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대해 대신 궁금해 드립니다. 2편
2025년 여름, 인도 발령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인도는 물자가 부족하고 공산품 질이 좋지 않으니 웬만한 생필품은 쟁여가라는 조언이었다. 인도 근무 경험이 있었던 직장 선배는 인도 화장지는 냄새나고 질이 안 좋으니 이삿짐 컨테이너 빈 곳 하나 없이 화장지를 채워가라고, 유통기한이 있는 라면은 냉동고에 보관해서 먹으면 오래 먹을 수 있으니 최소 2년 치 먹을 것을 사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인도 최고의 도시 뭄바이에 가는데 설마... 저소득 국에 처음 살아보는 것도 아니고... 소득 수준이 비슷했던 필리핀, 인도네시아도 건물마다, 거의 동네마다 편의점이 있었다. 뭄바이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안일한 판단이었다. 처음 마주한 뭄바이는 리얼 제3세계였다. 화려한 고층빌딩 숲 속에서 대형마트, 편의점 대신 노점이 즐비했다.
한국인의 눈으로 인정할 만한 편의점은 인도 최대 대기업(이재용 회장도 결혼식 하객 중 한 명으로 참여한 암바니 가문의 기업)인 릴라이언스 그룹이 JV로 만든 세븐일레븐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마저도 인도 제1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마하라슈트라 주(州, state)의 양대 도시인 상주인구 이천만이 넘는 뭄바이와 천만 도시 푸네(Pune) 두 곳에만 있으며 그 수는 50 점포 정도에 그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전국에 오만 오천 개가 넘는 편의점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서울에 그 절반 정도가 있지 않을까... 아무 때나 슬리퍼 끌고 가볍게 들리는 편의점과는 달리 불편하게 멀리 찾아가야 하는 인컨비니언스(inconvenience) 스토어가 인도의 편의점인 셈이다.
현대식 오프라인 유통의 상징 같은 대형마트는 땅값이 비싼 뭄바이 도심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델리나 하이데라바드 같은 대도시에는 신흥 중산층을 위한 릴라이언스의 스마트 바자르(Smart Bazaar)나 애버뉴 수퍼마츠의 디마트(DMart)가 성장 중이다.
빈부격차가 극단적인 인도에는 부자들이 많다던데... 발리우드 스타들은 장을 어디서 보는 것일까? 설마 하인들을 시켜 재래시장에서 사 오는 것일까? 외국을 오가며 사는 인도 부자와 연예계 스타들이 카레만 먹지는 않을 텐데, 와인도 위스키도 사케도 마실텐데, 멕시칸 타코와 살사소스, 과카몰리도 먹고 싶을 텐데...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인도 초 부유층(상위 1% 이내, 천사백만 명 이상)을 위한 럭셔리 슈퍼마켓(그로서리 스토어라고 말하는 것이 어울릴 듯 한)은 뭄바이, 델리, 콜카타, 하이데라바다, 벵갈루루 같은 대도시 별로 두세 곳 씩 존재한다. 그중 가장 규모와 상품 가짓수, 품질이 좋은 곳이 뭄바이 볼리우드 배우 주거 밀집지에 위치한 푸드스퀘어(Food Square)다. Food Square가 생기기 전에 Foodhall이라는 마트가 있었는데, 이곳에 대규모 수경재배를 통해 신선한 샐러드 거리를 납품하던 청년 스타트업이 Foodhall을 2023년에 인수하며 인도 최고의 고급 프리미엄 그로서리스토어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이 푸드스퀘어가 입주한 건물주는 인도 영화계의 3대 칸 중 한 명인 살만 칸이다. (인도 영화계 3대 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그래서 발리우드 배우들이 단골이라고 한다.
푸드스퀘어 이외에도 인도 최대 대기업 릴라이언스 그룹이 2020년 Freshpik이라는 프리미엄 식료품 슈퍼를 뭄바이 2개소에 오픈했다. 이 외에도 Nature's Basket이 있다. 이러한 고급 슈퍼는 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가 2014년에 집권한 이후로 경제가 급성장한 결과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인 2019년 이후부터 생겨났다. 그러니 그전에 뭄바이에 근무했던 선배에 비해 나는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서울 백화점 지하 슈퍼나 타워팰리스 근처에 있는 그들만을 위한 고급슈퍼와 별반 차이 없는 상품구성이다. 300개가 넘는 전문 식품 수입상이 공급한 전 세계 가공식품들이 진열대에 가득하다. 인도인 디아스포라가 많이 사는 유럽과 중동의 진귀한 식재료는 서울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런데 소위 HNI(High Net-worth Individuals)라 불리는 인도 상위 1~2퍼센트 고액 자산가들만 가는 이 별세계에서 판매 1위 제품은 너무나 뜻밖에도 우리나라의 그 매운 라면이었다. 그 뒤를 잇는 상품은 인도인의 주식 중 하나인 비리야니(각종 재료를 넣은 쌀밥)용 쌀이라고 한다.
86 아시안게임 3관왕의 스타 임춘애가 말하지도 않은 "라면 먹고 뛰었어요"라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기사가 아직도 생각날 만큼, 라면은 주머니가 가벼울 때 먹는 음식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요즘이야 외국인도 즐겨 찾는 수출 효자 상품이라지만, 인도 최상류 층 슈퍼의 판매 1위라니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매운 향신료가 가득 든 카레를 즐기는 인도인에게 한국의 라면은 입맛에 딱 맞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라면이 베지테리언이라는 것. 소고기 액기스 하나 없는 농부의 마음이 만든 소고기 국물맛 그 매운 라면... 그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이가 만든 그 빨간 진한 라면도 다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지 않은 베지 라면이다. 한국에서 파는 같은 상표 제품보다 깊은 감칠맛이 부족하긴 하다.
우리나라 라면의 가격은 인도 로컬 기업이 만드는 인스턴트 누들(카레에 비벼 먹는 느낌의) 가격의 두세 배 정도이다. 한 달 월급이 30만 원 될까 말까 한 인도 서민에게 한 봉지에 1600~2200원 하는 한국 라면은 끼니대신 먹기엔 비싼 별식인 셈이다.
2032년 호주 브리즈번 하계 올림픽에서 인도의 금메달 리스트가 돈이 없어 배가 고플 때 진하고 매운 한국 라면 덕에 운동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인도의 소득 증대와 한류의 일상화를 동시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