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에 대하여 말하자면

열정보다 조용한 힘

by 기록하는최작가

꾸준함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것은 재능보다 오래 남고 열정보다 조용한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꾸준함은 사람의 손에 쥐어진 것들 중 가장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단단한 무기다 그것은 박수받기 위해 드러내는 깃발이 아니고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한 성과표도 아니다.

꾸준함은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스스로와 맺는 약속에 가깝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지 않아도 지켜지는 약속 그래서 꾸준함은 늘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걷는 일에 왼발과 오른발을 구분하지 않듯 밥을 먹으며 숨 쉬는 일을 의식하지 않듯 고구마를 삼키다 목이 메면 자연스럽게 물을 찾게 되듯 그렇게 생활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움직임 그것이 꾸준함이다.

애써 다짐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기억해내는 리듬이며 삶이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택한 호흡이다


한때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썼다.

아침이 오면 해가 뜨는 것처럼 밤이 오면 문장을 쓰는 일이 이어졌다.

매일의 글쓰기는 내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유일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빈 페이지를 채우는 일이 곧 나를 채우는 일이라 믿었다 문장을 하나 적어 내려갈 때마다 오늘 하루를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찾아왔고 글은 나를 세상과 연결하는 가장 가느다란 실이자 동시에 가장 단단한 닻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늘 약간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생각의 발끝이 바닥에서 조금 떠 있는 상태였다고 할까

사소한 풍경에서도 의미를 발견했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장면 앞에서도 오래 머물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시선을 들어 올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늘 같은 온도로 유지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개인적으로 집중해야 할 일이 생겼고 그 일은 나의 하루를 조용히 잠식해 들어왔다.

글쓰기를 잠시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다른 것에 몰두하기 위한 잠정적인 중단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자 처음에는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 하루의 공백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만 같았고 이 침묵이 나를 영영 글 밖으로 밀어낼 것처럼 두려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갔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아도 해는 여전히 떴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았다.

그동안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던 이들도 조용했고 글이 멈췄다고 해서 무언가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심했고 동시에 훨씬 단단했다


변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었다.

한참 글을 쓰던 시절 자연스럽게 높아졌던 시선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생각의 높이가 아니라 생각의 빈도가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매 순간이 질문이었고 모든 장면이 재료였다.

그러나 글에서 멀어지자 질문은 줄어들고 장면은 그저 장면으로 지나갔다.

독서와 글쓰기를 잠시 미뤄두고 다른 일에 집중한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문장을 만드는 일이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언어로 이어지지 않았고 감정은 있었지만 그것을 건져 올릴 두레박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기록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생각이 깊어지는 통로 하나를 닫아두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제 안다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박수를 기대하며 적는 문장은 오래 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한 글은 결국 나 자신에게서 가장 먼저 멀어진다는 것을.

다시 배우고 있다.

내가 다시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인정받고 싶어서도 기억되고 싶어서도 아니다.

다만 생각을 확장하고 싶고 시선을 다시 들어 올리고 싶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오래 머물며 더 깊이 생각하고 싶다.

글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나답게 유지시켜주는 방법이었다 그것을 멀리했을 때 나는 조금씩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매일이라는 약속 대신 꾸준함이라는 태도를 선택하려 한다.

하루를 빠뜨렸다고 해서 스스로를 꾸짖지 않고 문장이 매끄럽지 않다고 해서 손을 놓지 않는 방식으로 꾸준함을 다시 정의하려 한다.

비 오는 날에도 걷고 바람 부는 날에도 불을 지키는 일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꾸준함이다.

한 줄이라도 좋고 한 문장이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다시 펜을 드는 손의 방향이며 생각이 머물 자리를 비워두는 일이다.

글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잠시 등을 돌렸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조금 더 나를 이해했고 조금 더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감각을 다시 삶의 중심으로 불러오고 싶다.

매일은 아닐지라도 꾸준히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글을 쓰려 한다.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생각만큼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여러분도 혹시 같은 마음이라면 함께 걸어보지 않겠는가.

오늘 한 걸음 내딛고 내일 또 한 걸음 이어서 왼발 다음에 오른발이 나가듯 그렇게 당연한 움직임으로 우리의 생각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