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시 No man is an island도 읽고
시는 글의 아래에 첨부하겠습니다.
John Donne은 "No Man is an Island"에서 "그러니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아라"를 읽고 무슨 뜻인가 싶어 찾아보니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종을 울렸고, 그러면 사람들이 누가 죽었는지 궁금해서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구절에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라는 구절이 이어진다. 땅의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죽기 전까지, 즉 살아있을 때는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으면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종소리를 듣고, 그제서야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데, 이것마저도 죽은 사람에 대한 "진정한", "진심 어린" 관심이 아닌, 그저 소문의 주인공을 알기 위해, 자신의 궁금함을 채우기 위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John Donne은 자신의 궁금함을 채우기 위해 한 사람이 죽고 나서야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를 비판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전체적으로 이 시를 살펴보면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같은 구절 등을 통해 John Donne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는 점을 전달하고자 한 것 같다고 느꼈다.
이 시를 읽고,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혹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관심을 꼭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줘야 하나? 피곤하게 어떻게 다 공동체의 구성원을 신경 쓰고, 관심을 가지고 살아.'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도 잠시, 문득 이 시는 소외받는 계층, 약자들을 위해 쓰여진 시 같다고 느꼈다. 사회 계층이 피라미드가 있다면,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관심을 점점 덜 받게 될 것이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나 먹고 살아가기도 바쁘고, 신경 써봤자 이익이 되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의 사람들은 피라미드 최하층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때문에 피라미드 최하층 사람들의 삶은 점점 악화되어 간다. 우리 사회도 위 시에 나온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청소년 근로자, 일용직 근로자가 사망하면, 그것도 어쩌다 그들의 죽음이 한 번씩 뉴스에 대서특필되어서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자주 보고, 자주 공유될 때만 한동안 관심을 가지고 다시 관심을 잃는다. 그리고 다시 그들의 살아생전의 부당한 대우, 힘든 삶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잘 사는 사람들, 그들의 삶이다. Johm Donne은 공동체가 좀 더 나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시를 쓴 게 아닐까 싶다.
John Rawls의 정의론에서는 합리적 행위자가 사회 내에서의 자기 지위가 무엇이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게 하는 장치인 무지의 베일을 설치했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는 자신이 무지의 베일 앞에서 자신이 어떤 상태일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부자일 상황부터 돈이 없어 길에서 노숙하는 사람일 상황까지, 좀 전에 언급한 사회계층의 피라미드에서 맨 꼭대기부터 맨 맽바닥까지 모두 고려하게 된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자 하는 면에서 "No Man is an Island"와 John Rawls의 정의론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No Man is an Island"에서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데 그치는 반면에, John Rawls의 정의론은 불평등한 사회적·경제적 배분은 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허용된다는 원칙을 둔다는 점에서 정의론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더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의 실현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면에서 봤을 때는 "No Man is an Island"는 추상적이고 John Rawls의 정의론은 필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한 원칙까지 만들어 제시함으로서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초반에 나오는 제레미 벤담과 같은 학자들의 주장이 극단적이라고 느꼈고,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마음 한편에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등장한 노직, 칸트와 같은 학자들의 주장은 따뜻했고, 내 마음에 와닿았다. 그들의 주장이 내가 평상시에 생각했던 정의와 일치하는 면도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공리주의 파트를 읽을 때 마음은 다수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건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확실하게 반박할 근거를 제시할 수 없어서 석연하지 못했다. 이러한 석연하지 못한 마음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읽다보니 칸트가 생각하는 정의에 다다랐다. 칸트의 도덕이란 행복의 극대화나 그 밖의 어느 목적과도 무관하다는 말에서 내 안에 계속 도사리던 석연치 못한 감정이 사라졌다. 공리주의로 도덕을 논하는 것 자체부터가 올바르지 않은데 공리주의를 적용한 도덕으로 상황을 판단하려고 하니 반박할 근거가,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논리적인 사고의 흐름을 얻게 되었다. 많은 학자들과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고, 내 가치관은 바뀌기 보다는 오히려 확고해졌다. 이런 책은 처음이라 낯설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되돌아봤을 때는 얻은 것도 있고, 때론 재밌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시 전문>
No Man Is an Island
by John Donne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John Donne)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갑(岬)이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며
만일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의 영지(領地)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