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메르츠의 질문과 이재명의 답변

G20 무대에서 드러난 두 지도자의 세계관

by 엠에스

<메르츠의 질문과 이재명의 답변>

— G20 무대에서 드러난 두 지도자의 세계관


정치란 종종 한 켤레의 신발에서 드러난다. G20 남아공 회의에서 이재명이 신었던 높다란 구두는 단순한 패션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깨를 맞대고 서고 싶다’는 욕망의 은유처럼 보였다. 지난 APEC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 G20에서 유럽을 이끄는 마크롱과 메르츠 사이에서, 한국의 지도자가 크게 보이고 싶어 했던 마음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교는 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외교는 세계의 균열을 읽는 능력, 그리고 당신은 어디에 설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명확한 대답으로 이루어진다. 신발의 굽은 몇 센티미터든 조정할 수 있지만, 국가의 좌표는 결코 얇은 깔창으로 보정할 수 없다.


그 점에서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와 이재명 사이의 짧은 대화는, 아마 이 시대 국제질서의 본질을 작은 프리즘처럼 드러낸 순간이었다.


독일이 기울고, 세계가 흔들리고


독일은 지금 거대한 구조적 전환의 한가운데 있다. 폭스바겐과 아우디, 보쉬 같은 전통 제조업은 인력 감축을 선언했고 실업률은 10년 만에 300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산 전기차는 유럽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고, 유럽이 찬란한 미래라고 불렀던 태양광·배터리 산업은 중국 기업의 손에 넘어갔다.


에너지 역시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던 독일은 전쟁이 터지자 에너지 가격 폭등이라는 참혹한 대가를 치렀다. 수십 년간 독일 사회를 이끌었던 ‘친중·친환경·이민 개방’이라는 메르켈식 좌파·중도 정책은 이제 독일 보수층의 언어로는 ‘자초한 위기’로 기록되고 있다.


메르츠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처 위에서 등장한 인물이다. 그의 언어는 감정적 적대가 아니라, 생존의 언어다.


“공급망을 되찾아야 한다. 기술을 지켜야 한다. 중국 의존은 국가적 위험이다.”


그는 이를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으로 본다.


메르츠의 질문 — 왜 중국인가


그래서 메르츠가 이재명에게 던진 첫 질문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한국은 중국과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


독일이 던진 질문은 곧 유럽이 던지는 질문이며, 유럽이 던지는 질문은 곧 자유세계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물건이 어디에서 오고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주권적 경제의 문제다.


어쩌면 메르츠는 이 순간 한국이 어느 좌표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을지 모른다. 트럼프가 선언한 ‘중국 포위망’은 지금 남미에서 밀레이가, 일본에서 다카이치가, 유럽에서 메르츠가 함께 잇대고 있다. 이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한국은 어디쯤 있는가. 그 질문의 첫 문은 ‘중국’이다.


그러나 대답은 통일이었다


이 지점에서 이재명은 엉뚱한 문을 열었다. “독일 통일의 노하우를 알려달라.”


중국 전략을 묻는 자리에서 독일 통일을 들고 나온 발언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즉답을 하기 곤란하거나 정책적 우선순위가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신호다.


메르츠는 짧고 단호하게 답했다. “There is no secret know-how.” 비밀 노하우는 없다.


그리고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서로 나란히 서기 위해 아무리 굽을 높여도, 지도자의 언어가 향하는 방향은 속일 수 없다. 외교의 본질은 세계관의 높이다.


세계는 탈 중국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금 세계의 흐름은 명확하다.

● 네덜란드는 중국 기업의 반도체 자회사를 강제 인수했다.

● 프랑스는 중국 브랜드 쉬인의 제품을 전수조사하며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 영국·독일은 중국 전기차에 대한 규제와 조사로 사실상 ‘배제’의 방향을 확인했다.

● 유럽 의회는 친환경 정책의 좌파 연대를 버리고 보수·우파와 손잡았다.

● G7은 ‘공급망 재편’과 ‘핵심광물 동맹’을 선언했다.

이것은 어느 한 정치인의 취향이 아니라, 전 세계 자유진영이 공유하는 ‘경제 안보 시대의 생존 전략’이다.


그런데 한국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재명은 G20에서 다자주의·환경·WTO 복원을 강조했다. 평시 이 메시지 자체는 국제 규범을 존중하는 이상적 외교의 모습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 타이밍이다.


세계가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의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순간, 한국은 다시 글로벌리즘·다자주의의 회복을 말한다. 중국이 국제 규범을 이용해 무역 우위를 확보해 왔다는 비판이 커지는 지금, 한국은 WTO를 복원해 중국에게 더 넓은 무대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이 장면은 마치 거대한 강의 흐름이 방향을 틀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헤엄치려는 듯한 우생마사(牛生馬死)의 모습이다.


외교는 ‘어디에 서느냐’의 문제다


국가는 거대한 강 위에 떠 있는 다리와 같다. 강물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읽는 능력, 그리고 어느 기둥을 더 단단히 붙잡을지를 선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메르츠는 ‘위험 관리’에 초점을 둔다.

● 이재명은 ‘국제 규범’에 초점을 둔다.


둘 다 가치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타이밍이 곧 국력이다. 세계가 위험을 줄일 때 혼자 규범을 외치는 나라는 쉽게 취약해진다.


결론 — 굽높이는 국가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


G20에서의 장면을 단순한 일화로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교란 작은 언어와 순간들 속에서 국가의 미래가 드러난다.


메르츠는 한국이 어느 편에 서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트럼프의 반중 네트워크는 이미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스스로의 위치를 말하지 못했다.


어깨를 나란히 서고자 구두 굽을 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의 흐름을 읽고, 대한민국이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명확히 하는 일이다.


미래는 올바른 방향을 선택한 자의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방향은 오직 정책의 신념과 외교의 용기로만 결정된다.


한국이 다시 자유세계의 중심에서 전략적 위치를 되찾기 위해서는 외교의 기둥을 다시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 시대가 한국에 요구하는 질문이자, 우리가 지금 답해야 할 과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