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대해 대신 궁금해 드립니다. 3편. 살만칸
1965년 인도에 세 명의 칸(Khan)이 태어났다. 샤룩 칸, 아미르 칸, 살만 칸. 1980년대 후반부터 2026년 지금 까지 약 40년 동안 이 세 칸은 마치 몽골의 제왕 '칸'처럼 인도를 너머 수십억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별로 군림하고 있다. Khan이란 성은 몽골 투르크 문화권에서 쓰는 그 '칸'과 같은 뿌리의 말이지만, 인도에서는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무슬림들이 넘어오면서 널리 퍼진 성이 되었다. 즉 이 세명의 Khan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에서는 비공식적 차별을 받는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무슬림 출신이다.
* 무슬림: 인도 인구의 15%가량, 약 2억 명, 힌두교에 기반한 정당(BJP)이 집권하며 반무슬림 정서 확산
샤룩 칸(Shahruk Khan)은 발리우드의 왕이라고 불린다. 할리우드의 톰크루즈와 비슷하게 눈빛과 잘생긴 외모를 바탕으로 대중 영화의 스타 중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2010년 개봉했던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으로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아미르 칸(Aamir Khan)은 다니엘 루이스+톰행크스를 합쳐놓은 듯한 연기의 신이자 사회성 깊은 영화를 제작하는 배우이다. 인도 교육 현실을 고발한 '세 얼간이(3 Idiot)'의 주인공 란초 역을 맡으면서 한국에 가장 알려진 인도배우가 되었다.
살만 칸(Salam Khan)은 록키와 람보로 각인되는 실버스타 스탤론과 같은 배우이다. 단선적 슬픔, 기쁨의 감정으로 권선징악 활극을 보여주는 인도인의 영웅이다. 하지만 인도의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서는 거의 아는 사람이 없다.
살만 칸은 앞에 쓴 브런치 글 '인도의 유통, 의외의 인기상품'에서 언급한 인도 최고 럭셔리 슈퍼 Food Square의 건물주이기도 하다. 푸스트퀘어 건물 제일 위층에는 살만칸이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 지인을 모아 파티를 하는 숨겨진 소극장과 연회장이 있었다. 내가 아미르 칸을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하니 푸드스퀘어의 대표가 살만칸의 영화 시사회가 있을 때 아미르 칸도 오니 초청해 주겠다고 했다. 기쁜 마음에 나의 기사에 이야기해 주니 3대 Khan은 보안상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며 그냥 잘 보이려고 하는 말이니 믿지 말라고 했다.
샤룩과 아미르 칸의 영화는 몇 편 모았지만, 살만 칸의 영화는 본 적이 없어 혹시나 만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넷플릭스에서 살만 칸을 검색해 보았다. 그렇게 우연히 보석 같은 영화를 발견하였다.
2015년 '카쉬미르의 소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개봉해서 사랑을 받은 '바즈랑기 바이잔(Bajrangi Bhaiijaan)'이란 영화이다. 바즈랑기는 힘과 헌신의 상징인 원숭이신 하누만의 별칭인 '바즈랑'에 'i'를 더해 하누만을 숭배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바이잔은 형님, 존경하는 남자라는 뜻이다. 직역하자면 하누만 신을 믿는 형님 이란 뜻인데, 이 영화에서는 하누만 신이 상징하는 의미를 더해 '정직하고 착한 인도 형님'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인도가 독립할 때 종교 문제로 무슬림만의 나라인 파키스탄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지만 힌두가 다수인 인도로 분단되었다. 그 후 인도와 파키스탄은 남북만큼은 아니지만 국경을 맞댄 적대적 국가로 군사적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 영화는 이러한 인도 파키스탄의 정치적 상황을 바탕으로 착하고 순수한 인도 아저씨와 티하나 없이 귀여운 말 못 하는 파키스탄 소녀, 그리고 인간의 마음을 믿는 파키스탄 프리랜서 기자가 잃어버린 아이의 부모를 찾아 파키스탄령 카쉬미르로 떠나는 로드무비이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스포 주의). 파키스탄의 깊은 오지 카슈미르 마을에 말 못 하는 한 소녀가 살았다. 인도에 있는 이슬람 성지 사원에 가서 기도를 하면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는 마을 촌장의 말에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를 데리고 뉴델리의 사원에서 기도를 드린다. 파키스탄으로 돌아가는 열차가 기찻길 문제로 멈춰 서고 밤이 되자 어른들은 잠을 청하고, 아이는 새끼 염소 소리에 기차에서 내려 염소와 놀아주었다. 그 사이 기차는 떠나고,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아이는 인도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아챈 어머니는 인도로 기차를 돌려달라 하지만 국경의 장벽은 굳게 닫혀있었다.
아이는 뒤따라 오던 기차에 몸을 실었지만, 그 기차는 반대로 인도를 향해 떠나버렸고 인도의 어느 곳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우연히 시장 길에서 주인공 파완(별명 바지랑기)을 만나게 되었고 무작정 주인공을 따라가게 된다. 하누만 신자였던 파완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신앙 깊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살짝은 모자란 순진한 브라만 아저씨였다. 차마 아이를 저버리지 못한 파완은 아이에게 '무니'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무니의 피부색이 하얀 것을 보고 브라만 신분의 아이이라고 생각해 뉴델리로 데리고 오지만, 파키스탄과의 크리켓 경기에 파키스탄을 응원하는 무니의 모습을 보고 파키스탄인인 것을 알게 되었다.
파키스탄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신청하려 하지만, 아이의 신분을 증명할 수 없어 무작정 국경을 넘기로 한다. 철조망 밑 땅굴을 통해 국경을 넘지만 정직한 주인공 파완은 파키스탄 국경 수비대를 기다리고, 구타를 당하면서도 국경을 넘는 허가를 구한다. 이에 감복한 국경 수비대는 정식 허가는 아니지만 가도 좋다고 말을 해주고, 이를 허가받은 것으로 안 주인공은 파키스탄을 여행하게 된다. 그 와중에 파키스탄에 잠입한 간첩으로 오인받아 수배 대상이 된다. 이를 특종으로 삼으려던 파키스탄 프리랜서 기자 찬드는 사실은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려고 무모한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길을 함께 떠난다. 그 과정에 무슬림 사원에 몸을 숨기기도 하고, 무슬림 지도자(이맘)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주인공은 편협했던 자신의 종교관에서 벗어나 관용과 포용의 마음을 배워나간다.
아이가 달력에 있는 알프스 사진을 보며 집이라고 가리키자, 파완은 인도의 카슈미르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기자는 카슈미르의 일부가 파키스탄이란 것을 말해 준다. 그렇게 셋은 깊고 깊은 설산과 초원이 그림같이 펼쳐진 카슈미르로 향하고 아이의 집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서 주인공은 파키스탄 정보부에 잡혀 구속된다.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강요당하며 모진 고문을 당하지만, 주인공 파완은 끝내 하누만 신의 가르침 대로 거짓 자백을 하지 않고 결백을 주장한다. 그 사이 기자 찬드의 도움으로 아이는 부모 품에 안기고, 아이의 진짜 이름이 샤이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찬드는 파완과 무니, 아니 샤히다가 엄마를 찾아 적대 국가 파키스탄으로 떠난 여행을 기록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며 용감한 파완이 '두 발로 국경을 너머 그의 조국 인도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양쪽 마을 사람들이 국경에 모이기를 호소하였다.
그의 영상에 감동한 양국의 사람들은 국경에 모여들었고, 파키스탄 측 무슬림 군중들은 '바지랑기 바이잔'을 연호하며 굳게 잠긴 국경 철조망 문의 자물쇠를 부수어 열어 주었다. 1899년 11월 9일 TV 화면에 흐르던 독일 베를린 장벽을 부수던 독일인과 같은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의 뜨거운 모습이었다. 정치가 막을 수 없는 '가족은 만나야 한다'는 당연한 열망이 스크린으로 분출되는 듯했다. 두 다리로 당당히 국경을 건더던 파완 뒤로 무니 아니 샤히다가 뛰어와 조막손으로 철조망을 흔들며 소리 없는 함성을 외친다. 멀어지는 파완을 향해 점점 목소리가 새어 나오며, 마침내 목소리를 찾게 된다. 아이의 힘찬 외침에 파완은 뒤를 돌아보고, 둘은 국경 사이 개울로 뛰어가 감격스러운 포옹을 하며 파완이 샤히다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2001년 911 이후 미국 방송을 보면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이 가득하였다. 미국인의 무슬림에 대한 이해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무슬림들이 유럽 문화에 동화되지 않은 채 인구가 늘어나자 2020년대 들어 반이민 시위가 연이으며 극우당이 세를 넓히고 있다. 인도에서도 힌두와 무슬림 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적대감의 근원은 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에 대한 맹목적 신념일 것이다.
2026년 3월부터 계속되는 중동의 전쟁, 귀를 의심케 하는 최고 지도자 간의 악의에 찬 말들, 어린아이들의 희생이 현실 같지 않다. 1991년부터 시작된 화해의 시대는 너무나 짧게 끝나가고 있다. 1~2차 대전이라는 인간의 추악함을 겪은 세대들이 힘들게 일구어낸 평화에 대한 합의를, 자신의 추악함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전후 세대들이 너무나 쉽게 깨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평화는 순진한 믿음이고 약육강식이 세상의 원리라는 댓글들이 인터넷에 가득하다.
나의 생존을 위해 너를 치는 것은 신의 가르침이 아닌 인간의 욕심과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어떤 문명권에서도 올바른 신의 가르침과 인간다움의 지향점은 언제나 사랑, 믿음, 관용, 평화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시아 문명권에서 인간(人間)의 최소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다. 가족은 만나야 한다. 전장의 젊은이들이 가족에게 돌아가 따듯한 한 끼를 같이 할 수 있기를.
< 인도 영화에 대한 토막 상식 >
인도 영화라고 하면 뜬금없이 간드러진 목소리의 신나는 노래와 함께 다소 우스꽝스러운 군무가 나온다던지, 주윤발의 끝없이 나오는 권총 총알이 극사실주의 영화로 느껴질 만큼 물리법칙 따위는 개의치 않는 기발한 액션, 이정재 배우의 수양대군 등장씬이 여성적으로 보일 만큼 어디서 본 듯한 테스토스테론이 흘러넘치는 주인공의 슬로 모션 등장신이 떠오른다.
이러한 인도 대중 상업영화는 마살라(Masala) 영화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힌디어로 '혼합 향신료'를 뜻하는 마살라라는 말처럼 형식적으로는 로맨스, 코미디, 춤과 노래가 섞여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특징이 있다. 내용적으로는 다양한 계층, 연령의 인도인이 즐길 수 있도록 어린이도 이해할 만큼 기승전결 권선징악이 뚜렷한 영화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인도의 영화관에서는 박수와 탄성이 가득하다.
OTT를 타고 한류만 전 세계로 확산된 줄 알지만 사실은 인도 영화도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인도 영화는 서남아시아, 중동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심지어 유럽과 북미의 인디언 디아스포라와 그 이웃 들, 수십억 세계인 수십 억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뭄바이는 인도 영화의 메카이다. 예전 이름인 봄베이에 할리우드를 더해 발리우드라고 불린다.
인도의 연간 영화 제작편수는 3천 편이 넘는다. 이 중 힌디어 영화는 약 1000편으로 볼리우드에서 제작되고, 나머지는 드라비다어 계통인 텔루그어, 말라얄람어 영화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경리단길이 유명해지면서 ㅇㅇ리단길이라는 말이 퍼진 것처럼, 텔루그어 영화의 중심지인 하이데라바드를 톨리우드, 말라얄람어 중심지인 케랄라 지역을 몰리우드, 타밀어 영화 중심지인 첸나이의 코담바캄을 콜리우드라고 부르고 있다.
볼리우드, 콜리우드, 톨리우드 등등 영화 산업이 언어와 민족을 중심으로 분화 발전하고 있지만, 사실 인도영화 초심자에게는 마살라 영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똑같은 인도영화이다. 다만, 볼리우드 영화가 좀 더 할리우드 느낌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면, 남부 인도 영화는 아시아적 정서가 조금 더 강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