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아니기에, 익숙하게 밀려드는 삶의 호흡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 삶의 막대기를 마주한 후부터 우리의 삶은 다시 전쟁이라는 속박과 아픔에서 벗어나, 우리의 현실을 충분히 마주하도록 되돌아가려 애썼다. 그리고, 물론 처음 시작은 또다시 산부인과였다.
첫째 아이를 세상에 안전하게 볼 수 있게 많은 신경을 써 주신 산부인과 선생님은 큰누나가 자기의 경험담으로 소개해 주신 분이었다. 당시 나와 누나들은 골목 하나씩을 두고 비슷한 위치에 살고 있었는데, 아내가 처음 임신했을 때 그 선생님이 깔끔하게 잘 봐주신다는 누나의 말을 듣고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분께 진료를 맡겼다. 그리고 누나의 말대로, 그분은 언제나 평정심과 차분함을 잃지 않고 첫 아이를 우리의 품에 안전하게 안겨 주셨다. 언제나 “정상입니다. “라는 흔들림 없는 강한 확신과 함께.
그런 그분의 평정심도 우리가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 둘째 소식을 알렸을 때는 적잖이 흔들렸다. 대부분 하나를 낳고 나서는 둘째를 잘 낳지 않는 저출산의 시대에서, 분명 첫째를 낳은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임신 소식을 들고 자기를 찾아온 선생님께서 ”허어…“하고 머쓱한 웃음을 지으시던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그렇게, 또다시 그 산부인과의 가장 젊은 산모, 그것도 둘째아를 임신한 유명인사가 되어 자라나는 둘째 아이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 번 해본 일이었기 때문에 나도 아내도 대략적인 주차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리 절차와 시기를 잘 알고 있다고 한 들, 이미 우리 옆에서 나날이 자라고 있는 첫째라는 변수가 있다는 건 조금은 힘든 일이었다. 딸아이는 자기의 동생이 생긴다는 말이 아직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고, 그래서 때로 엄마의 배를 조심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엄마가 자기를 자주 안아주지 못하는 것에 슬퍼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이제 우리 셋이 아니라 한 명이 새삼 우리의 가족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러나 우리를 힘들게 했던 사실은 이렇게 가족의 완성을 받아들이는 시간보다는, 삶을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그동안 보고 있지 못했던 현실이라는 무거운 시계추의 흐름에 다시 올라타야 하는 점이었다. 당시 첫째 아이가 만으로 세 살, 한국나이로는 4살이라는 나이였고,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던 나는 아이가 내년부터는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우연히 알게 된 때는 어린이집에서 11월 즈음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내년부터는 5세 반이 어린이집에 없으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셔야 할 텐데, 혹시 유치원 등록을 알아보셨냐는 연락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서야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보육기관과 교육기관으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유치원을 보낼 거였으면 진작 월초에 유치원 원아등록 신청을 마쳤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막연히 내년에도 아이가 어린이집을 갈 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겐 굉장한 충격이었고, 그래도 어찌어찌 운이 좋게 부랴부랴 완전 근처는 아니지만 집에서 조금 떨어진 유치원에 다닐 수 있게 조치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주거의 문제에서도 삶의 현실은 다양한 방면으로 우리를 다시 아픔의 시기에서 끌어내리려 애썼다. 당시 아내의 출산을 반년쯤 앞두고 우리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전셋집 만기가 24년 2월 말로 만료되고, 우리가 청약받은 새로운 집은 24년 8월 말에나 준공이 끝나 입주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년 가량 붕 뜨는 시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집주인분께 잘 말씀드려 월세로 남은 기간을 살 수 있을지를 연락해 보려던 찰나에 날벼락같이 집주인 분의 자녀분께서 실거주를 하려 하니, 리모델링 견적을 내기 위해 집을 열어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 집은 아내의 산부인과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였기 때문에, 만약 주인분 말대로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당장 연말에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출산 예정일과는 두 달 남짓 떨어진 시기였고, 결국 9개월 정도 뒤에는 새로운 집으로 입주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나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풀리길 바랄 뿐이었지만 여차하면 단기임대로 이사를 두세 번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도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천운이 따랐는지, 결국 집주인 분께서 생각보다 높게 나온 리모델링 견적과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내가 몇 달 월세를 사는 것이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하셨는지 원래 나의 생각대로 받아들여 주셔서 새로운 집에 이사하기 전까지 아내의 출산과 아이의 유치원에 별다른 변경 없이 안정적으로 다시 삶을 원래의 방향과 속도로 되돌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일들 사이에서, 하나를 넘기면 하나가 끝일 거라고 기대했지만 언제나 무언가 새롭게 등장하는 삶의 변주 속에서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버티는 시간 속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의 삶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다림 속에서는 그저 흐름이 있었을 뿐이지만, 그 안에 들어온 이상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언가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신없음을 느끼거나, 바빠서 어쩔 줄 모른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충분히 삶의 흐름을 타고 올랐다는 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느끼지 못하고 그저 멈춰 있으면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하루로 그칠 테니까. 나아가기로 한 우리에게, 삶은 그렇게 다시 돌아와 다양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보채고 있었다. 곧, 들려올 힘찬 희망의 울음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