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산의 석양이 제 빛을 잃을 만한 시각, 일흔 중순인 이웃 할머니가 올라왔다.
어디다 넋두리나 늘어놓을 심산으로 걸음을 했건만, 상대를 잘못 택하고 말았다.
돌쇠아재는 남의 어리광이나 받아 줄 만한 아량도 없고, 속내를 숨기는 스타일이 아닌 흡사 바늘을 잔뜩 부풀린 고슴도치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적당히 선을 긋고 사는 반자연인이라 자칫 세상 이치를 꿰고, 인성도 반 도인의 경지인 줄 순간 착각들을 하는 모양인데, 산에 처박히든 동굴에 칩거를 하던 인격과는 하등의 연관이 없다.
돌쇠아재의 칩거는 수양을 더한다거나 하는 방송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고상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본인의 더러운 성질머리와 독사 같은 세치 혀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 차라리 은둔을 택함으로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소극적 회피였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단다.
하루하루 사는 게 지겹단다.
바둑에서 말하는 '자충수'다.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며 던지는 한 수.
내 기억으론 불과 이, 삼 년 전만 해도 신바람 나 하던 취미 활동이 있었다. 물론, 도중에도 수없이 징징거리고 하니 마니 어리광을 무던히도 부려대기는 했지만, 수시로 절간 같던 집에 손님들도 왕림하고 본인도 자주 외출을 하는 등 활기가 넘쳤었다.
어느 순간부터 객들의 왕래도 뚝 끊어지고, 본인의 어깨도 처지며 땅 꺼지는 한숨도 늘어났다. 유일한 삶의 활력소였던 취미 활동을 접은 것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승반을 하면서 학습 수준이 너무 높아져 젎은 반 친구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라는데, 갈등의 요인일 수는 있겠지만 때려치울 만한 정도의 명분은 못된다고 봤다.
멀쩡한 기 마저 추락시키는, 사는 게 재미없다로 시작되는 신파를 이참에 끝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전에 재밌어하던 하모니카 학원을 왜 그만 뒸 습니까?"
"공공 근로 때문에..."
"그거 안 하면 생활에 지장이 있거나, 경제에 큰 도움이 됩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제 앞에서 사는 게 재미가 있니 없니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배부른 사람의 투정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사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몇 푼의 돈과, 유일한 재미였던 하모니카 모임과의 선택에서 삶의 재미보다는 돈을 선택했고, 그 대가가 지금인데 자업자득 아닌가. 생계가 팍팍해서 돈의 편에 섰다면야 백번 이해를 하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웃분은 이 돈과는 전혀 무관하게 사는데 아쉬움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다. 재산으로만 따지자면 남들 부러워할 정도로 넉넉한 축에 속한 분이었다.
돈과 재미. 둘의 선택지에서 돈의 손을 들었다가 그나마 살아가는 유일한 재미마저 놓쳐버리게 된 것이다.
단언컨대, 삶에는 절대 공짜라는 것은 없다.
바둑에서 혼자서 돌을 두 번 놓을 수는 없듯이, 삶도 하나를 취하려면 하나를 내어놓는 게 순리다. 받을 줄만 알고 자기 것은 내놓지 못하는 사람을, '거지'라고들 한다.
이웃의 삶이 재미없는 분은, 다 잡으려고 탐욕을 부린 것은 아니다. 단지, 잘못된 선택의 깃대를 들었던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삶은 선택과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양주먹 앙쥐고 태어나 억척 같이 주먹 불끈 쥐고 살았다면, 쥐었던 주먹을 풀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 펴는 타이밍을 놓치면 삶은 재미가 없어진다.
웰 다잉이 별 건가?
손바닥을 펴면 간단하다.
살 날 보다 죽을 날이 훨씬 가까운 아짐....
"제발, 손바닥을 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