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라는 선언으로 세계 철학사에 충격을 던졌다. 그가 말한 ‘신의 죽음’은 문자 그대로 신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절대적 도덕의 붕괴, 즉 인간의 의미 체계를 지탱해 오던 초월적 권위의 몰락을 상징한다. 계몽주의 이후 이성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신에 의해 보증되던 가치 체계는 설득력을 잃었다. 니체는 이 변화를 “가치의 전도(顚倒)”로 보았고, 인류가 곧 모든 절대적 기준을 상실한 시대, 다시 말해 허무주의(nihilism)의 시대로 들어서리라 통찰했다.
「즐거운 학문」의 광인 우화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외치는 인물을 통해, 현대인이 스스로 전통적 가치를 살해해 놓고도 그 결과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폭로했다. 그에게 ‘신의 죽음’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야 할 시점이 왔음을 알리는 철학적 선언이었다.
초인(Übermensch):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
니체는 허무주의 이후의 인간상을 ‘초인(Übermensch)’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다. 초인은 신이나 초월적 진리를 기대하지 않고, 이 땅의 삶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이다. 그는 기존 도덕(니체가 ‘노예 도덕’이라 부른)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과 본능, 의지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그의 대표작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는 말한다.
“초인은 땅의 의미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초인은 자기 안의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존재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자기 극복의 인간, 즉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다.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이 말했듯, 초인은 “자기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는 단순한 권력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창조적으로 확장하려는 생의 의지, 즉 존재를 긍정하고 세계에 “예스”라고 말하는 에너지다.
마지막 인간: 안락함에 갇힌 존재
초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 개념인 ‘마지막 인간(der letzte Mensch)’을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 인간은 도전과 고통을 피하고, 오직 편안함과 안전만을 추구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니체는 그를 “모험할 의지도, 큰 꿈도 없는, 그저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인간”이라 부르며 현대 대중의 자화상으로 경고했다.
그는 이런 인간형을 “현대의 목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라 비판했다. 그들에게 삶은 더 이상 창조의 무대가 아니라, 소비와 안락의 반복에 불과하다. 이러한 유형의 인간이 늘어날수록 인류 전체는 정신적 퇴보에 빠진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알고리즘이 결정해 주는 삶, 불편함 없는 기술 문명 속에서 우리는 그 ‘마지막 인간’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니체가 경고한 허무주의는 이제 더 이상 철학 교과서 속의 개념이 아니라, 현대인의 일상 속 정서로 스며들어 있다.
정보화 시대의 허무주의와 가치 진공
21세기 우리는 풍요 속의 공허를 산다. 기술은 신의 자리를 대신했지만, 그 기술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미디어는 무한한 정보와 의견을 쏟아내지만, 그만큼 판단의 기준은 희미해졌다. 니체가 말한 “가치의 붕괴”는 지금의 ‘가치의 진공 상태’, 즉 방향을 잃은 개인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미 19세기에 “대중(herd)의 지배”를 우려했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같은 유행을 좇을 때, 창조적 개인은 군중 속에서 질식한다. 오늘날 ‘좋아요’의 수와 트렌드가 인간의 자존을 결정하는 시대, 니체의 경고는 놀랍도록 현실적이다.
현대의 초인: 자기 창조의 윤리
니체적 초인은 영웅이 아니다. 그는 매일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극복하고 새롭게 정의하려는 개인이다. 그가 제시한 실천적 원칙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비판적 사유 — 남의 가치관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서 신념을 길러라.
(2) 자기 극복 — 쉬운 길 대신, 어려움을 견디며 자신을 확장하는 삶을 선택하라.
(3) 고독의 용기 — 대중의 오해와 조롱 속에서도 자기 길을 간다는 외로움을 받아들여라.
니체에게 고통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통과의례였다. 그는 말한다.
“별을 낳으려면 혼돈을 품어야 한다.”
이 말은 오늘날의 자기 계발과는 다른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초인은 외적 성공보다 내적 변모를 추구한다. 그에게 삶은 스펙이 아니라 서사, 즉 예술 작품처럼 빚어가는 창조 행위다.
역사 속 초인의 흔적
니체는 나폴레옹을 “짐승과 초인의 혼합물”로, 괴테를 “완성된 인간의 전형”으로 언급했다. 나폴레옹은 기존 질서를 부순 힘의 상징이었고, 괴테는 예술과 과학, 철학을 통합한 전일적 인간상이었다. 니체가 꿈꾼 초인은 바로 이 두 인물의 특질 — 의지의 강인함과 정신의 고귀함 — 이 결합된 존재였다. 그는 “로마의 카이사르와 그리스도의 영혼을 함께 지닌 인간”을 이상형으로 묘사했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카뮈는 니체의 계보를 잇는다. 그들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거나 “부조리에 대한 반항”은, 신 없는 세계에서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려는 초인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예술에서도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 버나드 쇼의 『인간과 초인』은 이 사상을 문학적으로 구현했다.
초인의 사회적 함의와 오해
니체의 초인 사상은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 창조의 윤리를 일깨우며, 인간 정신의 잠재적 위대함을 복원했다. 그의 철학은 “삶을 예술처럼 창조하라”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이는 오늘날 자기실현, 자기 서사적 삶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초인 사상은 한때 나치 독일에 의해 왜곡되어 오염된 이력이 있다. 히틀러는 니체의 언어를 이용해 인종적 ‘우월 인간’의 이념을 선전했지만, 니체는 생전에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혐오한 철저한 반권위주의자였다. 그의 초인은 혈통적 우월자가 아니라, 정신의 귀족, 즉 자기 극복을 실천하는 자유인이었다.
니체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물음
오늘날 인공지능과 자본, 알고리즘이 인간의 결정을 대신하는 시대에, 니체의 질문은 다시 울린다.
“너는 스스로의 주인인가, 아니면 편리함의 노예인가?”
니체의 초인 사상은 우리에게 ‘남과 다름’을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라는 존재의 용기를 요구한다. 그에게 삶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니체의 철학은 허무 이후의 윤리학이다. 신이 죽은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예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 그 믿음이 바로 초인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마무리
니체가 오늘의 세상을 본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기계는 신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 초인이 되지 못했다.”
우리가 기술의 편리함 속에서도 여전히 고뇌하고, 의미를 찾아 헤매며, 자기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려 할 때 — 그 순간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초인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