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그것은 모든 지혜의 뿌리다.

by I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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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쩌면 고통과 고민, 갈등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안다. 인생이란 본디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은 늘 예고 없이 파도를 몰고 온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나를 흔들고, 작은 고민들이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그냥 조용히, 평온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왜 또 이런 일이…"


순간의 불만은 고요한 연못 위에 돌을 던진 듯, 내면을 일렁이게 한다. 그러나 이내 다시 마음을 추스른다. 인생이란 원래 이런 것, 고통과 갈등, 끝없는 고민이 기본값일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상의 균형을 되찾는다.


이러한 반복은 결국 내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통이 어느 날 사라지기를, 평온이 끊기지 않기를, 영원한 행복이 삶을 감싸주기를. 어쩌면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은 욕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행복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진정한 충만함으로 느낄 수 있을까? 인생이 아무런 고난 없이 흘러가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나는 정말 그 순간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철학자들은 인생을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에 비유한다. 그 말처럼 고통이 사라지면 우리는 다시 지루함이라는 무게에 짓눌린다. 자극 없는 여유 속에서 허무함은 자라나고, 끝내 우울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마음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 인간이란 고통을 회피하면서도, 다시 그 고통을 찾는 존재가 아닐까.


어린 시절, 인생이 나를 덮친 어떤 고난 앞에서 세상이 무너질 듯한 공포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든 발버둥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발버둥을 쳤든 가만히 있었든,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난이 결국 하늘이 내게 건넨 보호막이었음을 깨닫기도 했다. 당시에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인생의 축복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제 어떤 일이든, 누구를 만나든, 그 의미를 즉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진실은 언제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맨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의 가장 지혜로운 스승은 ‘시간’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황에 있든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다. 모든 고통과 문제, 고난은 사실 내가 그것을 ‘고통’이라 이름 붙이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더 극단적인 상황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고통조차 감사함으로 전환될 수 있다.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순간, 고난은 인생의 선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해답을 모른다. 아직도 내 인생의 진리를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착하듯 모든 것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대비하려 한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이런 태도 덕분에 나는 수많은 불운과 혼란으로부터 나를 지키며 평온한 삶을 유지해 온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은 회의가 든다. 그렇게 철저히 대비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분석과 예측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진실은 아니다. 결국 내 마음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또 다른 질문이 자라난다.


그래서 인생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모든 종교와 철학, 심리학이 말하는 가장 근본적인 진리. 그것은 삶의 조화이며, 중용(中庸)이다. 어떤 감정에도 치우치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고요함을 잃지 않는 태도. 모든 것에 적당함을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이다.


중용, 그것은 모든 지혜의 뿌리다. 나는 오늘도 그 뿌리를 따라, 고통과 평온 사이를 오가는 삶을 배워간다. 그렇게,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다.


https://medium.com/@irenekim1b/between-pain-and-peace-the-subtle-art-of-balance-57662290ca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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