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덩어리의 고백

by 지슈

아침에 일어나서 매일 먹는 요거트에 토핑을 조금 덜 넣어야지 한 이백 번쯤 다짐한다. 어제와 똑같이 수북한 그릇을 바라보며 문득 ‘다짐은 쉬운데 지키긴 참 어렵구나’ 생각이 든다. 또 다른 다짐들을 떠올려 보면 밀가루 음식 줄이기는 “이만큼 맛있는 게 어딨어?”라며 오히려 더 뻔뻔해졌고 전자기기 사용도 이와 비슷하게 일 초 만에 켜지는 화면 앞에서 늘 시간을 어물쩍 넘겨버렸다.


어른들의 다짐은 굳어지기는커녕 점점 물렁물렁해지는 걸까? 살 빼겠다, 진짜 금주를 선언하겠다, 빌린 돈을 꼭 갚겠다는 옛날 어른들의 말은 결국 말라비틀어진 티백처럼 다 볼품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말… 말… 말…. 발음하면 처음엔 밖을 향하던 혀가 다시 안으로 말려 들어온다. 말의 최후 책임은 결국 나에게 있다는 방증일까? ‘에이 모르겠고 그냥 차나 한잔 마시자.’


컵 가장자리에 입을 대는 순간 차의 향보다는 음미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에 취한다. 그래 나처럼 차를 즐길 줄 알고 통장에 돈도 좀 있으며 적당히 몸매 관리를 하는 또래의 여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꽤 괜찮은 삶이다 느껴져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삼분의 일, 삼분의 이, 차가 서서히 줄어드는데도 어쩐지 기분은 계속 좋다. 근데 컵의 바닥이 보이는 순간 눈썹 사이가 찌릿하다.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온다. 실상은 생각하기 피곤해 차나 마시러 일어났으면서 휘뚜루마뚜루 나를 포장하던 솜씨가 적잖이 당황스럽다. 겉은 어른이지만 속은 그저 철없는 모순덩어리구나 싶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지금 당장 차 한 잔이 필요하다. 그럼 방금 전 교양 있던 여자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물부터 올려야겠다.


전기 주전자는 다급함을 아는 듯 큰소리를 내며 금방 물을 끓여줬지만 막상 우러나온 잔을 멀뚱히 바라보니 마실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날의 모순덩어리가 되기까지 쉽지 않았어. 열심히 살았고, 누군가를 미칠 듯이 이해하려 노력도 해봤고, 사랑을 기대하여 무릎도 꿇어봤고, 용서도 정말 많이 해 봤어.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다 절대 쉽지 않았어.’


때론 차를 마시기 위해 그냥 일어나듯 지나간 일은 뒤로하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게 그렇게 찾던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 아닌가 싶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