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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간난 할머니

시가 있는 풍경-14

by 봄비

개울가의 차돌멩이처럼 작고 단단한 간난 할머니는

활짝 꽃 핀 열아홉에 아홉 살 많은 이에게 시집갔다.

누군지 얼굴도 못 봤지만

아버지가 군대 갔다온 남자라면 괜찮다며

시집을 보냈다.


시집 와서 아무것도 못하니 윗동서가 바느질을 가르쳐주고,

시어머니가 밥 짓는 걸 가르쳐주었다.

총기 있어 금방 배웠다.

아직도 해진 바지 엉덩이에 천을 덧대어 입으시는 할머니는 여적 바느질을 잘하신다.

어느 해인가 친정에 갔다가 장마로 집에 못 오자

내쳐 달려와 10리길 집까지 할머니를 업고 갔다는 남편은

환갑이 조금 넘어 돌아가셨다.


팔십 평생 나는 한 일이 없다고,

이불 덮고 잠만 자고 애기만 낳았다고 하신다.

마을 어르신들이 도와주고, 옷도 해 입혀서 살았다고

인심 좋은 마을 어르신들에게 감사하면서 사신다.

아직 초짜인 우리에게 고구마를 어떻게 심는지

가르쳐주시고, 같이 흙을 덮어주신다.

그래야 바람이 들어가지 않아 고구마가 잘 자란다고 한다.

받은 만큼 나누어주신다.


젊은 시절 나물 캐러 산에 갔다가

데굴데굴 산 아래로 굴렀는데

그 뒤로 어디가 아플 때마다 산에서 굴러서 아프다 하신다.

허리가 아픈 것도, 다리가 저린 것도, 이명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다 산에서 굴러서 아픈 거라고 하신다.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정 아프면 진통제 몇 방 맞으시고 그뿐이다.

고통을 참으신다.


불어터진 국수가 아까워 새 밥을 드시지 못하는 간난 할머니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맛있는 음식도 썩썩 잘 드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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