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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5] Casino, Sphere is here

by 잡다한

40시간 만에 다시 누운 침대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라' 는 유혹을 하고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일어나야지.

그래도 좁은 승합차에서 보낸 지난 밤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오늘은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더 잘 수 있도록 시간을 맞췄다.

그래봐야 아침 10시에는 나가야되긴 하는데. 그게 어디야.


역시나 프로도는 진작 일어나서 준비를 거의 마쳤다.

너 안 피곤하니?

아무리 나보다 조금 먼저 잠들기는 했지만...

프로도도 사람이었다. 해가 지고나면 급격히 헤롱대고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이따 스피어 볼 때 자면 안되는데'를 연신 말했다.


그래 맞아.

오늘은 이 여행의 거대한 근본이자 목표.

스피어 Sphere 를 보러 가는 날이다.




스피어 관람은 19시에, 인당 16만원의 거금을 들여 예매를 했다.

그 전에, 우리는 라스베가스 스트립의 주요 호텔들을 돌아다니며 호텔 투어를 할 생각이다.

라스베가스에는 다들 알다시피 엄청난 브랜드의 호텔들이 있고

가장 접근이 용이한 1층 로비 옆 카지노를 포함하여

딱 봐도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소리가 나오는 특징들이 많다.

호텔 투어에만 이틀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우리는 반나절 만에 완료해야 한다.

그나마 편한 날이라고 하는 일정인데도, 꽤나 빡센 일정이다.

휴식은 한국에서 하기로 했으니까...

(근데 귀국 10시간 후에 출근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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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출발.

시작은 라스베가스에서 컨셉 하나로 버티고 있는 플라밍고 호텔이다.

위치가 아주 좋으며, 가격이 아주아주 좋다.

조금 노후화되고, 호텔 자체에서 할 것이 별로 없는 점이 단점.

한국 사람들은 보통 친구끼리 가거나, 아니면 그랜드 캐니언 가기 전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짐을 맡기는 정도로 사용을 하는 듯하다.

현재 구역을 나눠 조금씩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호텔의 특징은 '플라밍고'다.


무슨 소리냐면, 이 호텔에서는 플라밍고를 키운다.

각 호텔마다 컨셉을 가지고 꾸며놓은 보타닉 가든으로 가면

여러 마리의 플라밍고가 건방지게 짝다리로 서 있다.

그래서 플라밍고 호텔이고, 상징색은 분홍색이다.



사실 호텔 투어가 으레 이렇다.

그냥 그 호텔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것을 한번 보고, 나오는 것이다.

카지노 구경 좀 하고, 로비 구경 좀 하고.

그런데 수많은 호텔이 있고 한 호텔에 30분씩만 해도 금세 몇 시간은 지나간다.


호텔을 하나하나 전부 설명할 수는 없으니,

그냥 주요 호텔들만 이야기하자면

분수쇼로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은 보타닉 가든으로도 유명한데

이미 크리스마스 준비가 마쳐져 있었다.

로비에 있는 유리 공예도 유명하다.


에펠탑과 개선문이 있는 파리 호텔

벨라지오 분수쇼를 객실에서 관람이 가능해서 신혼여행 커플이 많이 간다는 코스모폴리탄 호텔

(재주는 벨라지오가 넘고, 돈은 코스모폴리탄이 버네)

크롬웰, 플래닛 할리우드, 파크MGM도 관람했다.


그리고, 스트립 메인 거리에서 가장 아래쪽에 떨어져 있지만

또 그만큼 돈을 많이 쓰고 유명한

뉴욕-뉴욕 호텔과 그랜드 MGM 호텔,

이탈리아 전체를 컨셉으로 하는 시저 CEASER 호텔이 있다.


심지어 뉴욕 뉴욕 호텔은 정말 뉴욕에서 유명한 건물들 외관으로 호텔을 지었고

(크라이슬러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 등)

호텔 내부와 외부를 운행하는 롤러코스터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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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개의 호텔을 도는 데에 3시간 정도가 걸렸다.

거의 카지노만 들렀다가 5분 안에 나온 호텔도 많고

디테일하게 보지 않고 유명한 상징만 해치우고 나온 걸 생각하면 쉽지 않은 여정이었던 것은 맞다.

그래도 각 호텔마다 컨셉에 충실한 디테일들이 살아있고

'돈 쓴 티'가 팍팍 나기에 관광객 입장에서는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각 호텔을 다니며 해결해야 할 미션이 있었다.

이전 글에서 썼던 것처럼, 카지노 슬롯 바우처를 모으는 것이었다.


호텔 상점에서는 수 많은 기념품들을 팔고 있지만 종류가 다양하고, 금액도 비싸다.

처음에는 따로 기념판매하는 '카지노 칩'을 하나씩 사 모으려 했는데

호텔마다 상점 위치가 다르기도 하고, 가격도 쌓이면 비싸서

실제 슬롯을 해야만 나오는 바우처를 뽑기로 했다.

카지노는 못 찾을 수가 없으니까 시간도 빨리 가능하다.


* 이전 글을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카지노에서는 현금을 넣고 게임을 하다가 잔돈이 남으면

다시 현금으로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한 바우처를 인쇄해준다.

그 돈이 아무리 작게 남았어도 바우처를 주기 때문에 바우처야말로 어떻게 보면,

그 카지노에서 게임을 했다는 가장 직관적인 기념품이 되는 것이다.


처음 3개 정도의 호텔 카지노를 갔을 때는

당연히 내 돈 1달러 지폐를 넣고, 25센트 슬롯을 세 번 돌린 후에

0.25달러가 남았다고 찍힌 바우처 한 장을 인쇄하여 기념품으로 챙겼다.

이대로 10개가 넘는 호텔을 간다면, 10달러를 넘게 쓰게 되겠지.


그런데 네 번째 호텔 카지노에 갔을 때

이게 웬걸. 잔돈이 남아있는 슬롯이 있는 게 아닌가.

예를 들어, 한 판에 50센트짜리 슬롯이 있다고 해보자.

따고 잃고를 반복하다보면, 애매하게 40센트 정도가 남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어차피 한 판도 더 돌릴 수가 없으니 그냥 바우처를 출력해야 하는데

너무 작은 돈이라서 그냥 두고 가는 것이다.


하필이면 그게 프로도의 눈에 들어왔다.

프로도는 나에게 알려줬고, 나는 그대로 출력했다.

1달러를 쓰지 않고도 슬롯 바우처를 얻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우리는

그때부터 모든 카지노의 슬롯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잔돈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슬롯을 찾기 위해.

0.01달러여도 좋다. 금액이 아니라 그 바우처가 필요한 것이니까.


그리고 2시간이 지났을 때, 나와 프로도 가방에는

각각 3장의 [내돈내산] 바우처와

7장의 [남돈내산] 바우처가 차례대로 들어가 있었다.


사실, 그 1달러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했냐는 생각을 할 텐데

당연히 정말 1달러가 없어서, 1달러가 아까워서 벌인 짓은 아니었다.


그저, 재밌잖아.

비슷하고 담배냄새 나는 카지노를 휘저으며

매의 눈으로 둘이서 모든 슬롯의 남은 금액을 보고

남아 있으면 슬쩍 가서 CASH OUT 버튼을 누르는

'카지노 바우처 헌터 게임'을 참을 수 있는가?


나와 프로도는 참지 못했다.

한국인이 미국 카지노에서 남은 20원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하여

그것이 절도죄라던가 점유이탈물횡령죄가 적용되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만약, 죄가 되는 행위였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끝없는 자본주의 호텔들과,

이어서 세계에 몇 군데 없는 m&m's 매장과 코카콜라 스토어를 보고

이어서 '기묘한 이야기' 팝업스토어가 있어서 들어가봤는데

우리나라의 '굿즈 판매만을 위한 상술용 팝업'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그 콘텐츠 안에 들어온 느낌의 고퀄리티 팝업이었다.

분명 한국도 처음에 팝업들은 그런 콘셉트가 명확했는데

갈수록 남발되며 퀄리티가 매우 떨어진 느낌이 들어 아쉽다.

체험과 경험보다는 이슈와 판매에 집중한 느낌.


다시 한 번 자본주의를 경험한 후에

이제는 정말 점심을 먹어야 한다.

시간은 이미 오후 2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한 번도 의자에 앉지 못해서 무릎 뒤가 저려왔다.


라스베가스의 음식들은 비싸고, 그 가격대비 맛이 별로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누구인가.

네이버 블로그 몇 개 찾아보면 가격 괜찮고 맛있는 식당 한 두 개 찾는 것은 62초 정도면 충분하다.

그 중 하나가 유명한 프랜차이즈 '핫 앤 쥬시' Hot & Juicy 였다.

여러 메뉴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비닐 봉다리에 새우와 옥수수, 감자를 넣고 쉐킷쉐킷 흔든다.

케이준 양념이나 갈릭버터 양념을 첨가하여.

2달러를 더 내면, 머리를 잃어버린 새우들로 주는데

블로그에서 노헤드 1파운드면 성인 2명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1파운드의 새우는 많았고 나와 프로도는 열심히 입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블로그도 간과한 점은,

우리가 굉장히 매우 배가 고프고 배 터지게 먹어본 적 없는 한국인 두 명이었다는 것.

머리 없는 좀비 새우들을 잔뜩 해치웠는데도

아직 빈자리가 남은 우리의 위장들은 'MORE ZOMBIE' 를 외쳤다.

무시할 수 없는 비명에 결국 1/2 파운드를 추가 주문했다.

이 정도 사치는 괜찮잖아.


공기밥 한 개까지 추가 주문해서 양념에 야무지게 비벼먹은 뒤에야

더 이상 외침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계산해야지.

인당 23달러 정도가 나왔다. (약 32,000원)

우와. 싸긴 싸구나. 한국에서 새우를 이정도 먹으려면 얼만데. (진짜 모름)

배부르니까 또 움직여볼까.




메인 이벤트에서 잠드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호텔에서 10분 같은 1시간의 휴식을 취하고

이제 정말 대망의 메인 이벤트, 스피어를 보러 갈 시간이다.


거대한 크기 덕분에, 꽤 가까워 보였는데 막상 걸어가보니 생각보다 멀었다.

역시, F1 그랑프리 때문에 주요 도로들을 다 막아놔서 조금 돌아가느라고 더 멀게 느껴졌다.

우리가 가진 티켓은 저녁 19시에 관람이 시작된다.

열심히 걸어서 18시 20분쯤 스피어 앞에 도착했고 역시 사람이 많았다.

가까이에서 본 스피어는 그 LED 한 알 한 알의 간격이 예상보다 넓어서 신기했고

그럼에도 엄청난 화질에 그저 감탄만 뱉을 뿐이다.

스피어를 배경으로 사진을 좀 찍으려다가, 정신이 없어서 관람 후에 찍기로 하고 입장 건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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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도 모르는 줄이 곳곳에 늘어져 있었는데

일단 그 중 가장 짧은 줄에 프로도를 세워놓고 그 줄의 정체를 알아보러 떠났다.


아오. 티켓을 사는 줄이래. 난 티켓 있다고.

그럼 그 옆에 줄은 뭐야.

몰라 일단 앞으로 가보자.


앞으로 가 보니 약간의 빈틈(?)이 있었다.

그 찰나에 뭔가 1차 관문같은 문이 열렸고 사람들이 뒤에서 달려왔는데

마침 앞쪽에서 동태를 살피던 우리는 좋은 타이밍에 줄 맨 앞쪽을 쟁취하게 되었다.


알고보니, 스피어 관람 시간은 조금 특이했다.

19시 티켓이면, 18:40분쯤부터 입장이 가능하고

그 입장은 스피어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실제 스피어 영상은 19:40분에 시작한다.

그럼 스피어 내부에는 무엇이 있냐.


딱히 뭐가 없다.

그나마 볼 만한 것은 5개의 인간형 AI 인데 관람객과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비슷한 AI 를 5군데에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5개를 모두 봐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신기하긴 하다.

그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인식하여 말을 걸더라.

한국인 꼬마 아이가 말을 걸었을 때는 한국어로 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사실 10분이면 끝이다.


무서운 AI 탐구를 짧게 마치고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는 굿즈를 사기 위해

구석에 단촐하게 자리잡은 샵으로 향했다.

막연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티셔츠 몇 개와 모자뿐이었고

뭔가 멋진 마그넷이나 키링, 피규어 등을 생각했던 나와 프로도는

'돈 벌 줄 모르네' 라고 3조짜리 건물에게 훈수를 두는 만행을 저질렀다.

근데 저걸 누가 사냐 진짜.

(사는 사람이 꽤 있었다. 역시 미국인들의 심미적 감각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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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30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슥 둘러보며 스피어 음식들의 물가를 확인하고

역시 여기서 먹지 않기를 잘했다며 프로도와 하이파이브를 한번 해주고

20분쯤 남았을 때 상영관에 미리 입장하여 지정좌석에 앉았다.


우리는 4층 가운데 자리를 잡았는데 여기가 가성비 자리로 유명하다.

가성비라기엔 한 시간에 16만원이나 하지만

그 이상의 감동과 가치가 있다면 가격이 무슨 상관이랴.

20분을 앉아서 기다리려니 잠이 오기 시작했다.

프로도는 이미 자고 있었다. '졸고'가 아니라 '자고'이다.


시작 5분 전, 이제 좌석들이 많이 들어찼고 조명이 꺼지고 분위기가 잡혔다.


아, 그 전에.

우리가 예약한 상영 회차는 '지구에서 온 편지' 콘텐츠이다.

쉽게 정리하면, 그냥 지구에 대한 자연 다큐멘터리이다.

일반적인 다큐와는 달리 세부적인 내용이 물론 있지만,

이 부분은 나중에 혹시라도 보게 될 친구들을 위해 생략하겠다.

아마 가장 많은 회차를 상영해서 대부분 이것을 보게 되는데

핸드폰 크기로도 감동을 주는 U2의 공연 영상을

우리가 귀국한 다음 주부터 상영함을 생각하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을 위해. 다시 올 핑계를 위해.




시작됐다.

작은 화면에서 시작되어 지구로 변환되고

그 지구가 끝없이 가까워지며 커지다가 온 시야를 뒤덮고

하얀 설원으로 전환되는 순간은 모두가 '아!' 소리가 나게끔 환상적이었다.


지구의 모든 자연과 동물, 인공적 건축물, 날씨 하나하나까지.

현장의 냄새, 공기, 바람, 진동까지.

코끼리가 옆에 지나갈 때는 그 발걸음 진동이 느껴졌고

거미가 화면으로 뛰어들 때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4K도 최상급의 화질이라고 하는데, 스피어는 16K까지 된다고 한다.

실제로 내부에서 영상을 보면 두 눈으로 실물을 보는 것보다도 선명하다.

내 모든 시야각에 들어찬 화면은

이게 화면이 아니라, 헬기를 타고 순간이동을 한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아, 참고로, 스피어의 모든 콘텐츠는 촬영이 자유롭게 가능하다.

실제로 내 왼쪽 왼쪽 왼쪽에 앉으신 할머님은 40분 내내 촬영을 하셨다.

나는 일부 주요장면 2-3개만 삼십 초 씩 찍었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기에 두 눈으로 최대한 담고자 했으나

나도 현대인인지라 핸드폰에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지 못했다.



내 재활의 근본이자 상징인 스피어에서의 경험은

대단하다. 압도적이다. 정도의 단어로는 형용하기 힘들다.

사실, 이 이벤트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던 만큼

그 묘사와 표현에 대해 더욱 자세하고 길게 하고 싶으나

말 그대로 '뭐라 말할지 모르겠'어서 글이 안 써진다.


짧은 순간이동을 마치고 나서 여운을 한껏 품은 채로 밖으로 나와 못다한 사진들을 찍었다.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사진 찍기 괜찮은 자리들을 찾아봤는데

대부분 그 망할 F1 레이싱 펜스 때문에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찾아내는 한국인들.

역시나 그 장소 주위에는 한국인 팀만 4개.


아니 이제 3개다.

한 팀은 돌덩이 위로 올라가다가 혼나서 도망갔다.


열심히 찍어준 프로도의 노력과는 달리

건질만 한 괜찮은 사진은 딱히 없었다.

프로도에게는 '마음에 든다'고 하고, 호텔로 향했다.

이걸 읽고 진실을 알았을 프로도에게는 미안하다.

프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자세와 표정의 문제였다.

그날 착장이 잘 어울리진 않았던 것 같아.




호텔로 가면서, 유명한 것으로 추정되는 (줄이 길었다.)

슈와르마 샌드위치 집에서 저녁식사 포장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인앤아웃 기본 햄버거 단품을 포장했다.

그렇게 호텔에 들어와 식사를 하고, 짐 정리를 하고, 씻고 나오니

역시나 그냥 넘어갈 리 없는 변수가 등장했다.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다시 LA로 돌아간다.

아침 06시 50분 버스이기 때문에, 6시 2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프로도의 메일함에 메일 한 통이 도착했는데.


버스 시간이 06:20분으로 일방적 변경되었다는 메일이다.

심지어 정류장이 A정류장에서 B정류장으로 바뀌었는데

걸어서 15분이면 되는 A정류장과 달리

B정류장은 택시를 타고도 20분 가까이 갔어야 했다.


바뀐것도 억울한데, 택시비도 내야하고, 잠도 덜 자야하고.

심지어 프로도가 메일 확인을 안 했으면 어쩌려고?

망할 플릭스 버스 Flix Bus. 이러니까 초록색으로 질려버렸지.


우리는 궁시렁대며, 그래도 미리 알아서 다행이다고 위안하며 짧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 채.


다섯 시에 일어나기로 한 우리는

눈을 뜨니 다섯시 반이었다.




재활은 맨몸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과학적 의학기술과 기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인류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더 적은 힘과 적은 고통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법을 연구한다.


마찬가지이다.

나도 내 재활을 위해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고군분투했다.

맨몸으로 부딪히기도 했고 여러 기술을 써 보기도 했다.

이를 악물고 극복하려 노력했지만 재활에 실패했다.


그래서 기술의 힘을 빌렸다.

거금 몇 백만원의 투자를 해서라도 나는 간절했다.

넝마가 되어 끊어진 십자인대들을 어떻게든 이어 반드시 다시 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 기술의 정점에 있는 스피어는

내 상처들을 모두 꿰맸다.

혹자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는 그랬다.

모두 각자의 푸바오 하나씩은 있는 것이니까.

* '고민상담소 : 푸바오가 너무 싫은 당신께' 참고

https://blog.naver.com/stw9707/223593123762


쉽지 않은 재활이지만, 그 가치는 높다.

높게끔 하는 것은, 행하고자 하는 의지다.

나는 이미 다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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