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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누군가의 하루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있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95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최근 새벽의 창밖을 바라보면 아침과 밤이 만들어내는 흐릿한 경계가 낯익게 다가오는데, 오늘만큼은 그 경계조차 사라진 듯한 완전한 어둠이 방 안에 깊게 스며들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는 이미 계절의 이름이 바뀌었음을 말해 주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속에 들어차는 서늘함이 조금은 날카롭게 느껴졌다.


책상 앞에 앉아 펼친 책은 몸보다 더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차가움이 고개를 들었다.


이기적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나를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 왔는지, 나는 어떤 ‘생존기계’로 삶을 버텨 왔는지 다시 생각하게 맞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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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며 ‘본성’이라는 단어에 오래 머물렀다.

인간의 본성이란 단순히 선함과 악함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선택하고 어떤 감정을 숨기며 어떤 관계를 유지해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늘 며칠 전 주문한 책이 도착을 했다. 새 책들 중에서도 <다크심리학>이라는 제목의 책은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일부러 고른 것도 아니었는데, 최근 읽은 책들이 모두 어둠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보는 방식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묘하게 이어져 있었다.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기록한 책, 인간 진화를 설명하며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담아낸 책, 그리고 이제는 마음의 그림자를 다루는 심리학 이야기까지.


마치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라는 메시지가 연결된 작은 시리즈처럼 느껴졌다.


오후에 간단히 간식을 먹으며 나눈 짧은 대화를 나눴다. 역시나 트레이닝복을 입고 갔던 면접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실망을 가라앉히려는 기색이 있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누군가의 실패를 위로하는 자리에 서면 꼭 한 마디라도 보태고 싶은 조급함이 먼저 올라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입을 열지 않았다. “기회는 아직 많으니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 한 문장 외에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조언이라는 이름의 잔소리가 나를 꼰대 아빠로 만들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이 닫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수능 성적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은 일을 붙잡고 걱정을 나누는 것은 오히려 서로의 마음만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았다.


아주 잘 봤거나 아주 망쳤다면 분명 아이는 먼저 얘기했을 것이다. 아무 말 없다는 건 평소대로 했다는 뜻이기도 하니, 지금의 침묵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막내는 이제 세 편의 드라마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했고 저녁엔 ‘시그널’의 정주행을 시작했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본 드라마 중 몇 안되는 드라마 라서 인지, 그 제목만으로도 오랜 기억이 되살아났다.


잠시 옆에 앉아 함께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대로 눌러앉으면 오늘 오후의 시간을 통째로 소파에 두고 오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재로 들어와 블벗님들의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했다. 예전에는 무심히 넘겼을 작은 문장 하나에도 지금은 조금 더 오래 머물러 본다.


때론 길고 때론 짧은 이웃들의 일상 소식과 생각들을 공유하며 그들의 글을 통해 요즘 삶의 의미를 포함해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하루를 담은 짧은 기록 한 줄, 스쳐 지나간 생각, 책 한 권의 문장 속에서 건져 올린 울림들이 있었다.


그 모든 이야기는 내 일상과 나란히 놓였고, 어느 순간 조용한 숨결처럼 내 마음의 빈틈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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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이후 한동안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나에게

이웃들의 글은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작은 불빛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적어 내려간 문장 속에는 누군가는 오늘을 버텨냈다는 마음의 온기가 있었고 누군가는 실패를 털고 다시 일어서는 의지가 있었으며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흘린 눈물과 웃음을 고백해 주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삶의 의미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배우게 된다.


누군가의 하루를 통해 내 하루를 돌아보고 누군가의 깨달음을 통해 내 안의 침묵을 듣게 되는 일.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외로움과 비슷한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는 단순한 진실이 담긴 글을 통해 나는 하루의 의미를 더욱 깊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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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도 누군가에게

이런 조용한 온기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품어보며

오늘의 기록을 마무리한다.


오늘 나는 다시 한 번, 멈추어 있는 시간도 결국 나를 데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배워 나간다.


나아가지 않아 보이는 하루가 사실은 깊은 곳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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