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회사라면 더더욱이나 반길 수 없는
첫째 아이가 3월의 마지막 날에 아내에게 진통으로 세상의 문을 두드리며 이제 나오겠다고 자기의 의사를 가감 없이 표현했을 때, 나는 제발 밤 12시를 넘기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아이는 보란 듯이 1일 날 새벽에 우리를 찾아왔다.
둘째 아이가 또다시 몇 년 뒤 1월 말쯤, 나올 때가 됐는데 문을 두드리지 않았을 때 나는 불안해졌다. '지금이야, 지금 나와야 해. 제발 2월 첫 주는 피해주렴'이라고 속으로 절규하는 나의 외침에 아이는 응답했고, 2월이 시작하기 전 며칠 남지 않은 채 우리에게 웃어줬다.
재무회계팀, 재무팀, 회계팀, Finance, accounting.
여러 의미와 이름을 갖고 각자의 회사에서 오늘도 회계기준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는 이쪽 직무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것이다. 첫째는, 4월 1일생이기 때문에 평일에 생일이 걸리면 이제 나와 촛불을 끌 수 없다. 보통 내가 퇴근하면 이미 자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에.
3.1절의 대체공휴일이었던 어제도 나와 몇몇 팀원들은 사무실에 출근해 이른바 '결산'이라고 하는 월간 루틴에 녹아들었다. 고요한 사무실 속에서 전표를 정리하고, 단가가 시스템에 맞게 들어가 있는지, 혹시 뭔가 누락된 게 없는지 서로의 키보드를 타닥거리던 중에 한 팀원이 내게 물었다.
"팀장님, 원래 Finance에서 일하면 이렇게 남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게 당연한 건가요?"
나는 그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Finance에서 부모님이 되면 이해심이 넓어져. 다 큰 성인들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는데 아이는 뭐 어떻겠니 하게 되거든...^^"
같은 재무회계 쪽이라도, 외국계 회사에서 일한다면 이 숙명은 더욱더 처참해진다. 한 달의 시작이 차라리 주말이면 괜찮다. 주말은 누구나 다 공평하게 쉬는 달력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같이 일을 안 해도 괜찮기 때문에. 본사도 쉬고 나도 쉬는 일정이니 고민 없이 나도 쉬면 된다.
가장 최악은 어제처럼 대체공휴일이 걸리는 날이다. 미국 본사에서 3.1절 같은 로컬 공휴일을 신경 쓸 리가 없고, 그들에겐 어제는 당연히 일하는 날이었기에 결산 일정은 전혀 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출 수입이 빈번한 우리로서는 공휴일에 쉬겠다는 포워더 사에게 서류를 받아낼 재간이 없었고, 그렇게 속절없이 남들 쉴 타이밍에 촉박한 마음만 안고, 공휴일 이후의 업무폭탄을 두려워하며 사무실에 나와 그래도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 둘 수밖에 없다.
물론 나중에 휴일근무에 대한 보상으로 대체휴무를 받긴 하지만, 대체휴무라는 걸 써본 직장인들은 어느 정도 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휴가란, 남들 쉴 때 똑같이 쉬는 게 낫지 남들 일할 때 놀아 봐야 뭔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아마 오늘도 사무실에 도착하면 어제 끝났어야 할 일들+오늘 끝내야 하는 일들이 밀려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겠지. 혹시라도 외국계 회사에서 Finance 관련 직무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꼭 한 마디를 강조하고 싶다. 공휴일을 싫어할 준비를 충분히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