥐색 바람막이를 입을 봄을 기다리며
빠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