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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알고리즘 시대, 선택의 주인이 사라진 사회

기술이 인간의 마음을 가두는 방식에 대하여

by 엠에스

<플랫폼 알고리즘 시대, 선택의 주인이 사라진 사회>

— 기술이 인간의 마음을 가두는 방식에 대하여


문명은 언제나 인간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알 수 없는 거대한 손에 의해 이끌려 다니는 듯한 기묘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손은 보이지도, 소리 내어 말하지도 않지만, 우리가 어떤 뉴스에 머물고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떤 감정으로 하루를 살아갈지를 조용히 결정한다.


그 손의 이름은 플랫폼 알고리즘이다.


플랫폼은 처음에 인간을 돕는 도구였으나, 이제는 인간의 시선과 시간을 지배하는 새로운 권력, 혹은 가장 조용한 독재자로 성장했다. 우리는 스스로 정보를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플랫폼이 만들어 놓은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이미 선택된 선택지 사이를 오갈 뿐이다. 우리는 다른 가게와 더불어 과일 가게를 보는 게 아니라 이 사과나 저 사과 속에서 선택할 뿐이다. 이 시대의 자유란 자신이 만든 그림자를 자유라고 착각하는 어느 우화 속의 인물과도 같다.


‘선택하는 인간’에서 ‘선택되도록 설계된 인간’으로


현대의 플랫폼은 친절한 미소를 띤 안내자처럼 다가온다.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 보여드립니다.”

“당신의 취향을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절함 속에는 우리를 오래 붙잡아 두려는 집요한 계산이 숨어 있다. 우리는 관심의 주인이 아니라 관심의 공급자이며, 알고리즘은 우리의 사소한 클릭, 짧은 정지, 한 번의 스크롤까지도 모두 흡수하여 다음 콘텐츠의 진열 순서를 계산한다.


우리가 고른 것 같지만, 실은 우리를 고르도록 만드는 장치가 먼저 움직였다. 이것은 자유의 부재가 아니라 자유의 모양을 한 구속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가장 교묘한 권력은 폭력이 아니라 일상에 스며드는 강요”라고 말했지만, 오늘의 알고리즘은 바로 그 교묘함을 극치까지 끌어올린다. 우리는 클릭 하나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그 행동이 다시 우리를 규정한다.


플랫폼은 더 이상 기업이 아니다—그들은 디지털 시대의 ‘여론 설계자’다


플랫폼은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언론도 국가도 넘어서 한 사회의 감정과 여론을 재편하는 제4의 권력이 되었다. 자극적인 영상일수록,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말일수록, 상처를 건드리는 이슈일수록 플랫폼 상단에 배치된다.


왜일까?

인간의 감정은 이성보다 오래 머물고, 분노는 숙성된 와인처럼 체류시간을 늘리며, 논쟁은 광고주에게 황금과도 같은 클릭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이 구조 속에서 시민은 공론장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을 소비하는 소비자, 혹은 알고리즘 실험의 표본으로 전락한다. 사회는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기보다는 더 강한 말, 더 큰 분노, 더 많은 혐오를 향해 달려간다. 우리는 진실보다 속도가 앞선 시대에 살고 있으며, 깊이보다 자극이 우선하는 사막 위를 걷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선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정보의 질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의견의 다양성과 정보에 접근할 자유가 보장될 때 유지된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정교해질수록 우리는 다른 의견을 마주칠 기회를 잃고, 스스로 만든 거울방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목소리만 반복 재생한다.


이른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은 사실 기술 용어이자, 동시에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깊은 그림자다. 우리가 다른 관점을 볼 기회를 잃을 때, 사회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그 결과, 우리는 자유롭게 판단하는 시민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흐름에 따라 떠밀려 다니는 디지털 시대의 여론 종속자가 된다. “철학하지 않는 사회에 민주주의는 없다.” 플랫폼 시대의 민주주의는 이 말의 무게를 더욱 절실히 드러낸다.


알고리즘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이윤의 논리’다


플랫폼을 비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악의로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뿐이다. 광고 기반의 경제 모델에서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는 단 하나—우리의 시간, 시선, 감정, 그리고 주의력을 가능한 한 오래 붙잡아두는 것이다.


플랫폼은 인간의 정신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알고리즘의 공공성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폭풍 속에서 촛불의 불씨를 찾으려는 일과도 같다.


제도의 개입—기술을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 알고리즘 투명성은 ‘기업의 배려’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다

알고리즘의 원리, 정보 배치 기준, 노출 구조는 공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는 기업 비밀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민주적 감시의 최소한이다.


● 독립적 알고리즘 감사 기구의 필요

플랫폼 스스로의 자정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계·시민단체·기술 전문가·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외부 감시 체계가 필수적이다.


● 공익 목적의 데이터 접근권 보장

익명화된 사용 패턴 데이터를 연구자·공공기관·언론이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을 줄이지 않는 한 플랫폼 권력은 강화될 뿐이다.


경제모델의 변혁—‘관심을 상품화하는 경제’를 넘어


알고리즘 문제의 뿌리는 ‘기술’이 아니라 ‘돈’이다. 따라서 해결책 역시 기술이 아니라 경제 모델의 재설계에서 시작된다.

● 광고 중심 모델의 구조적 한계

● 구독·후원·비영리 플랫폼 등 대안 모델 육성

● 공영 플랫폼의 사회적 역할 정립

● 공공 알고리즘 개발


기술이 인간을 사로잡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을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경제 구조 자체가 변해야 한다.


시민의 통찰—문제의 마지막 열쇠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행동을 학습한 것이지 스스로 태어난 괴물이 아니다. 우리가 분노에 빠져 있을 때 분노의 콘텐츠가 강화된다. 우리가 자극을 클릭할 때 자극의 문명은 절정을 향해 달린다.


따라서 플랫폼 문제의 해법은 기술과 제도를 넘어 개인의 내면적 성찰에 달려 있다.

● 비판적 사고 능력

● 다양한 관점에 대한 접근

● 감정 조작 콘텐츠에 대한 거리두기

● 스스로 정보 생태계를 구성하는 능력


이는 현대 시민의 필수적 교양이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결론 — 기술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자주성’을 되찾는 일


플랫폼 알고리즘은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는 가장 조용한 권력이다. 그들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을 재편하고,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우리의 의견을 형성한다.


이 시대의 진짜 질문은 기술이 아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있으며, 무엇에 의해 선택되는가?”

“우리는 기술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에게 쓰이고 있는가?”


플랫폼 알고리즘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을 조용히 바꿔 놓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창문의 크기와 위치를 다시 인간이 결정하는 일이다.


기술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은 더 강한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은 질문, 더 성숙한 시민성, 그리고 더 단단한 민주적 감시다.


우리는 플랫폼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다시 인간의 편으로 되돌리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이야말로 이 시대에 남겨진 가장 소중한 자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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