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사마 빈 라덴을 어떻게 추적할 수 있었는가? -
영화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 국내 개봉 2013년)’은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고 사살한 실제 작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감독은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으로서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한 캐서린 비글로우(Kathryn Bigelow)가 맡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 신참 요원으로 시작해 10여 년간 빈 라덴을 추적하면서 당찬 베테랑으로 성장한 주인공 마야 역할은 제시카 차스테인(Jessica Chastain)이 담당했다. 그녀는 이 역할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획득했다.
영화 제목인 제로 다크 서티는 새벽 00시 30분을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 작전 팀이 빈 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띄운 시간이 바로 새벽 0시 30분 무렵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영화 제목은 ‘가장 어두운 시간에 극비리에 감행된 최고 기밀 작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국장이 마야에게서 본 것은?
마야는 수년간의 노력 끝에, 파키스탄 내에 있는 빈 라덴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건물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 건물을 급습할 작전의 허가 여부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린다. 회의의 주재자인 CIA 국장은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어. 그 집에 놈이 있나, 없나?”라고 참가자들에게 질문한다. 참가자들은 이라크 대량 살상무기 존재 여부가 이번 일보단 증거가 더 확실했다고 말하면서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모두들 확답을 꺼리며 대부분 확률적으로 높아야 60% 정도라고 대답한다. 이때 마야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100% 확신해요 확실한 건 없다지만 100% 틀림없어요.”
회의장을 나오면서 국장은 옆의 부하에게 묻는다. “그 여자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아주 똑똑해요.”라는 답이 나온다. 그러자 국장은 “우린 모두 똑똑하지”라고 말한다. 국장이 마야에게서 본 것은 과연 무엇일까?
명확한 목표
국장은 식당에 있는 마야에게 다가와 앉으며 “얼마나 근무했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마야는 “12년요. 고등학교 졸업 직후부터”라고 말한다. “빈 라덴 쫓는 거 말고 뭘 했나?”라는 국장의 질문에,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한다. 마야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CIA에 입사해 12년간 오직 오사마 빈 라덴을 찾는 한 가지 일만 해온 것이다.
빈 라덴을 찾는 것은 그녀의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삶 그 자체이자, 모든 것을 헌신한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자폭 테러로 가장 가까운 동료를 잃는 아픈 경험을 한다. 또한 그녀 자신도 알카에다의 암살 대상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테러 공격을 받아 죽을 위기를 겪는다. 빈 라덴을 잡는 일은 그녀에게 '나라를 위한 임무'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 된 것이다. 마야는 수많은 동료와 상사들이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이 목표만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동기부여 이론 중 하나인 목표설정이론(Goal-Setting Theory)은 사람이 의식적으로 어떤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가 동기를 부여하고 행동을 결정하여 성과를 높인다고 말한다. 즉, 막연히 '최선을 다하자'라고 할 때보다, 구체적이고 어려운 목표를 세울 때 더 열심히 일하고 성과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마야 역시 세계에서 가장 은밀하게 숨어 지내는 인물 빈 라덴을 잡는다는 구체적이고 극도로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고 깊이 몰입하였다. 마야에게 빈 라덴 추적 목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그녀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뜨거운 열정
마야는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집요하게 그의 최측근 연락책을 추적한다. 수십 명의 관련 인물을 심문하여 그의 존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의 행방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 그가 파키스탄 시장에서 쿠웨이트에 사는 어머니와 통화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야는 그의 통화를 추적한 후 그를 미행해 빈 라덴의 은거 장소를 찾으려는 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통화 중인 그를 재빨리 포착하여 추적하는 임무를 맡은 팀이 그녀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마야는 팀의 수장을 찾아가 왜 팀이 빨리 움직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에 팀 리더는 인구 밀집 지역이라 사태 예측도 힘들고, 인원이 부족해 짧은 시간에 전화를 끊는 그를 찾는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마야의 계획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굴하지 않고 마야는 맥주 한 병을 들고 팀 리더를 찾아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팀 리더는 “놈이 테러에 대해 언급하거나 수상한 낌새 나면 그때 추적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자 마야는 “전화로 그런 정보 흘릴 멍청한 놈이 아니야. 놈을 잡으려다가 많은 동료들이 희생을 당했어.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 작전을 완수해야만 해”라는 말로 그를 설득한다. 결국 마야의 열정을 인정한 팀 리더는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결국 빈 라덴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장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장소를 알아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빈 라덴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군사작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 필요한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직속 보스가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작전 허가가 날지도 확실치 않다는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마야는 은신처로 추정되는 장소를 찾아낸 지 21일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직속 상사 사무실의 벽면 유리창에 매직펜으로 ‘21’이라는 숫자를 크게 쓴다. 그리고 그 숫자는 ‘129’까지 늘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앞서 언급한 작전 허가와 관련된 회의가 열린다.
마야는 빈 라덴을 찾는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극도의 노력, 끈기, 그리고 독창적인 전략 등 그녀가 가진 모든 재능과 열정을 동원하였다. 특히 빈 라덴의 은신처가 특정된 후에도 고위 관료들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작전 승인을 주저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상층부를 설득하였다. 아마도 국장이 마야에게서 본 것은 이러한 열정과 추진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표 달성 뒤의 공허감
작전이 승인되고 미국 특수부대가 은신처를 급습한다. 그리고 9/11 테러로부터 9년 7개월 20일 만인 2011년 5월 2일, 오사마 빈 라덴 사살이 공식 확인된다. 마야의 12년 간의 열정, 집념 그리고 희생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작전이 끝나고 마야는 수송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른다. 수송기 조종사는 “혼자이니까 아무 데나 앉아요. 수송기를 독차지한 걸 보니 주요 인사인가 보네요?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라고 말한다. 마야는 텅 빈 수송기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엄청난 성취감과 동시에, 10년 이상 자신을 지탱해 온 거대한 목표가 달성한 후,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깊은 공허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청춘을 바친 목표를 달성한 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지는 그녀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결국, 마야가 어떤 삶을 선택하든 핵심은 목표 달성 후 찾아온 공허함을 긍정적으로 채워줄 새로운 '목적의식'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