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박씨 함부로 뱉어라

경주, 느낌대로

by 작가의숲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던가


그런데

뿌리지도 않았는데

거둘 수 있는 곳도 있다


그건 바로 마당에서

홀로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수박이다


생명이란

참으로 질기면서도

참으로 무심하다


어느 날 문득

바짝 마른땅에서

싹을 틔우고

굵은 자갈을 헤치며

보란 듯이 저 많은 넝쿨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자랄까 궁금했다


역시 생명은 강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하다


엄지손톱만 한 꽃이

듬성듬성 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수박을 키우고 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매일 자라는 수박을

남몰래 엿보는 것도

제법 달콤한 일상이 되었다

집 앞 텃밭에도

심지 않은 수박이

교묘하게 달려 있다


둥근 자연석을 따라

줄기를 뻗어가더니

그 중간쯤 숨어 있는 걸

한참이나 지나 우연히 봤다


분명한 건

적어도 이 수박들은

씨 없는 수박의 후손일 리는 없다


우리는 지난해

수박을 먹은 적은 있어도

직접 심은 적은 없으니

짐작컨대 그때 먹은 수박은

분명 씨 있는 수박이었을 것이다

여기저기

수박이 익어가는 요즘


이 많은 수박은

언제 다 열렸을까

수박밭을 지키는

농부 아닌 농부이자

매일 이곳을 지나가는

나그네라 할 수 있는

이 길고양이는

이렇게 많은 수박이 열리게 된

그 내막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지 않을까



길고양이가

급한 볼일 보러 가는

바로 그 텃밭에

유독 많은 수박이

주렁주렁 열린 걸 보면


안도현 시인이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고 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수박씨 함부로 뱉어라

너는

누구에게 이토록 달콤한 여름을 선물한 적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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