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형님이 남긴 말
하나뿐인 친형님이 말도 없이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
한쪽 팔을 잃은 느낌이 아니다.
하나뿐인 심장이 사라진 느낌이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과 구급차 안에서 119 요원들이 한참동안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해서도 68년간 뛰던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3일간 나도 심장이 뛰지 않았고, 폐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뇌는 생각을 잃어버렸다.
무슨 말을 남기고 싶으셨던 것일까?
말없이 급하게 가신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을텐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대성당이 생각난다.
눈을 떠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대성당의 사람들이 맹인의 손을 잡고 함께 눈을 감았을 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빵집 주인이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초콜렛케이크, 갓구운 롤빵, 검은 빵을 차례로 선물한다.
케이크는 떠나간 이와의 달콤했던 추억, 롤빵은 위로의 말, 검은 빵은 새로운 삶의 의미를 뜻한다.
형광등 같았던 케이크의 추억, 롤빵 위로의 말들은 새로운 힘을 얻어 햇살과 같은 검은 빵의 삶을 탄생하게 만든다.
화장터를 떠나 아버지,어머니가 계신 선산에 묻힌 형님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한겨울인데도 소나무 사이에 비춰진 햇살은 너무나 평화롭고 따스하다.
형님과 함께 심장이 멎고, 호흡이 멈추고, 생각이 사라지고, 촛점을 잃은 형수님과 조카의 얼굴과 눈에도 따스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한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숨이 쉬어지기 시작한다.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고, 눈을 뜨기 시작하고, 피가 혈관 속을 흐르기 시작한다
형님이 남기고 싶은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형님이 남긴 선물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다.
형님이 한마디 말도 없이 급하게 떠난 이유를 알아내기 시작한다.
형님은 부정맥이 있던 심장을 떼어내고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을 새롭게 선물하셨다.
새로운 심장은 다시 피를 흐르게 하고, 호흡을 하게 하고, 사람들을 돌아오게 만든다.
영정 사진 속 형님이 웃으면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듯이, 이제 우리도 형님이 선물한 새로운 심장을 달고 살아야 할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었듯이, 형님도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다.
미소짓는 사진 속 형님이 이제야 말씀하시는 듯 하다.
말없이 떠난 이유는 진정으로 떠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 심장 속에 살아계시듯이
형님도 우리 심장 속에서 새롭게 함께 뛰고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