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거리 조용한 빛은 보이지 않는 사람 얼굴을 찾아낸다. 살결에 닿지 못한 입김이 새어 나오자 하얀색 연기가 짙어진다. 선명해진 불빛이 무거운 겉치레를 감싸더니 익숙한 공간으로 데려간다.
하나하나 벗어던져야지.
"집으로 갈까요?"
"아니오. (네.)" 그곳이 어딘지는 말하지 않을래요.
"목적지는 안전한 도착지 입구요"
걱정하지 말아요.
"안전한 목적지가 거기 맞죠?"
눈이 감긴다.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아저씨의 손이 보이지 않는다.
무장한 아들의 손은 따뜻하다.
두터운 모자를 매만져 주는데 눈앞에 반가운 택시가 보인다. 버스가 오려면 한참이다.
모를 리 없는 어린이병원을 말하니 목적지가 간단하다.
언제부터였을까.
모르는 여자와 수유실에 앉아 모유수유하는 게 부끄럽지 않았던 그때, 같은 심정으로 걱정하고 위로를 건네던 그때.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게 대단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미끄러운 도로를 보며,
"우리 딸 출근하기 힘들게... 어제도 집 오는데 두 시간이 걸렸어"
(들어 달라는 거죠? 횡단보도에 듣는 이가 달랑 나 혼자라) 혼잣말을 듣다가,
딸 걱정하는 엄마의 말이 내켜서 "그러게요" 짧게 호응해 주는 게 어색하지만은 않은지가 얼마나 됐더라.
(몇 마디 덧붙여 네 네, 여전히 불필요한 대화는 꺼려지지만.)
모르던 아주머니가 금세 잊히면 불쑥 나타나는 엄마가 쓸데없이. 모르는 사람에 대해 묻고 관심을 보일 때면 그게 왜 궁금한지 뾰족해졌는데, 생각보다 엄마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게 여전히 의아하기도 하다.
그만 좀 했으면 하는 엄마의 오지랖은 어디서 타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지만, 이제는 별 수없다. 포기에 가까운 인정으로 내려놓는다.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와 대화하는 게 좋다던 직장동료에게 진짜? 정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 지 십 년이 넘었나......
오전 9시가 넘어가는 시각 반가운 택시는 어떤 얼굴의 사람들을 태우고 달렸는지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라고 했다. 밤 10시부터 쉼 없이 달렸다고 했다.
"피곤하시겠어요"
연로하신 택시기사님의 손이 보였다.
"힘들지, 그래도 이렇게 2년 하면 될 것 같아"
2년이란 시간을 견뎌야 할 이유가 분명해 보였다.
무엇을 계획한 지 묻지 않았지만.
"마누라 용돈도 주고 손주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러면 되는 거지"
"건강하셔야겠어요" 어색한 웃음은 뭔지.
그러면 됐지, 수고했다. 그러면 된 거지. (독백 같던 말은 어색하지 않다.)
수없이 자신에게 건네던 말이었을 거라고.
투박하고 쭈글쭈글한 손이 보였다.
괜스레 마음이 짠해졌다. 겨울은 정반대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기도 한다. 그러던 중에 의자 옆에 꽂아둔 딸기우유갑은 뭔지. 양심 없는 사람이 두고 내렸을까, 정신없이 서둘러 내리다가 깜빡 잊고 내렸을까.
어린이 병원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딸기 우유갑이 톡 하고 떨어졌다.
"수고하세요" 문을 닫고, 우유갑을 주웠다.
마누라에게 건네던 손은, 손주에게 건네던 손은 다정하겠지. 투박한 손이 등에 닿을 리 없잖아.
다정한 내 손으로 무거워진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아이고, 아부지. 하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아부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