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으로 하루를 건너던 시간들에 대하여
또다시 폴란드를 통한 길고 긴 여정의 끝에, 장모님이 무사히 본가로 복귀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 우리의 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흘러갔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아침의 알람 소리에 나는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내가 밖에 있는 동안 아내는 정신없이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거나, 집안을 정리하거나 하는 시간을 보내다 내가 회사에서 되돌아오면, 정신없이 조잘대는 첫째 아이의 뒤에서 살며시 나에게 기대 오는 아내의 작은 머리.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정말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우리 모두의 마음가짐이 변해가고 있었다. 아내는 지쳐 돌아온 나를 바라보며 밝게 웃어주었지만, 그 웃음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노력이 실려 있었다. 장모님과 영상통화 중에 사이렌 소리라도 들리는 날이면, 자기가 뛰어놀던 추억이 하나하나 부서져갈 때의 순간이면, 아내는 한숨을 쉬고 말없이 창 밖에서 서쪽 하늘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럴 때마다, 더없이 아무렇지 않게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차 한잔과 간식을 준비했다.
그렇게 말없는 노력이, 우리가 서로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믿었다. 말하지 않아도, 애써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눈을 뜨면 언제나 변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지금도 그 의미는 전혀 퇴색되지 않았지만, '하루를 버텨낸다'라는 그 말은 우리의 생활을 관통하고 있는 표현이었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서로가 쉽사리 약해지지 않도록 서로를 지탱하려 했다. 나를 믿고 나에게 의지하는 아내, 그런 아내에게 기꺼이 등을 내어 주는 나 자신. 우리는 한자의 사람 인처럼 그렇게 붙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던 건 나라는 사람이 너무 수많은 사람과 엮여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소중한 딸아이의 아버지이자,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기도 하였지만, 회사에서 팀장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었고 다른 팀들에게는 한 사람의 결재권자와 방향을 제시할 해결사이기도 했다. 책임져야 할 일, 결정해야 할 일은 언제나 나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고, 누군가를 위한 방향과 결정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그래서일까, 집에서 기댈 수 있던 나 자신은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의 기댐을 견뎌내야 했던, 나는 포도나무이자 거대한 고목이었고, 쓰러져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전쟁이 생각보다 빠르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게 모르게 나를 좀먹어갔다. 뉴스에서는 여전히 폭격 소식이 들려왔고, 화면 속 어딘가에는 장모님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연락이 닿지 않는 날이면 괜히 휴대폰을 몇 번이고 확인하게 되었고, 짧은 메시지 하나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괜찮다.”
그 한 마디는 여전히 나를 안심시키기에는 부족했고, 동시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물을 수 없게 만드는 말이기도 했다.
불안 속에서도 그러나 사람들에게 여전히 나는 뿌리가 깊은, 올곧은 버팀목으로 자리 잡아야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는 질문과 가끔 나조차도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지 못한 채로 내려야 했던 답들. 나는 언제부터인가 기능하지만 작동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퇴근길에 아무런 이유가 없이 그저 눈물이 흐르는 자신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때가 왔다. 스스로에게 힘든가?라는 자문을 내려도 답하지 못하고 그저 버겁다는 감정만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한탄의 시간. 과연, 나에게 걸맞은 자리에 지금 서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진작부터 한계에 차올랐지만 그저 괜찮다는 거짓으로 이를 버티고 있는 걸까.
장모님이 말했던 그 문장이, 아무 이유 없이 떠올랐다.
“고향이란, 몸이 불편해도 마음이 편안한 곳이지.”
나는 그 말을 그때는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터져 버린 이후의 나는,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편안한 곳에 있는 걸까. 가족이 있고, 집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도 없는 삶 속에 있으면서도, 왜 나는 점점 더 어딘가에서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걸까.
대답이 쉽게 나오지 못하는 나날 중, 어느 겨울철 떠난 제주도 산길의 운전 중에 결국 나는 내가 잠시 멈춰 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룸미러 뒤의 아내가 나를 보며 던진 한 마디에서. 아내는 나에게 물었다.
"지금, 즐겁지 않아? 표정이 전혀 웃고 있지 않잖아."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괜찮은 척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지점에 서 있었다는 것. 그리고 아마도, 내가 애써 외면해 왔던 어떤 감정들이 이제는 더 이상 숨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히려 눈물이 나오지 않고 아내에게 짧게 다짐했다.
"올라가면, 정신과 치료를 받을게, 당신과 딸, 그리고 나 자신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 말은 다짐이라기보다, 겨우 꺼낸 구조 신호에 가까웠다. 나는 여전히 어디가 아픈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였고,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대로는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