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이 있다는 것. 그 가족을 오롯이 나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 그것은 나를 지워내는 것과도 같다.
얼마 전 간병을 하는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본 적이 있다. 인생이란 돌봄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너무 공감이 됐다.
어려서는 돌봄을 받는 입장에서 나이가 들어 돌봄을 해줘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는 것. 사람 인생은 돌봄의 연속적인 굴레라는 것.
엄마가 쓰러진 지 3년째이지만 지난 3년이 30년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 몇 달 안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3년 동안 어떻게 버텨내고 아직도 견뎌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3년간 나는 없었다.
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것, 나를 지워내고 '간병'하는 나 자신만 남게 됐다.
나와는 다른 형태로 전부 포기하지 않고 가족을 돌보고 있는 형태도 많을 것이다. 내가 너무 극단적인 선택의 케이스 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부 자신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엄마와 병원에서 생활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나를 괴롭혔던 것이 바로 단절이다. 사회와의 단절, 사람들과의 단절.
사람에게 소속감이라는 것과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의 교류가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그제야 알았다.
왜 출산 후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겪는지 내가 겪어보니 머리로만 이해되던 것이 피부로 와닿은 것이다.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이라곤 없다. 해봐야 엄마가 다니는 병원의 치료사들이나 의료진들뿐..
나는 MBTI로 구분해 본다면 극 I의 성향이다. 어릴 적엔 고독에 젖어있는 나 자신에 심취되어 있을 만큼 사람들과의 교류가 비생산적인 감정소모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만큼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사람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8평 남짓한 작은 집에서 대화라곤 물어봐야 단답으로 대답해 주는 엄마가 전부.
이젠 내가 어땠던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회사에 다닐 때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며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퇴사 한지 2년이 되어가니 이젠 복귀를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에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내가 타인들과 있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혼자 있을 땐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걸 했을 때 가장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우울증은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 있어 어릴 때부터 줄곧 나를 괴롭혀 왔지만 그 괴롭힘의 깊이가 엄마 뇌출혈 이후 너무 아득해졌다. 심해에서 수압을 버티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살고 있는 생물체라도 된 듯 생존하기 위해서만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움직인다.
누군가 요즘 잘 지내냐는 물음에도 엄마 상태를 답하는 게 일상이 됐고 사람 "나"라는 존재가 이젠 엄마의 "보호자"로만 남았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싶다가도 그래도 육아는 자라는 자식을 보며 뿌듯함과 희망이라도 있을진대 간병은 희망이라는 출구 없이 길게 늘어져있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다. 터널의 끝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터널의 끝, 간병이 끝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아픈 가족을 떠내보내야만 끝나는 터널. 그 긴 터널에서 나는 그 순간이 빨리 오길 바라는 것일까. 늦게 오길 바라는 것일까.
그 끝에 도달하면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