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독일에 온 첫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려고 시내에 나갔었다.
오후 2시쯤인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시내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전을 접었고, 빈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차만 보였다. 물론 가게도 모두 문을 닫았다. 얼마나 썰렁하던지.. 우리 같은 외국인들만 독일의 크리스마스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문 닫힌 시내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한국의 크리스마스이브 퇴근길, 얼마나 차가 막혔던지 그 기억이 지금도 선명한데..
내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딸 둘은 피아노를 오랫동안 쳤다.
여기는 레슨도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 집에서 연습을 하지 않으면 배울 수가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치던 피아노를 아이투어 (한국의 수능)를 앞두고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며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그동안 경연도 여러 번 나갔고, 매주 쾰른까지 데려다주고, 레슨 받는 동안 기다리기를 어언 10여 년을 했었다.
그러고도 세월이 흘러 몇 년째 피아노는 거실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저걸 처분해 버릴까? 싶은 생각이 들어 얼마 전 아이들에게 물었었다. "너희들 피아노를 칠 거야? 안 칠 거면 없애려고.."
그래도 꽤 긴 세월 함께 했던 정이 들었는지 크리스마스 때 캐럴송을 칠 거란다.
사실 나도 잠깐 든 생각이지 피아노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보진 않았었다.
그러다 다가온 크리스마스..
"너희들 피아노 안치니?"
아이들도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부산스럽게 피아노에 앉는다.
캐럴송을 시작하는데..
아무리 오랫동안 안 했어도 그렇지 배운 세월이 얼만데, 경연을 나갈 정도로 쳤던 아이들인데 계속 틀린다.
틀릴 때마다 멋쩍은지 아이들도 웃느라 정신이 없다.
저녁 먹은 설거지를 마치고,
'그래도 이제 제법 치네' 하고 거실로 갔더니.
둘이서 나란히 앉아 한 손으로 높은음과 낮은음을 각각 치고 있는 거다..
노래까지 해가며.
오랫동안 피아노에서 멀어져 있던 손들은 여전히 틀리는 음을 반복하면서도 웃음만 가득하다.
내가 아이들 피아노에 들인 공과 시간과 돈이 얼마인데 이건 너무 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처음에 잠깐 들기는 했는데, 둘이 피아노에 앉아 한 시간을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깔깔거리는 것을 보니 그 노력들이 이렇게 즐거움으로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한참을 기분 좋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무엇을 잘해서 주는 즐거움도 크지만, 이렇게 아무런 조건 없이 즐기는 것을 보는 것도 크나큰 기쁨이다. 그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행복감을 계속 틀리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느껴본다.
독일의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24일 오후부터 26일까지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우리의 추석이나 설날처럼 멀리 있는 가족들도 한 곳에 모여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동지는 지났지만 여전히 4시면 어두워지는 독일 하늘.
해님은 매일 방문하겠지만, 더 많은 먹구름들의 출현으로 종일 어둑하다 4시면 아예 어두워지는 이곳.
독일의 크리스마스는 말 그대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이다.
교회에서 치는 종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더 크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