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먼해 Dec 24. 2024

이중 언어 환경에 있는 아이들

유아기 언어 구조.

아이들이 어릴 때 한국에 가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가끔 사람들이 물어봤다.

아이들 어디서 왔냐고..

사투리 같기는 한데 어디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우리나라 사람들 참 남한테 관심이 많기는 하다.


"아.. 독일 사투리 써요.."

이렇게 대답을 했었다.



우리 집의 규칙은 독일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쓰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이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도 종종 섞어 쓰기도 한다.

나는 독일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한국어도 종종 단어가 생각이 안 나 황당할 때가 있기도 하다.



아이들 어릴 때 육아 서적에 아이들 언어를 쓰면 같은 단어를 아이들이 두 번 배우게 된다고 아이들 언어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글을 읽었었다.

예를 들면, 과자를 까까로 칭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어릴 때에도 어른들이 쓰는 일상용어를 쓰려고 노력했었다.

그래서인지, 딸들이어서인지, 아님 언어를 잘하는 아빠를 닮아서인지 아이들의 언어는 좀 빠른 편이었다.



큰 아이 초등 2학년 때, 작은 아이 4살 때 한국에 6개월간 머문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말을 다 떼고 온 큰 아이는 독일어를 배우면서 한국어의 억양이 조금 이상해지던 참이었는데  2주 만에 그 나이 또래의 억양을 그대로 따라 배웠다.

작은 아이는 집에서는 한국말만 쓰다가 1년 동안 독일유치원을 다니며 독일어를 제대로 시작하던 차에 한국에 갔었다.


언니 따라 한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아야어여오요우이'를 따라 하다가 한국에 갔는데 도착한 당일..

"엄마 저 글씨 이.. 맞지?"

한국 도착한 첫날부터 글씨에 관심을 갖더니, 6개월 만에 한국어를 다 떼고 독일로 돌아왔다.


정말 아이들은 언어를 너무 쉽게 배운다.

19년 차 독일에 사는 나는 아직도 독일어가 어려운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문제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 생겼다.

큰 아이는 D 독일말, K 한국말하며 심심하면 혼자서 언어를 갖고 놀았는데..

독일에 오니 큰 아이는 독일어로 바로 전환이 되면서 동생한테 독일어로 질문을 했다.

종류가 다른 사탕을 양손에 가지고 뒤로 숨겨서는 독일어로 "오른쪽 할래? 왼쪽 할래?" 물었는데 동생의 반응..

"아 뭐어어"

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장난을 치냐는 짜증 섞인 반응이다.

유치원에 가야 하는 작은 아이가 독일어를 깡그리 다 잊어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양말이라는 단어 하나만 빼놓고 다 잊어버렸다.

그 단어는 어떻게 남아 있었는지가 오히려 의문이다.



다니던 독일의 유치원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한국 가기 전에 유치원을 다른 곳으로 바꾸었는데 말을 못 하는 이런 황당함이라니.

그래도 그 안에 쌓여 있던 언어는 어딘가에 저장이 되어 있었던지 

2주 만에 유치원 선생님이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문장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3개월이 지나니..

"아이의 언어 습득 능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아요."

유치원 마지막 해에는 친구들과 독일 선생님을 나란히 앉혀 놓고 한국어 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어릴 때 배우는 언어는 빨리 배우기도 하지만, 깊이도 다른 것 같다.

나도 좀 어릴 때 왔으면 독일어를 더 잘할 수 있었으려나!!!




가을 방학인 요즈음..

재밌는 소설책을 발견해서 1편을 다 읽고 2편을 사 온 것을 보니 영어책이다.

나 : "영어 책이었네."

딸 : "원작 소설이 영어야"

나 : "넌 좋겠다.영어 소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딸 : "엄마도 할 수 있어.. 쉬운 것부터 시작해 봐"


용기를 줘서 고맙다. 딸아..

근데 이번 생에 될까?


독일에 살며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언어를 딸들이 잘하니 대리만족은 된다.

언어도 언어지만..

항상 뭔가를 배우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하니, 나도 뭔가를 계속 끄적여 보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