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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영 Jun 25. 2024

굿모닝, 메니에르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것

    

     

칼바람이 춤을 추던 계절이 자연의 섭리 앞에 머리를 조아리듯 나도 그렇게 의사 앞에 앉았다. 병원은 언제 방문해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오늘은 어떤 소리를 들을지 의사 눈치만 살핀다. 콧소리 약간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가 진료실을 울린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맑은 눈동자에 환자의 증상을 귀담아듣겠다는 의지가 반짝인다. 한 달에도 여러 번 찾아오던 회전성 어지럼증과 머릿속이 띵한 증상, 이에 따라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나의 말에 병원 방문 기간을 더 길게 잡아준다. 매달 가던 방문 횟수가 두 달 간격이 된 것이다. 

메니에르 증후군으로 다니던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더 이상 나를 위해 해줄 것이 없어 진료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2023년 봄이었다. 벚꽃잎 흩날리는 그 계절에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차가운 바닥을 뒹구는 낙엽처럼 인터넷 바닥을 뒹굴었다. 

웹서핑 끝에 부산 백병원 이비인후과 허경욱 의사를 발견했다. 특히 중이염, 난청, 전이개누공, 이명에 탁월한 실력을 갖춘 전문의다. 그가 실력가라는 것은 엄지를 척 들어도 모자라지만, 환자를 대하는 태도야말로 명의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목소리가 다소 허스키하다고 느낀 건 청력이 안 좋은 환자들이 좀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매번 큰 소리로 말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응? 뭐라고?”를 되풀이하던 내가 속 시원하게 알아듣고도 모자라 의사 목이 쉴까 봐 걱정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병원에 올 생각은 안 해봤어요?”

처음 대면했을 때 나의 증상을 듣고 그가 했던 말이다. 어떻게 견뎠냐는 표정을 얼굴에 가득 담은 의사의 말에 주책없이 눈물샘이 터질 듯 아슬아슬했던 기억이 난다.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전문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동안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싹 씻어내 주었다. 

언어에 온도가 있다면 100°C는 되고도 남을 뜨거운 말이다. 별말 아닌 것에 의미를 과하게 두는 것이라고 토를 달지도 모르지만, 혼자라는 것, 특히 타인은 느낄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환자에게 이 말은 어떤 약보다 특효약이다. 더구나 1차 병원에서 포기한 나 아닌가. 엄동설한 놀부에게 내쫓기던 흥부의 심정이 이랬을까. 앞이 깜깜하던 그때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환자를 대하는 따뜻한 시선과 배려의 자세가 몸에 밴 사람, 그 의사가 바로 내 주치의다. 




조용히 눈을 감고 의사와 환자 사이에 오고 가는 그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나와 우리라는 관계에 대한 사색은 2016년에 개봉된 미국 영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 앞으로 나를 데려간다. 두 남녀가 여행 중 우연히 만나 다음 날 아침 헤어지기까지의 사랑을 담은 영화다. 달콤한 장면들이 잠자던 설렘을 깨우기도 하니 인생이 무료하다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특히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사는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영화다. 일상에서 깨닫는 소소한 철학이 묻어나는 대사는 두고두고 여운을 남긴다. 

  “이 세상에 마술이란 게 있다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안에 존재할 거야.”

  이 대사는 그야말로 인간의 체온 이상으로 사람을 감싸 안는다. 이해한다는 것은 지금 이대로의 너,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기꺼이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만큼 따뜻하기도 어렵다. 온기는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고 그 에너지로 팍팍한 현실을 뚜벅뚜벅 살아내기도 하니까.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견뎠냐는 의사의 말이 당신의 아픔을 이해하고 앞으로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로 들렸다. 나조차 몰랐던 심연의 고통을 건드렸다. 세상에는 나의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특별한 방법이 없고 식이조절이 중요하다는 것만 강조했다.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순례하러 다니듯 찾아갔지만 헛된 발품이었다. 더 이상 치료해 줄 것 없다는 동네 병원 의사 말이 의사봉을 탕탕탕 치듯 심장을 때렸다. 그런 찰나에 만난 허경욱 의사의 말은 내게 희망을 품게 했다.

  영화 속 여주인공 셀린은 이런 말도 한다.

  “있잖아,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나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신은 멀리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구원의 손길을 뻗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 사이사이에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신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속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나의 병이 잠잠하다. 어지럼증이 가신 것뿐만 아니라, 일상을 일그러트리던 잔잔한 두통도 없어졌다. 의사와 환자인 나 사이에 신뢰라는 신이 작용하나 보다.      

 



  의대 정원 문제로 연일 매스컴이 시끄럽다. 이들에게도 신이 작용하기를 기대해 본다. 마법 같은 대사를 기억하며 당신과 나, 나와 우리의 관계 속에서 소소한 마술을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일상이 신과 함께 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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