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도 고생하셨습니다.
똑똑.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코끝이 얼얼하다.
밤새 곤하게 잠들었던 육신은 깨어나기를 거부한다.
-조금만 조금만
-이불속은 따뜻해. 이불 밖은 위험해.
눈을 번쩍 뜬다.
-아들아 어서 어린이집 가야지, 그래야 엄마의 하루도 숨구멍이 뚫리지.
오늘의 시작이다.
"비둘기는 비둘기로 태어나서 싫겠다"
딸은 고개를 주억거리는 비둘기 무리를 보며 말했다.
(나는 재빠르게 그러게. 수긍해 버렸지만 딸에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무서워하고 싫은 것을 혐오로 답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하필 옆으로 향해 있는 시선은 앞을 보지 않고 나에게 달려들 것만 같다. 으악.
그와 대판 싸우고 나오는데 무슨 새인지 몰라도 두툼한 카키색 점퍼에 뭐가 툭 떨어졌다. 새똥이다. 씩씩대고 나간 모양새로 서럽기까지 했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모양새로 이왕 그렇게 된 거 내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화가 나 있는 손은 숨겨지지 않았다. 휴지와 물티슈로 닦아내는데 벅벅 지우는 손이 웃겼는지 그는 비아냥대며 놀렸다. 화해할 타이밍을 잡은 건지, 내가 꼴좋았던 건지 그런 그를 보며 화를 내다가 또 같이 웃었다.
어이구. 저 놈은 그때부터 그랬다.
중간 없는 감정은 화내는 거 아니면 장난. (더 이상 화난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하지도, 묻지도 않는 습관 같은 것.) 그것은 지나고 보니 우리에게 좋지 못한 습관 같아서 더러 귀엽게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해도 그 모든 게 싫어지게 하는 나쁜 것이다.
왜 하필 그의 생일에 방금 전까지 열렬하게 싸웠는지, 나는 그게 그렇게 화날 일이어서 그가 고집을 피우는지, 좋게 보내려던 나의 인내심은 참을 거면 끝까지 참아주던가.
웃고 나니 별거 아니게 된 상황이 돼버렸다.
딴딴이와 럭키가 태어나기 전이라 챙길 아이들 없이 여유롭게 그 꼴로 밥을 먹으러 나갔다. 서먹하게 먹다가 화해가 된 채로 들어왔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은 익숙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무슨 새였는지 모를, 내 옷에 똥을 떨어뜨린 새는 비둘기가 되었다. 비둘기가 날아오기라도 하면 딸 손을 잡고 피하던 것이 딸에게도 옮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그가 엄마 옷에 똥 쌌다고 알려주었다. 딸은 나와 같이 비둘기를 보면 피한다.
"비둘기도 비둘기로 태어날 줄 알았겠니?"
딸에게 선택할 수 있다면 뭘로 태어나고 싶냐고 물었다.
"난 달로 태어나고 싶어,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니깐." 그러고는 민망하게 웃길래.
(진심 아닌 정답 같은 말을 찾고선.)
달은 아니네.
"그럼 엄마는?"
"엄마는 아무 걸로라도 태어나고 싶지 않아."
"그게 뭐야"
딱히 떠오르지 않지만, 나비 (나비정도)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왜라고 묻지 않아도 될 답이라고 본다. 만약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좋겠다. (추억은 좋은 것이다.)
이미 지나간 것을 알고 있는 만큼 다시 살아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살아내는 것은 희망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태어났으니, 사람답게 살아가면 된다.
그렇지 않나요?
똑똑.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코끝이 얼얼하다. 눈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얼어있다면 옆에 있던 딸이 톡톡 깨부수어 주겠지. 얼기 전에 따뜻한 커피를 가져와 내 앞에 두고 따뜻한 담요를 덮어야지.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언젠가는 끝나겠지. 영원히 살 수도 없지만 영원히 살 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 끝이 있다는 건 다행이다. 시꺼멓게 떠다니는 글씨는 누군가의 영원. 매일매일은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삶의 현장 같은 것.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영혼이 영원불멸하기에 불멸한 인간이라 해야 할까. 알지 못하는 세계라, 불분명하기에 불멸한 인간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나는 나를 믿고 있지만, 하늘 아래 발 딛고 사는 세계에 어쩌다 만나는 인연,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 이유 없는 사고, 불행, 행운 같은 것을 보면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반드시 이 세계는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나의 세계는 가끔 찬바람이 분다. 불이 켜지고 눈 흩날리던 스노우볼에서 징글벨이 흘러나오다가 어느새 조명이 들어왔다 나갔다 소멸 중이다. 심장 없는 스노우볼을 버려야 하나 하다가 그냥 뒀다. 다행히 나의 심장은 많이 차갑지 않아서 따뜻한 바람도 부는 것 같다.
춥다.
겨울이 아니어도 당신의 세계가 많이 차갑지 않길 바란다.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잠시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