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사람들을 붙들어 내 작가로 만들고 싶다
이연실이 쓴 책 『에세이 만드는 법』을 읽고 있다. 이연실, 그는 누구인가? 19년 차 에세이 편집자이자 출판사 ‘이야기장수’의 대표다. ‘이야기장수’는 원래 문학동네의 브랜드였다. 이연실은 16년간 문학동네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사내벤처 형태로 ‘이야기장수’ 대표가 되었는데, 단 2년 만에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만큼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켜 현재 ‘이야기장수’는 독립 법인으로서 많은 유수한 작가들과 굵직한 베스트셀러를 출간 중이다.
나는 이렇게 유능하고 탁월한 그와 나의 첫 책을 만들고 싶었다.
며칠 전 그에게 내생에 첫 투고 메일을 보냈다. 작년 6월부터 준비한 원고와 출간기획서를 첨부했다. 사실 전자책 포토에세이로 시작한 것이 종이책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1년 넘게 써왔던 원고였다. 매주 발행하는 브런치 글과 한 달에 한 번 독서동아리의 서평 에세이를 함께 쓰느라 원고에 완전히 집중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손을 놓지 않고 꾸준히 매달려 온 작업이었다. 이제 더는 매달려 있기 힘들다고 판단되었을 때 원고를 마무리 지었고 그 후, 두 달 넘게 투고를 미루던 참이었다.
그날 오후 6시쯤 메일을 전송했는데, 이연실 편집자는 당일 밤 10시 12분에 나의 투고 메일을 열었다. 보통 출판사에 투고하면 까이는 건 다반사고 메일을 잘 열어 보지도 않을뿐더러 열더라도 읽지 않을 수 있고 아주 뒤늦게 읽거나 아예 답이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한데 퇴근했을 그 시간에 메일을 연 것부터 놀라웠고 나흘째 되던 이 시점에서 아직 내게 답이 없다는 점이 그러니까 바로 퇴짜를 놓지는 않았다는 점이 내게 어떤 기대를 품게 했다.
지금 이연실 편집자가 내 원고를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러다 호기심이 생겨 내 브런치를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렇게 내 글을 쭉 훑어보고 책의 방향과 콘셉트를 다시 잡아보자고 제안할지도 모른다는… 내심 기대를 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그와 책을 내게 되는 건 아닐까, 달뜬 상상에 빠져 그의 책, 『에세이 만드는 법』을 덜컥 주문했더랬다. 사실 이 책은 전에 도서관에서 잠깐 읽어본 적이 있다. 제목이 워낙 나 같은 사람에겐 절로 눈이 가고 손이 가는 책이었다. 당시 한참 읽어야 할 책들과 써야 할 글이 쌓여 있어 ‘그래 나는 글이나 쓰자, 이런 책 읽을 시간에 쓰기나 하자, 그게 최선이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제자리에 도로 꽂아놓았었다.
그땐 그랬다 쳐도 이제는 내가 그와 책을 만들고자 원한다면, 적어도 그가 쓴 책을 한 번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가 어떻게 에세이를 만드는지, 그가 에세이를 통해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지, 내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내 나름 그의 작가가 되기 위한 일종의 대비였다고 할까. 마음의 준비이자 노력이었다.
그런데 이연실 편집자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그와 꼭 내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들면서도 동시에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는 이슬아, 김이나. 김훈, 요조, 임경선, 하정우, 등 이렇게 대단하고 유명한 사람들과 책을 만들었다. 그가 말하길, “아직 원고를 써 본 일은 없지만 이미 삶 자체가 책 보다 아름다운 사람, 예술가가 되기 전의 생활인, 자기 자신의 업과 삶에 그 어떤 허영이나 자만도 없이 하루하루를 묵묵히 쌓아 저절로 대가나 달인이 된 사람” 이미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글이었다.
그런 그가 나처럼 그냥 평범한 전업주부의 에세이를 과연, 책으로 만들 것인가?
.
.
.
아니, 아닐 것 같다. 솔직히 이연실 편집자뿐 아니라 누가 나의 글을 궁금해할 것인가. 나라는 전업주부의 업과 삶은 어떻게 예술처럼 아름다워질 것인가. 14년 차 전업주부로서 그가 말하는 대가나 달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오랜 시간 쌓아온 전업주부로서 삶과 노하우, 비결이 있을진대, 긍지와 자부심 또한 있고……한데 그것을 누가 읽을 것인가, 관심이나 있겠는가.
그저 전업주부로서 만은 안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전업주부로서 살림을 정말 끝내주게 잘한다거나, 아니면 요리를, 아니면 아이들이 서울대를 턱턱 붙었다거나 하는……누가 봐도 부럽고 원하는 감탄할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눈에 띄는 게 없다면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지 아니면 그저 그런 사람일지 나 자신도 모르는데, 이연실 편집자가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내 원고와 사진으로 어떻게 나를 작가로 알아볼 수 있겠냐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과 생활이 이미 예술인 사람들, 예술가 이전의 예술가를 발견해 작가가 되어 보자고 유혹한다. 자신은 작가나 예술가가 될 깜냥이 아니라고, 그저 먹고 살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지 잘 모르는 사람, 그러나 곁에서 조금만 대화해 보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조리 주머니에 주워 담아 간직하고픈 사람, 나는 이런 사람들을 붙들어 내 작가로 만들고 싶다.”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유유 출판사, 152쪽)
그의 책을 읽다가 나는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아마 답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왜 내게 아직 거절의 메일조차 보내지 않았던 것을 슬프게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말하는 예술적인 생활인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메일이 왔다. 정확히 그의 이름으로 보낸 것은 아니었고 15일 만에 온 회신 메일이었다. 이미 그의 작가는 못 되겠다 단념했으면서도 회신 메일이 뜬 걸 보자 내 심장은 제멋대로 마구 요동쳤다. 너무 떨려서 바로 메일을 열어 볼 수가 없었다.
혹시 내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려는가 아니면 내가 그 두려워하는 거절의 메일을 받으려는 것인가.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일. 내가 내놓은 것이 별로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 그 말 못 할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내가 마주할 수 있겠는가? 그럴 거면 차라리 답을 보내지 말지. 그 짧은 시간에 이처럼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핸드폰으로 컴퓨터 화면을 찍고 동시에 엔터를 눌렀다. 왠지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싶었다.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야기장수 출판사입니다.
이야기장수에 옥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야기장수 출판사에서 책임지고 잘 완성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겠다는 약속을 자신 있게 드리기가 어려워,
이야기장수에서 출간하기는 어렵다는 연락을 드립니다.
작은 출판사를 눈여겨봐 주시고,
작가님의 원고를 먼저 볼 수 있는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_이야기장수 편집부 올림”
너무도 깔끔하게 명확한 의사가 전해졌다. 책임지고 잘 완성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겠다는 약속을 자신 있게 드리기가 어렵다는 말. 내 원고가 내가 쓴 글이 한 마디로 별로라는 뜻이다. 이연실 편집자가 주구장창 어필했던 ‘팔리는 에세이’ 또는 ‘독자에게 선택받는 에세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순간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결론적으로 나의 첫 투고는 당연히도 까였다. 까이는 원고가 어디 나뿐이겠냐마는 그걸로 위로될 리 없다. 까인 건 까인 거다. 그렇다고 내가 뭐 어쩌겠는가. 별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지난 며칠간은 정말이지 무척 설렜다. 이연실 편집자가 직접 나의 원고를 검토한다는 상상으로. 그와 책을 만들 거라는 야심 찬 희망으로.
그걸로 됐다. 꿈같은 상상을 해본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그가 쓴 『에세이 만드는 법』과 그가 만든 책들을 더 많이 읽고 배울 것이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책을 위해 나는 다시 한번 애써볼 것이다. 이제는 내가 진짜 작가가 되어 보고자 한다. 그의 작가는 아니더라도 나의 글을 알아주는 편집자를 만날 것이다. 돌고 돌아 언젠간 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그도 나도 절대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연실 편집자가 생각하는 작가에 관한 인터뷰를 덧붙인다.
“책을 출간하려 할 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작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작가는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죠.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모으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연습을 하다 보면, 그 이야기를 찾아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사례뉴스)
p.s. 작가가 되고자 하는 모든 분께 따뜻한 응원을 전합니다. 우리 함께 힘내보아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