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견과 미리 정해놓은 선입견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아침 루틴으로 스트레칭과 명상을 마치고 일기를 쓰고, 공감의 시간을 가지며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준비를 끝내고, 나도 오전에 대구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가야해서 외출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나는 올해 가장 신선한 충격, 그리고 내가 가진 선입견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좌석에 앉아 다음 역에 도착했을 즈음, 플랫폼 문이 열리고 한 노인분이 들어오셨다. 허름한 가방과 비닐봉지가 든 바퀴 달린 카트를 끌고, 내 옆자리로 다가오셨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자리가 널려 있는데 왜 하필 내 옆에 앉으시는 걸까? 약간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이미 내 머릿속은 이 노인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이 닫히고 지하철이 출발하자, 그 노인은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힐끗 보니, 그것은 책이었다. 두꺼운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노인을 속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전화번호부 같은 건가? 아니면 어디서 얻은 낡은 잡지 같은 거겠지." 하고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이 노인을, 그리고 그의 행동을 편견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단지 허름한 옷차림과 비닐봉지, 카트를 끄는 모습만으로 나는 그를 폄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시선과 생각은 이미 그를 하나의 전형으로 규정하고 있었고, 그의 손에 들린 책조차도 내 선입견 속에서는 어떤 가치도 부여받지 못했다.
책장을 펼치고 읽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점점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슬쩍 더 자세히 살펴보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깜짝 놀라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다시 한 번 책의 제목을 확인했다. “조상 이야기.” 순간 나는 멍하니 책과 노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 행동이 어찌나 눈에 띄었는지, 노인이 나를 이상한 놈으로 생각하실 만큼 내 시선이 책과 그의 얼굴을 오갔다.
“조상 이야기”. 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라는 저자의 작품이다. 나는 이 이름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의 대표작을 떠올렸다. 바로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유전학의 고전, “이기적 유전자.” 현대 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 책은 지금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조상 이야기저자 / 리처드 도킨스 / 출판 까치 / 발매 2018.01.30.
그런데 “조상 이야기”는 그런 도킨스가 쓴 또 다른 걸작이다. 이 책은 인간의 유전자와 진화의 역사를 심도 깊게 다룬 책으로, 거의 8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을 자랑한다. 도킨스 특유의 명쾌하면서도 치밀한 논증과, 생물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담긴 이 책은 단순히 한 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이 아니라, 내가 언젠가는 꼭 도전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그 두께와 내용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인간 유전자의 근본을 탐구하는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은, 내가 더 많은 독서 경험을 쌓은 후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마디로,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는 내게는 언젠가 정복해 보고 싶은 산과도 같은 책이었다.
그 책을, 내가 어렵고 방대해서 언젠가 꼭 도전하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조상 이야기”를, 지금 내 옆에 계신 남루하게 차려입고 약간 냄새가 난다고 여겼던 이 노인이 지하철 좌석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그 방대한 책을 펼쳐 읽고 있었다. 그의 조용한 집중력과 진지한 태도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그저 놀라움을 넘어 경외심마저 느꼈다. 이 책을 선택하고, 그 내용을 진지하게 탐독하는 그의 모습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순간, 내 머릿속은 마치 누군가 망치로 내리친 듯 혼란스러웠다. 내 사고의 좁음과 편협함, 그리고 선입견의 무게를 처절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독서를 하며 작가와 저자의 글에 서평을 쓰고, 책에서 깊은 통찰을 얻으려 노력한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사람을 외모나 나이, 그리고 표면적인 조건으로 판단하며 저울질하는 오류투성이의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내 편견과 미리 정해놓은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달았다. 그저 겉모습으로 판단했던 이 노인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깊이와 열정을 지닌 분이었다. 나는 그저 속으로 감탄하며, 내가 가진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의 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 노인에게 너무 죄송했다. 그의 진지한 모습, 책을 읽는 태도, 그리고 내가 그를 섣부르게 판단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사과드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은 책을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지하철 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내렸다. 그의 뒷모습은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느껴졌다. 물론 이것 또한 또 다른 나의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마치 거인의 모습을 본 듯한 경외감을 느꼈다.
노인이 내리고 난 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머릿속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했다. 노인, 조상이야기, 리처드 도킨스, 지하철. 도무지 매칭되지 않는 단어들이 뒤섞이며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 혼란은 내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뻔할 정도로 강렬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 멍한 상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걸으면서 계속해서 이 경험을 되짚어보았다. 결국 이 노인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단순히 책의 무게나 지식의 깊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을 보는 눈, 그리고 내 안에 깊이 자리한 선입견의 벽을 깨뜨려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오늘의 이 충격은 아마도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내가 사람을 대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바꾸어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