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SSRI 계열의 항우울제, 의사 선생님이 ‘세르트랄린’이라는 성분이라고 설명해 준 하얀색의 작은 알약을 매일 아침 식후 한 알씩 삼키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복용 시작 나흘째 되던 날 아침이었을까. 잠에서 깨자마자 속이 미식거리는 느낌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결국 얼마 먹지도 못한 아침 식사를 다 게워내고 말았다. 마치 심한 멀미를 하는 것처럼 머리가 핑 돌고,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부작용인가?’ 덜컥 겁이 났지만, 의사 선생님이 초기에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날부터 본격적인 부작용의 폭풍이 시작되었다. 메스꺼움은 하루 종일 나를 괴롭혔고, 뭘 먹어도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아 거의 죽이나 미음으로 연명해야 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어떤 날은 어지러워서 제대로 셔 있기도 힘들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증상도 나타났고, 입안은 바짝바짝 말라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온갖 낯선 감각들이 나를 공격해왔다.
가장 힘들었던 건 정신적인 혼란이었다. 약을 먹으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불안하고 초조해지는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방 안을 서성거렸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특히 의사 선생님이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나 갑작스러운 불안 발작에 대비해 처방해 준 ‘인데놀’이라는 작은 분홍색 약(베타차단제 계열이라고 했다)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들이 잦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가빠올 때면, 떨리는 손으로 인데놀을 찾아 입에 넣었다. 약효가 돌면 조금 진정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내가 정말 이렇게 약에 의존해야 하는 건가’ 하는 자괴감에 또다시 괴로워했다.
밤에는 잠들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겨우 잠이 들어도 얕은 잠을 자다 깨기를 반복했고, 생생하고 기괴한 꿈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해가 뜨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정신은 말똥말똥한 그 괴리감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일상생활은 당연히 엉망진창이 되었다. 집중력은 바닥을 쳤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간단한 글조차 제대로 읽히지 않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버거웠다. 혹시 내가 약 때문에 더 이상해지는 건 아닐까, 이 약이 나랑 안 맞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당장이라도 약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었지만, ‘며칠만 더 참아보자, 일주일 뒤에는 병원에 가니까.’ 하는 생각으로 겨우 버텼다.
일주일 뒤, 초췌한 모습으로 다시 찾은 진료실에서 나는 그동안 겪었던 부작용들을 의사 선생님에게 쏟아내듯 이야기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꼼꼼히 듣고는, “지금 겪고 계신 증상들은 SSRI 계열 약물 복용 초기에 흔하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들입니다. 대부분 1~2주 정도 지나면 몸이 적응하면서 점차 나아질 거예요. 하지만 너무 힘들면 용량을 잠시 줄이거나, 다른 약으로 바꿔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하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인데놀은 필요시에만 복용하고, 너무 자주 먹는 것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나는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이왕 시작한 거,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메스꺼움을 줄여주는 소화제를 함께 처방해주었고, 충분한 휴식과 수분 섭취를 권했다.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니구나, 전문가가 지켜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아주 조금은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약 봉투를 받아들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부작용과의 사투를 이어갔다. 매일 아침 약을 삼키는 것은 여전히 고역이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약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터널의 끝에는 빛이 있을 거야’ 하는 아주 작은 희망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 희망만이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동아줄이었으니까.
SSRI 계열 항우울제인 세르트랄린과 필요시 복용하는 인데놀. 이 두 가지 약과 함께한 시간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극심했던 초기 부작용의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 아주 조금씩, 정말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만큼 미미한 변화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메스꺼움이나 간헐적인 두통은 나를 괴롭혔지만, 적어도 약을 먹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던 끔찍한 날들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느껴진 변화는 ‘감정의 무뎌짐’이었다. 이전에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눈물이 터지고, 억울함이나 분노 같은 감정들이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치곤 했는데, 약을 먹고 나서는 그런 감정의 파고가 조금은 낮아진 느낌이었다. 물론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때로는 내가 로봇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들었지만, 적어도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일은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아주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예상치 못했던 변화 중 하나는 식욕의 변화였다. 초기에는 극심한 메스꺼움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갑자기 특정 음식에 대한 갈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단것들이 미친 듯이 당겼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초콜릿이나 케이크 같은 것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덕분에 체중은 당연히 늘어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또다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우울증 약 먹으면 살찐다더니, 그게 정말 나한테 일어나는구나.’ 싶어서 속상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아주 오랜만이라, 마냥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꿈도 많이 꾸었다. 이전에는 주로 악몽에 시달렸다면, 약을 먹고 나서는 좀 더 기이하고 생생한 꿈들을 꾸는 날이 많아졌다. 꿈속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마치 내 무의식이 약 기운을 빌려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꿈 내용 때문에 한참 동안 멍하니 있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독한 악몽보다는 견딜 만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특히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거나,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졌다. 그럴 때마다 인데놀을 삼키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전처럼 공황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인데놀은 마치 ‘비상용 구명튜브’ 같았다. 늘 가지고 다니지만, 가급적 사용하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
세 번째 진료일, 나는 그동안 겪었던 변화들을 의사 선생님에게 비교적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극심했던 초기 부작용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 하지만 여전히 불안 증상은 남아있고, 특히 식욕 변화와 체중 증가에 대한 걱정이 크다는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는, “SSRI 계열 약물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감정 기복이 줄어드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식욕 변화나 체중 증가는 일부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지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식단 조절과 가벼운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고 조언해주었다. 그리고 아직 치료 초기이기 때문에 불안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려우며, 인데놀은 정말 필요할 때만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정말… 나아지고 있는 걸까요? 가끔은 제가 약에 취해서 그냥 멍청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의사 선생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약이 유마님의 예민해진 신경을 조금 안정시켜주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뇌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거죠. 멍청해지는 게 아니라, 그동안 너무 과도하게 긴장되어 있던 부분을 조금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아주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혼란스러운 변화들이, 어쩌면 더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물론 여전히 약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계속 치료를 받아보자’ 하는 마음은 더욱 굳건해졌다.
의사 선생님은 이번에도 같은 용량의 세르트랄린을 처방해주었고, 다음 진료일까지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서 몸과 마음의 변화를 잘 관찰해보라고 했다. 병원을 나서는 길, 하늘은 여전히 흐렸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주 작은 햇살 한 줄기가 비치는 것 같았다. 이 지긋지긋한 부작용의 터널 끝에, 정말로 빛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기대감을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