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일상
독일에서 오전에 일을 하고
내가 산책이나 조깅을 하게 되는 시간은
아이들이ㅡ학교애서 온 후 간식을 챙겨준 이후의
오후 약 4~5시경이다.
대부분은 내가 만든 코스로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하려고 하지만,
저녁재료가 또옥 떨어진 날에는, 이 시간을 장보기에 써야 하는 날이 있다.
참고로 우리 아파트 단지 1층에는 마트가 두 개나 있다,
한 곳은 ALDI 좋은 퀄리티의 상품들은 아니지만
가끔 세일하는 상품의 가격이 너무 좋을 때가 있다.
그리고 한 곳은 MAKANT이다.
적당한 물건 적당한 가격
그리고 얼마 전에는 한류에 힘입어 라면과 김치 통조림까지 보유하고 있는
하루에 최소 한번 편의점 가듯 들리는 곳이다,
차가 없이 생활하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그 외에 내가 주로 이용하는 마트는
아이들 간식이나 야채 등을 살 수 있는 잡에서 약 5분 거리의
바이오 마트와 우리 나라로 치면 자연드림 정도 되겠다.
그리고 주말에 서는 동네 시장,
여기서는 신선한 야채와 빵 그리고 과일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신선한 고기를 살 수 있는
걸어서 15분 거리의 에데카 마트가 있다.
요 에데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 감독과 여배우가 자주 출몰했던 곳이었다고 들어서
아무도 모르는 내 맘 속의 핫플이었더랬다.
그리고 에데카에서 집으로 오는 길목에는
미술학원처럼 생긴 가게가 있다.
가끔 아이들이와서 예술작업도 하길래 당연히 미술학원인줄 알았다.
그런데 축제때 딱 한번뿐이고 그다음부터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학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무얼 하는 집인지 감을 잡을 길이 없었다.
장사를 하는 것일까 도데체 알수가 없는데,
그래도 계절에 한번은 쇼윈도의 전체적 배경이 꼬옥 바뀌는 것이다.
마치 영화의 한장면 같이 멋드러지게 말이다.
언젠가는 과거의 함부르크 사진들을 시간별로 예쁘게 전시하기도 했고
어떤날은 여러다양한 모자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전시를 해놓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가의 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그 호기심의 끝을 놓을수 없어
결국 작정하고 번역기를 돌려본 후에야
그 가게의 용도를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장의사 집이었다.
충격과 전율?
충격은 내가 알던 우울한 분위기의 장의사집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죽음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죽음의 테마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나라에
내가살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장례식을 치를 때
세리머니를 위한 테마를 장식해 주는 곳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담긴 다양한 테마를
주기적으로 바꾸어가며
전시를 해 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결국은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나를 위한 장식은 이게 좋네 저게 좋네
남편과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이번에는 딸과 마트를 다녀오다
단단히도 내 눈길을 끄는 새로운 테마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담담한 글귀가 쓰여 있길래
딸에게 물어봤다.
“주엔 저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 엄마 저거 읽으니까 뭔가 슬픈데? ”
더욱 궁금하진 나는 아이를 재촉했다.
“정말이야? 너무 궁금하다 뭐라 그러는 건데?”
“ 응 그러니까, ‘여기에 내가 어릴 적 구해주었던
나비와, 달팽이와 그리고 거미가
나를 보러 와 주었다 ‘라는 것 같아 “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언가 내 맘을 훅 쓸고 지나간다.
슬픔이었다.
그리고 둘째딸에게 이야기를 했다
엄마도 슬픈 감정이 든다고
그러면서 우리는 죽은 이후에
어떤 친구들이 올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 했다.
어릴 적 나비와 거미 그리고 달팽이를 아무 조건 없이
구해주던 그 마음은 아마 온전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온전하게ㅡ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언젠가 내가 온전하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생을 마감했을 때,
나비와, 달팽이와 거미와 함께 와주지 않을까..
가시지 않는 여운이 마음을 눌러 내리지만,
아까 에데카에서 사 온 돼지고기목살과 소고기 두팩
닭다리 네조각과 갖가지 야채들이 닭도리탕을 만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