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이 아이 이름을 짓는 법

첫째는 내가, 둘째는 아내가 지은 이름에 대하여

by Karel Jo


첫째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나와 아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감정을 한 번에 맛본 사람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내는 오랜 시간의 진통 끝에 그저 아이가 건강하게 나와주었다는 사실에 안도하였고, 탯줄을 자르고 아이의 손발을 모두 세어 보며 뒤에서 혼자 아이의 건강에 서명했던 나는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숨죽여 오열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이상의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었나? 하는 질문에 쉽사리 다른 장면을 답하기 어렵다.


그 환희에 비해 둘째 딸의 출산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진통이 오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아이가 세상에 나와 그 울음소리를 들려준 때까지, 모든 것은 우리에게 두 번째였기 때문에 새롭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이 소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매 순간마다 다음을 연상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경험에서 오는 여유였다. 그 여유 안에서 우리는 첫째 때보다 더 빠르게 고심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아이 이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와 아내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 방법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의 나라에서 그나마 정확하게 불러줄 수 있는 이름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공통적인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인 '형근'은 처가에서 내가 들어도 가끔 저게 날 부르는 게 맞나? 싶은 발음으로 불리고 있었고, 한국의 내 가족 또한 처음 아내의 본명을 들었을 때 으음?이라는 반응 끝에 아내가 쉽게 부를 수 있는 별칭만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성인 '조'는 한국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도 뭔가 이어 붙였을 때 예쁜 이름을 찾기 쉬운 성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조씨는 그래도 나름 희귀한 성씨는 아니지만, 질 나쁜 농담으로 절대로 정교수가 될 수 없는 그런 성씨지 않나. 처가인 우크라이나에서도 상황은 별반 나아질 것 없었는데, 일단 한국의 지읒 발음 자체가 우크라이나어에서는 없는 발음이었기에, 나의 성씨는 잼 발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처음에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이름과 성이 결합했을 때, 영미권 이름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이름을 택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를테면 Joshua를 생각할 수 있는 수아라든지, Josephine을 떠올릴 수 있는 세빈 이라든지. 물론, 아내는 이 아이디어를 단칼에 거절했다. 아이의 이름을 갖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이유를 대며 말이다.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라는 질문은 쉽게 나올 수 있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그렇기에 어렵게 답이 나오는 그런 질문이었다. 결국, 우리가 정한 것은 이름을 어떻게 짓자 라기보다는 순서에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두 명의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첫째 아이의 이름은 내가 한국식으로 짓고, 둘째 아이의 이름은 아내가 우크라이나에 맞게 짓기로 정했다.


첫째 아이가 나온 이후로, 나는 이름을 생각할 때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 번째는 부르기 편할 것, 그리고 그 당시에 너무 유행하는 이름은 피할 것. 당시 남자는 준, 여자는 아 가 들어가는 이름이 너무 유행이었기에 일단 그 두 글자는 빼고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름의 발음은 내가 정하지만, 이름의 뜻은 아버지에게 일임하자는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 나의 이름도 외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셨기에, 나는 아버지에게 그 영광을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름은 '나윤'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첫 친손녀딸이 너무나 소중하셨는지, 그 이름에 모든 아리따움을 붙여 주셨다. 아름다울 나에 예쁠 윤, 내가 쓰기에도 어려운 한자를 어디서 찾아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서는 본인의 환희를 그렇게 손녀딸에게 선물해 주셨다. 그리고 이 이름은, 다행히 처가에서도 손쉽게 부를 수 있는 발음이어서 처가에서는 끝의 윤만 따서 유냐, 유냐 하고 어릴 때부터 처가의 사랑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둘째의 이름에 대해, 아내는 둘째가 나오기 전부터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를 오래 고민하고 있었다.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기기로 했지만, 정작 아내는 우크라이나식 이름을 짓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면 단순했다. “예쁜 이름이 없어.”라는, 조금은 단호한 대답이었다. 나는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 몇 번을 되물었지만, 아내는 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아내의 고민은 더 길어졌다. 우크라이나 이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한국 이름도 아닌, 우리 가족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밤에 아이가 잠든 뒤,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곤 했다. 어떤 이름은 발음이 어색했고, 어떤 이름은 뜻이 마음에 걸렸고, 또 어떤 이름은 이유 없이 우리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넘기던 어느 날, 아내가 문득 내게 한 이름을 건넸다.


“셀린은 어때?”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낯설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익숙하지도 않은 이름이었다. 조용히 입안에서 한 번 굴려 보았다. 셀린. 부드럽게 시작해서, 조용히 사라지는 소리였다. 나는 그 이름을 몇 번 더 불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이름은 이미 우리 아이의 이름처럼 느껴졌다.


나중에야 그 이름이 ‘하늘’, 혹은 ‘천상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그 의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가 그 이름을 여러 번 불러보며 어색하지 않게 웃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우리의 둘째는 셀린이 되었다.


한자까지 완전히 한국식으로 이름을 지은 첫째와 달리, 둘째는 그렇게 자기 어머니와 같이 가족관계증명서나 기타 서류에 성만 한자고 한국 발음만 가진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사람이 되었다. 우연찮은 일이지만, 나와 혈액형이 다른 첫째는 나와 같은 방식의 이름을, 나와 같은 혈액형을 가진 둘째는 아내와 같은 방식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별 것 아닌 우연이지만, 어쩌면 그런 다름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게 우리 가족답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두 아이를 동시에 부를 때가 있다. “나윤아.” 그리고 “셀린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어진 이름이지만, 그 두 이름은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게 한 문장 안에 놓인다. 나는 그 순간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다시 떠올린다. 무엇이 더 옳은 이름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아이들을 우리의 삶 안으로 불러들이고 싶었는지를.


이름은 결국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이름을 매일같이 부르며 살아갈 것이다. 그 안에 담긴 뜻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더 많은 마음을 실어서. 그리고, 그 마음의 끝에 곧 새로운 곳에서 더 많이 쌓아갈 추억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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