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또 하나의 막대기

조용히 시작된 두 번째 이야기

by Karel Jo


버티는 순간에서 살아가는 순간으로 나를 되돌려가는 시간은 생각만큼 그렇게 순탄하게 흐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매일매일의 고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한 알을 삼키고 한 마디를 쏟아내며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다이어트를 단시간에 성공해서 눈에 확 띄면 그만큼 요요가 빨리 오는 것처럼, 나의 마음의 힘듦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알아차릴 수는 없으나, 어느 순간 내가 가벼워졌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는.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가 처음 이야기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부터, 우리는 첫째를 준비했던 때와 다르게 담담하게 둘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 아이를 갖자고 했던 순간은 준비되어 있지만 충동적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만 집중하면 되었고, 주변에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모든 시간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충분히 뜨거울 수 있었고,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 없이 더없이 행복했던 그때의 시간.


그때와 비교하면 사실 둘째를 가지려던 때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의 정신은 무너짐을 견디지 못해 망가진 조각을 간신히 주워 담을 수 있는 정도였고, 아내의 처가가 전쟁이라는 무거운 억압 속에 놓일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그저 견디는 것을 택했다. 살아남는 것도, 살아지는 것도, 어떠한 것도 선택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에만 집중하던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나와 아내는 둘째를 갖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첫째 때 그랬던 것처럼, 바로 우리의 인생을 뒤바꿀 그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번째 달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조용하게 지나갔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시작했어,라는 말을 조용히 머금을 때, 우리는 묘한 감정에 잠시 앉아있어야 했다. 기대를 그렇게까지 크게 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아마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예전과 같지 않은가 보다.'


말로 꺼내지 않았지만 나이와 시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환경이라는 것이, 확실히 달라진 것인가 하는 체감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우리의 삶은 예전과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또는 시간의 흐름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저 우리가 너무 무던해져 버린 걸지도 모른다. 자극을 자극으로 느끼지 못하고 익숙해져 버린 시간의 속도.


그렇다고 해서 조급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열심히 일을 하고 그저 아이가 올 것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들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지는 타이밍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 일이란 주어진 상태에서 얼마나 잘 이겨내냐를 시험할 뿐이라는 것을.


그러던 둘째 달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온 나에게 아내가 작은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아내는 나에게 큰누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는데, 선물 포장을 좋아하실지, 내용은 어떤지를 물어보았다. 내가 누나들과 그렇게까지 친분을 유지하지 않는 걸 잘 아는 아내가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게 짐짓 이상했지만, 상자를 열어 봤을 때 내가 발견한 것은 또 하나의 막대기였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놀람, 안도, 그리고 아주 미묘하게 섞여 있는 두려움까지.


“진짜야?”


내가 겨우 꺼낸 말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다. 크게 기뻐하기보다는, 어딘가 얼떨떨한 웃음이었다. 마치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해 버린 어떤 결과 앞에서,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처럼.


신기하게도,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잔잔한 안도감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다시 이 길 위에 서게 될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가 지금이라는 사실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도.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정말로 운명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했다. 둘째를 가지려고 했던 무렵은, 운 좋게 청약받은 아파트의 완공 기간이 1년 조금 더 남은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삶. 어딘가 덜 채워져 있지만 조금씩 빈 공간이 메워지고 있는 순간. 나 또한 완벽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점점 부족함이 채워지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닮은 순간에 닮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날 밤, 아내는 먼저 잠이 들었고 나는 한동안 깨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어쩌면 앞으로도 완벽해지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살아가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사실이 예전처럼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은 두렵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그 감정 하나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버티는 것에서 시작했던 우리가, 어느새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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