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는 다른 하늘, 다른 온도에서 창문을 활짝 열고 운동을 시작했다. 기존에 영상을 보기만 하던 루틴을 이제 하나의 문장을 찾고 그 생각에 빠져드는 루틴으로 변경을 했다. 그랬더니 계획했던 시간보다 페달을 밟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아 평소보다 조금은 더 길게 운동을 할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또 하나의 효과다.
오늘은 롭무어의 <결단>이란 책의 소개 영상이었다. 롭무어는 <레버리지>로 내게 친숙한 인물이다. 오늘의 문장은 책 속의 문장이 아닌 영상 속 저자 "하대 작가"의 말 속에서 찾은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 ‘완벽함’이 사실은 없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결점이 있고 특이하며, 실수도 합니다.
성장하고 배우고 과정에서 나오는
‘지루함’과 잘 해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쓸 뿐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려고 하지 마십시요.
‘완벽한 때’라는 건 결코 없습니다.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지금과 똑 같은 삶을 나이가 많이 들 때까지
살아가는 결정적인 이유는 만반의 준비가 다 되고,
완벽한 때가 오면 해 보겠다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완벽함’은 저주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만큼만 완벽하면 됩니다.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감정에 빠져서
지금의 그 고통을 연장시키지 마십시오.
하와이 대저택 중에서
완벽의 사전적 의미는 흠이나 부족함이 없이 완전함이다. 그리고 한자로 완벽(完璧)은 ‘흠 없이 온전한 구슬’ 즉, 완전무결하고 부족함 없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이 두 가지 사전적 의미와 한자를 들여다보면, ‘완벽(完璧)’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너무도 무서운 말이다. 흠 하나 없이 완전한 구슬이라는 이상을 인간에게 기준의 잣대로 들이대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완벽한 인간, 완벽한 삶, 완벽한 관계라는 말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 단어를 너무 자주, 너무 쉽게 사용한다.
‘빈틈없이 완벽하게’, ‘실수 없이 완벽하게.’ 그 말은 마치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우리 발목에 무게추처럼 매달려 첫 걸음을 떼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주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완벽이라는 이상을 좇느라 우리는 시작을 미루고, 실수를 두려워하며, 불완전한 나를 숨기게 된다. 하지만 정말 그 ‘완벽’이 존재하는 걸까? 혹시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완벽하지 않음이 아니라, 완벽해야 한다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완벽’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고 또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완벽해야 한다.”
“완벽히 준비되면 시작하려고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더 완벽한 계획이 필요하다.”
말은 멋있지만, 마음 한켠엔 언제나 조용한 불안이 따라붙는다. “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 그 감정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때로는 시작조차 못 하게 만든다.
우리는 매번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타이밍은 거의 오지 않는다. 오히려 완벽을 기다리는 사이, 기회는 지나가고, 마음은 지쳐간다.
그리고 나는 문득, 글을 쓰는 나 자신에게서도 그 ‘완벽에 대한 두려움’을 발견한다. 완벽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무수히 시작을 미루고, 또 수없이 고쳐 쓰며 스스로를 의심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늘 글은 볼 때마다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볼 때마다 부족한 글이 된다. 만약 내가 완벽한 글을 쓰고자 했다면, 아마 난 평생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완벽함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얻기 위한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래서 아직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이 고백은 단지 글쓰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삶도, 관계도, 선택도 마찬가지다.우리는 자주 ‘완벽한 준비가 되었을 때’라는 말로 자신을 붙잡아두고, 주저앉히고, 뒤로 물러서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 ‘완벽’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야 할까?
삶은 철저히 준비된 완벽한 사람만이 이끄는 게 아니라 실수하면서도 계속 가는 사람,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조금씩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늘 부러워하는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완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서 계속 살아내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우리가 ‘완벽’이라는 단어에 또다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무게에 눌려 또다시 머뭇거릴 때마다, 그 단어를 ‘지금’이라는 말로 바꾸면 어떨까?
“완벽한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 거야” 대신 “지금의 나로도 시작할 수 있어” 라고, “완벽하게 해내야 해”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 라고 말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완벽’이 주는 부담을 ‘지금’이 주는 용기로 바꾼다면 우리는 삶 앞에서 한 걸음 더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금 더 가볍게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완벽’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완벽한 것은 없다. 단 가능성을 품은 용기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