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대해 대신 궁금해 드립니다_과로 저임금 영어 두뇌유출
요가, 명상, 수양의 나라 인도, 인도의 제1의 경제 도시 뭄바이에 오면서 버켓 리스트를 만들었다.
인도 글자 익히기, "데바나가리"라고 불리는 인도 글자는 힌디어, 네팔어 등을 표기하는 알파벳으로,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문자체계인 브라흐미계 문자이다. 음절문자와 음소문자의 중간 정도 특징을 갖는데 인도 문자 체계를 이해하면 태국문자, 티베트문자, 미얀마 문자 등도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았다. 문자에 대한 지평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현실은... 인도 자음 33개 중 10개 넘게 소리가 구분이 안되어 귀가 트일 때까지 무기한 학습을 멈췄다.
마음을 수양하기, 불교와 같은 심오한 동양철학의 본류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대학원 특강에서 시스템 생물학을 주창하는 데니스 노블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에서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을 반박하며, 생물의 원리는 놀랍게도 원효대사의 화엄사상이라고 원효의 한시를 읊어주었다. 사실 반의 반의 반도 이해 못 했지만... 인도에 가면 마음 수양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현실은... 수천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여전히 힘든 인도의 현실에 마음이 자동 수양된 결과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굳어지고 있다.
몸만들기, 해외 주재원 생활을 하면 인간관계도 삶의 패턴도 단조로워진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더 나이 들기 전에, 나의 지병들을 개선하기 위해, 그리고 내 배에도 복근이란 게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다. 마침 입주한 아파트의 헬스장이 밤 12시까지 문을 열었다. 트레이너 몸값도 한국에 비해 매우 합리적이었다. 위 두 가지 버킷리스트는 잠시 중단되었지만 운동만큼은 꾸준히 하고 있다. 가느다란 팔다리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오십견 때문에 버거웠던 무게들이 점점 가벼워졌다. 더 무거운 무게에 도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 이래서 Z세대들이 갓생을 외치며 술담배와 유흥을 뒤로하고 운동에 빠져 드는구나...
그러나... 그런데... 하필이면... 애석하게... 어쩌다가... 어째서... 마침내... 이윽고...
예기치 못한 복병이 찾아왔다. 가벼운 조깅에도 가슴이 무거워졌다. 오랜만에 운동해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강도를 더 높여보았지만 익숙해지기는커녕 심박수가 일정 수준에 달하면 여지없이 가슴이 불편했다.
덜컥 겁이 났다. 겁이 나니 두근거렸다. 몸이 아픈 건지 겁이 나 그렇게 느끼는 건지, 덤벨 때문에 생긴 근육통인지 아니면 다른 흉통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최근 부쩍 한국에서 부고 소식이 회사 게시판을 통해 들려왔고, 아직 젊은 유명인의 돌연사 뉴스가 귀에 날아와 박혔다. 한국까지 직항도 없는 이역만리 다른 문화권 인도뭄바이에 있다 보니 건강염려증 쫄보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먼지가 자욱한 길거리를 보면 인도의 병원에 갈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괜찮아지겠지 하며 몇 달을 버텨봤지만 내 몸은 "쫄보 아저씨, 이만 병원에 가봐"라고 말을 걸어왔다. 뜬금없이 2000년대 중반 미드 열풍을 일으켰던 프리즌 브레이크가 생각났다. 악당 티백이 잘린 팔을 아이스박스에 담아 어느 병원으로 들어가는 신이었다. 의사가 신고할까 봐 마취를 거부하고 총을 겨누며 봉합수술을 시켰다. 착한 인도인 의사는 너무나 실력이 좋아 성공적으로 팔을 붙여주었고, 티백은 그 은혜에 대한 보상으로 총으로 쏘는 대신 고통 없이 주사로 살해를 하는 에피소드였다. 그렇지! 미국에서도 명의는 인도인이지! 분명 그 인도인 의사는 미국 엑센트가 아니라 인도 엑센트를 쓰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사무실 인도인 동료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는 의사가 추천해 준 의사라며 인상 좋은 할아버지 의사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병원도 예약해 주었다. 병원은 서울에 있는 대형 종합병원보다 약간 작은 규모였다. 시설은 국립의료원과 사립병원의 중간 정도. 그런데 의외로 접수에서 의사 진단, 각종 검사까지 일사천리였다. 병원에 간다니 주변 한국분들이 얼마나 기다려야 할 지모르니 마음 느긋이 가지라고 조언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알고 보니 볼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즐겨 간다는 뭄바이에서 가장 유명하고 비싼 병원이었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의 부자들을 위한 병원에 비하면 평범한 대학병원 같은 건물 치장과 실내 모습에 인도 최고 부자들만의 병원이라고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유명 병원이라 당연히 진찰료도 비싸다. 비싼 만큼 환자 수도 적고 서비스도 신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국 병원은 젊은 간호사, 인턴, 레지던트가 가득한 곳에 몇몇 중장년의 베테랑 교수님이 회진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 병원에는 연세를 가늠하기 어려운... 아직 수염을 기르거나 피부색이 다른 인도인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누가 봐도 은퇴할 나이가 훌쩍 넘어 보이는 등이 굽은 인자한 노인 의사가 청진기를 목에 걸고 다니고 있었다. 병원 홈페이지 의사 소개란을 둘러보아도 젊은 의사보다는 배테랑 의사가 절대다수였다. 이유가 뭘까...
젊은 의사 두뇌 유출, 열악한 인도의 현실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똑똑한 이들의 워라밸과 고소득을 향한 열망
공대 안 가고 의대만 가려고 한다고 한탄하는 한국에서, 인도는 공대가 신분상승의 지름길이라고 부러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실 인도에서도 공대뿐만 아니라 의대도 매우 선호되는 곳이다. 의대에 들어가기도 어렵고 의사 수도 한정적이다. NEET라는 의대입학 전용 시험을 치르는데 연간 200만 명 정도가 응시한다고 한다. 이들 중 상위 점수 순으로 각 학교에 배정이 되는데 의대 신규 입학자 수는 12만 명 수준이다. 대략 매년 2200만~2700만 명이 태어나고 그중 30%가량이 대학에 진학한다. 매년 신규 입학자 수는 1,000만 명가량이다. 이 중 12만 명 정도가 의대에 입학한고 하면, 인도도 재수 삼수 사수생들이 있어서 단순계산하기는 어렵지만, 단순 계산하면 의사가 되기 위해 대략 상위 5~6% 정도 공부 실력이 있어야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치열한 공부와 경쟁 끝에 의사가 되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한다. 다른 직업 대비 상대적 높은 급여와 사회적 지위가 있지만, 주 70시간이 넘는 노동 강도와 환자 폭력 등으로 해외 이주를 선호한다고 한다. 구미 선진국은 고령화 등으로 의사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중동의 석유 부국들도 인도 의사에 의존하고 있다. 연간 3만 명의 신규 의사 중 12%가량이 해외 행을 택하고 있다고 한다. 인도 보다 임금이 열 배는 높은 미국, 영국, 호주 등 선택지도 많다.
인도에서 돈을 들여 키운 인재들의 해외 유출, 측 Brain Drain의 결과 젊은 의사가 부족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필리핀에서도 경험을 했었다. 심지어 필리핀 의사들은 미국으로 가 간호사도 한다고 한다. 필리핀 의사 소득 보다 미국 간호사 소득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구가 많은 인도와 필리핀의 실력 있는 의사들이 부국의 의사부족 공백을 메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생각에는 유창한 영어실력 때문이다. 고학력일수록 공부용 언어는 영어이기 때문이다. 예전 한국 의사들은 언어 장벽으로 해외 취업 엄두를 못 내었지만, 영어유치원부터 단련된 영어실력 덕분에 지난 의대정원을 둘러싼 의료파동 때 해외로 눈 돌리는 젊은 의사들이 늘었던 기억이 있다. 한 국가의 소득이 OECD 선진국 보다 소득이 낮은 개도국에서 영어실력은 외국기업 투자유치라는 득이 있어 보이지만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한 핵심인재의 두뇌유출을 쉽게 하는 요인이 되어 그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직접 경험한 인도, 필리핀이 그러하였고, 자메이카나 카리브 국가들 또한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노인에 대한 공경 문화, 시험 성적보다는 많은 임상에 대한 신뢰 문화
한국 의사에 버금가는 인도 의사의 살인적 진료 강도를 보면, 노년의 의사들은 수만 건의 임상 경험을 가지고 있다. 병원에서도 30년 경력의~~, 영국 미국에서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와 같은 문구로 소비자의 신뢰를 사고 있다. 임상 경험이 많은 나이 든 의사를 신뢰하는 인도 특유의 문화, 인도의 고질적인 의사 부족 현상 등이 겹쳐 좋은 병원일수록 고령의 의사가 많은 것이었다.
나의 심장 주치의도 오랜 영국 의사 생활을 한 35년 경력의 의사로 뭄바이 최초로 심장제세동기 삽입 수술과 아시아 최초로 분기부 병변 자가 확장 스텐트 삽입시술을 한 경험 많은 의사라고 한다. 하지만, 고령의 의사분이 최신 의료 기술을 계속 연구하는지, 혹은 최첨단 기기로 정밀 수술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참고로 인도는 인구 1000명 당 의사가 0.79명이라고 한다. WHO권고치는 최소 1명이고 OECD평균은 3.9명, 우리나라는 2.7명 정도이다. 인도의 인구는 우리나라의 29배이다. 인도의 의대 정원은 우리나라의 42배 수준이다. 만약 우리나라도 의사의 해외 유출이 인도처럼 늘어난다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인도 수준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