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우리는 대부분 10대 시절 20대 초까지는 비슷한 성장환경을 가진다. 특히, 만 18세 까지는 한 도시에서 학교 집만 반복하며 일생의 대부분을 비슷하게 보낸다.
나 역시도 시골도 큰 도시도 아닌, 한 지방의 소도시 청주에서 나고 자라 평범한 초중교 시절을 지나 그렇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월~금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리고 고3 때는 밤 11시까지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도 자율학습을 하러 학교에 가는 10대 시절을 보냈다.
고3 수시 접수 시즌쯤,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의 인생에 중대한 결정을 짓는 듯한(?) 선택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학교, 집 말고는 다양한 경험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여고생으로써 뭔가 대단히 앞으로의 나날에 영향을 미칠듯한 하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모른 채, 그 당시 유행처럼 불던 취직하기 쉽다는 보건대 여러 학과 중 하나를 선택했다.
대학교 생활도 10대 시절과 크게 다른 것은 없었다. 처음으로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한 때는 크고 번쩍거리는 새로운 세상 같던 서울클럽에 빠져 2.0학점도 받아보고, 학과 학생회장도 해보고 남들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니 나에게 남은 건 남들보다 못한 스펙과 3점 따리 학점, 겨우 합격한 국가 면허증뿐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는 자의식 과잉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 순위 건 성적을 받아 본 적도, 인서울 대학교조차도 못 갔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엔 불현듯 나는 특별한 무언가가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다.
당연스럽게도 그런 자의식 과잉과 현실의 나는 괴리감이 있었다. 대형병원이나 회사에서는 보통의 스펙조차 없는 나를 당연히 면접조차 불러주지 않았고, 그렇게 패배감에 휩싸인 채로 현실에 순응하지도 못한 채로 11개월, 8개월 두 번의 직장생활을 퇴사로 마무리했다.
2018년 퇴사를 앞둔 어느 겨울날, 내 자의식과응 (=어쩌면 소망)에 바람을 불어넣었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 언젠가 일을 그만두고 뉴질랜드나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그것은 언제나 마음으로 꿈꾸던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특별한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나의 자의식과응을 스멀스멀 다시 피어오르게 했다.
초기값이 미세한 차이에 의해 완전히 다른 결괏값을 가져온다는 나비효과처럼, 2018년 겨울날 마음속에 불어온 봄바람은 5년의 세월 동안 아일랜드를 거쳐 독일 땅 이곳에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