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날이었다. 창문을 여는 순간 들어온 공기는 차가움 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몸도 마음도 함께 가벼워진 듯한 오후 오늘도 나는 페달을 밟으며 땀과 함께 하루의 문장을 찾기 위한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밥 프록터의 <부의 확신>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늘 그렇듯 영상의 모든 말이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오늘 나를 붙잡은 문장은 분명했다.
세상은 우리를 지배하려고 달려듭니다.
내가 나를 알아야 상황을 지배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나를’지배하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설령 그것이
대공황일지라도 여러분을 지배하게 놔두면
안 된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하와이 대저택 중에서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오래 머문 단어 하나. ‘지배’라는 단어였다.
‘지배’라는 말은 어쩐지 익숙하지 않고,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단어다. 어떤 감정을 누르거나 타인의 의지를 억제하려는 어감 때문일까.
우리는 살아오며 ‘지배’라는 말을 주로 당하는 쪽에서 배워왔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지배’라는 말이 더욱 낯설고 거칠게 들린다. 오랜 시간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온 역사적 기억 때문인지 지배란 곧 억압과 고통이라는 정서로 이어지기 쉽다.
우리는 살아오며 ‘지배’라는 단어를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들어왔다. 타인의 억압, 국가의 통제, 조직의 명령,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단어는 거부감과 저항의 감정을 일으킨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본다. ‘지배’라는 말은 원래 그렇게 어두운 의미만 가진 단어일까?
지배(支配)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행위”다. 그 지배의 대상이 타인에게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 대상이 나 자신일 때 그건 오히려 자기 주도성이 되고 흔들리는 감정을 붙잡는 감정의 내면 통치력이 된다.
즉, 지배는 누군가를 누르는 힘이 아니라 나의 혼란을 정리하고 나의 중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능력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지배는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이끄는 삶’을 위한 기초 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부정적으로 느껴왔던 단어조차 어떻게 사용하느냐, 누구에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배는 타인을 통제하려는 힘이 아니라 내 안의 감정과 욕망, 그리고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드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율하는 힘으로서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시선보다 내 안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비난과 비교, 자기 검열에 더 깊이 지배당한다.
누군가가 나를 억압하지 않아도, 나는 나를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지배는 타인을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다스리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때,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한다.
두려움이 지배하는 삶,
불안이 지배하는 결정,
과거의 상처가 지배하는 관계.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의 중심이 흔들릴 때 그건 나 자신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니까 밥 프록터의 “내가 나를 지배하라”는 말은 단순한 자기계발 강조 문장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조용하고도 강력한 자기 돌봄의 시작이다.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에 멈추어 서서 이 감정은 어디서 왔는지, 지금 나는 누구의 영향 아래 있는지 묻는 것. 그게 바로 내가 나를 지배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배라는 단어를 두려워하기보다 그 힘을 우리 안의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지나가는 생각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연습과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감정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시선이 ‘나를 지배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글로 쓰거나 말로 꺼내고 내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 차 한 잔의 여유, 혹은 명상, 독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벽하게 나를 지배하지 못한 날에도 내가 나를 지배하려고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할것 같다.
나는 오늘 ‘지배’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지배란 타인을 향한 억압이 아니라, 나를 위한 조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