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는 있습니다

버티는 삶에서 살아가는 쪽으로 기울던 어느 시간

by Karel Jo


처음 정신과 진료를 받기 전 찾았던 심리상담센터는, 내가 스스로 견디고 있었던 납덩이로 감싸진 현실이라는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나를 토해내면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대부분 이야기하면서 한숨과 눈물을 동시에 흘려야만 했다.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할 수 없던 그 시간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상처 줄 수밖에 없었던 고슴도치였던 자신. 분명히 망가진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그리 쉬운 시간은 아니었다. 결국, 상담은 오래가지 못하게 되었고.


상담센터에서 나온 검사결과지가 이끄는 대로 찾아간 정신과 진료는 편안한 쪽이었다. 아니, 오히려 편안함을 넘어 평온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병원 대기실은 언제나 차분한 공기와 비슷한 온도를 갖고 있었고, 조용했고, 필요한 말 이외에 어느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을 보러 들어가셔야 한다. 다음 예약일은 언제로 잡겠다. 그 모든 감정선은 진료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언제나 일정했다. 마치 정신과라는 곳은 편안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느낌으로.


처음 진료에서, 이름이 불리고, 의사 앞에 앉았을 때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괜찮지 않다는 것.


“요즘 어떠세요?”


의사의 질문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꽤 무거웠다. 나는 잠시 시선을 떨군 채로 대답했다.


“버티고는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저 웃으며,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지친 것이다. 조금이라도 우울한 감정이 사라진다면, 그건 그대로 즐기시면 되는 거라고. 남들보다 더 자신에게 혹독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말씀하셨다. 변화가 와도, 변화가 오지 않아도 그저 누리시면 되는 일이라고.


그러나 그 느릿느릿한 한 마디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게 다가왔다.


약을 먹기 시작한 첫 며칠은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어지러움과, 설명하기 어려운 둔한 감각이 따라왔다. 머릿속이 맑아진다기보다는, 약간은 흐릿해진 느낌. 하지만 그 흐릿함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지나치게 선명했던 불안과 생각들이 조금은 멀어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생각하지 않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로서는 꽤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들려와야 할 내 안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고요할 수 있다. 그보다, 다른 사람들에겐 이 마음의 외침이 없는 거였을까.


아내는 내가 병원에 다니는 것을 전혀 안쓰럽게 바라보지 않았고, 오히려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곁에서 그저 기다려줄 뿐이었다. 내가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힘드냐고 묻지도 않았다. 단지 가끔씩, 약을 먹을 때 속이 아프지는 않은지, 잠은 잘 오는지, 요새는 꿈은 많이 꾸지 않는지.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다. 나 또한 그런 아내의 배려 속에 나의 우울을 점차적으로 꺼내어 하얗게 씻어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 같았다.


약을 먹은 지 반년이 조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장모님이 들어가신 지 꼬박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아직도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어린이집에 적응하여 점차 유아를 향해 가는 첫째 아이를 보며 우리는 가끔 그렇게 내가 연차를 쓸 때마다 오랜만에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평소에 가 보고 싶은 카페를 가거나, 바닷가에 가서 바람을 쐬거나, 꼬박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둘만의 시간. 남편과 아내는 그렇게 다시 연인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내가 예전 첫째 아이의 아기 시절 사진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기 갖고 싶다. 첫째가 어릴 때 모습이 많이 그리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실로 예상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아니, 어쩌면 언젠가는 나올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지금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운 순간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겨우 나 자신 하나를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여전히 내가 제대로 서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또 하나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내 앞에 앉아 있는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불안 속에서도 여전히 앞으로를 바라보려는 사람. 무너지는 기억 속에서도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나는 그 소리를 외면할 정도로 무너져 있지는 않았다. 치료는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나에게도 다시 감정의 높낮이가 어쨌든 생기고는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나마 나는 답할 수 있었다.


"솔직히 무섭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자. 당신이랑 이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나의 말을 들으며 아내는 조금 예상외였다는 듯이 나를 빤히, 그리고 조용히 쳐다봤다.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말이 잠시 동안 이어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무너져도, 누군가는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


그날 밤, 잠들기 전에 약을 물과 함께 삼키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시간은,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버티는 것에서, 조금씩 살아가는 쪽으로.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방향으로 한 발짝은 내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로, 그날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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