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의 경고와 오늘의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종종 “국민의 뜻”이라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포장되곤 한다. 그러나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일찍이 경고했다.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은 ‘독재자’가 아니라, 다수라는 이름으로 횡포를 정당화하는 바로 그 국민 자신일 수 있다고.
밀은 말한다.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순간, 사회는 한 사람의 폭군보다 더 거대한 폭군을 만들어낸다. 선거에서 이겼다는 이유로 국가 권력을 독점하거나 반대 의견을 배제하는 순간, 자유는 이미 무너진 것과 같다. 그리고 그 폭정은 폭력보다도 일상적이고, 공권력보다도 은밀하게 개인의 삶과 생각을 잠식한다. 이 오래된 경고는 오늘 한국 사회에도 불편할 만큼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다수’라는 이름의 정치, 한국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다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 어느 진영도 이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국민이 명령했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패배하면 ‘적폐 세력’ 혹은 ‘수구 기득권’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밀의 말대로, 상대 진영을 민주주의의 일부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파괴되기 시작한다.
■ 진보 진영의 ‘다수의 폭정’ 사례
특히 최근 몇 년, 거대 의석을 차지했던 민주당의 사례는 밀의 논의와 가장 직접적으로 닿아 있다.
(1)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강행(2022)
상임위 사보임, 회기 쪼개기 등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속도전. 반대 전문가 의견, 국회 내 토론, 사회적 합의를 사실상 차단. “다수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준 사건.
(2) 탄핵의 정치화
선관위원장, 검찰총장, 장관 등 특정 인사를 대상으로 ‘탄핵’이 정치 전술처럼 남발. 탄핵은 원래 헌정 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안전장치인데, 당파적 이익을 위한 ‘목줄’로 사용되기 시작.
(3) 법원의 판결과 수사에 대한 조직적 압박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이 실제로는 특정 정치 사건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 야당의 다수 의석이 사법부 독립을 흔드는 데 사용되었다는 비판.
이 일련의 행동들은 모두 동일한 철학적 문제를 지닌다—다수의 힘을 견제 없이 행사하면 권력은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협자가 된다.
보수 진영 또한 자유롭지 않은 ‘다수의 폭정’의 유산
밀의 경고는 어느 편의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보수 정치 역시 과거와 현재 모두 민주주의 원칙을 흔든 사례에서 자유롭지 않다.
■ 보수 진영의 사례들
(1) 과거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2012 국정원 사건, 군 사이버사령부 여론 조작 등)
국가 권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위반. 다수의 선택을 왜곡하고 국민의 판단을 조작하려는 시도였다.
(2)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블랙리스트 사건
대통령 권한을 사인(私人)이 행사하는 비정상적 국정 운영. 문화예술계 반대 세력 제거 정책은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폭정’의 전형.
(3) 검찰권 남용에 대한 비판적 시선
정권의 정적을 겨냥한 수사라는 지적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법치주의가 정치의 도구가 되는 순간, 다수의 폭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 정치의 양 극단은 동일한 오류를 반복했다. “우리가 다수이며, 우리가 정의이며, 우리는 권력을 마음껏 행사할 자격이 있다.” 이 확신 자체가 민주주의의 위기다.
한국 민주주의의 진짜 위기는 무엇인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특정 정당이 권력 남용을 했다는 데 있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정치가 시민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
정치는 ‘우리가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구조를 강화하며 지지층을 결집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을 요구한다. 이 공간이 사라지면 결국 다수의 폭정은 곧 시민의 폭정이 된다.
(2) 국민 또한 다수의 폭정을 지지할 때가 많다는 점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하는 일은 “개혁”이고 상대가 하는 일은 “적폐”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버리고 편의적 신념만 붙든다.
밀은 바로 이것을 경고했다. “진짜 위기는 폭군이 아니라, 폭군을 환호하는 대중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철학적 통찰
밀이 강조한 민주주의의 본질은 이렇게 요약된다.
(1) 절차는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한 방법일 뿐, 민주주의의 전체가 아니다. 토론, 숙의, 반대자의 권리 보장 등이 사라지면 다수결도 폭정이 된다.
(2) 반대 의견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자산이다
사회가 성숙할수록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힘은 약해지고 반대 의견을 포용하는 힘은 강해진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핵심이자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이다.
(3) 민주주의는 ‘우리’가 아닌 ‘나와 다른 타인’을 어떻게 대할지의 문제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견디는 인내의 정치이며, 타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윤리적 구조다. 즉, 민주주의는 정치 제도가 아니라 시민의 품격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앞으로 가야 할 길
보수는 진보의 잘못만을, 진보는 보수의 잘못만을 지적하며 서로를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하는 이 구조는 결국 쌍방 독주와 쌍방 폭정을 낳을 뿐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려면 다음이 필요하다.
(1) 절차적 정당성 회복
선거에서 이겨도 독점할 수 없고, 선거에서 져도 배제되지 않는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2) 권력기관의 중립성 재확립
검찰, 법원, 경찰, 국회는 누구의 정치적 도구도 되어서는 안 된다.
(3) 시민의 철학적 성찰
“내 편이 이겼으니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는 사고를 버릴 것. 민주주의는 ‘우리 편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맺음말 – 민주주의는 다수의 이름으로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한국의 정치 현실은 보수와 진보 어느 쪽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그 폭정의 순간들에 국민의 상당수가 열광적 지지를 보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언제나 정치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시작은 우리 안의 ‘작은 폭군’—내 편의 횡포를 눈감아 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밀의 메시지는 지금 한국 시민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목소리가 커지는 곳이 아니라, 소수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곳에서 지켜진다.”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성숙도에 달려 있다. 우리가 다수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때, 비로소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흔들리지 않는 뼈대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