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문 대리는 요즘 노무사 공부에 한창이다.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문 대리는 늘 전문직에 대한 갈망이 있다. 직장인은 임원이 되지 않는 이상 50세가 넘으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다. 최근 노동법 관련 이슈가 많기에 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오던 터였다.
이미 결혼해서 자녀도 있는 문 대리가 노무사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생들도 휴학하고 신림동 들어가서 몇 년은 매달려야 딸까 말까 한 자격증이다. 이걸 직장인이 하겠다.. 현실성 없는 소리처럼 들렸다. 물론 인터넷에는 직장 다니면서도 노무사에 합격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들의 합격 수기가 종종 보이고는 한다. 그러나 나도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문 대리는 도전할지 말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요즘 직장 다니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고 책을 출간하거나 강의를 뛰는 사람들도 있다. 배우자가 하는 사업에 같이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이게 겸업금지 규정에 위반되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는 한다.
이 중 자격증 준비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자격증은 정년이 없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수많은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많은 직장인들이 탈출구로 생각하고 도전한다. 실제로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회사에는 비밀로 하면서 퇴근 시간 이후에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자격증 종류도 다양하다. 공인회계사, 세무사, 공인노무사, 공인중개사, 변리사 등.. 자격증마다 난이도 차이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직장 다니면서 없는 시간 쪼개 공부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대리 말~과장 초 시절 2년 정도 노무사 시험에 도전했던 적이 있었다. 인사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노무사라는 직업이 앞으로 수요가 많은 유망한 직업이 되리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둘째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첫째 아이가 세 살 무렵이었다. 1차 시험 합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워낙 많이 뽑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2차 시험이었다. 경쟁률이 15대 1이 넘었다. 교실 하나에서 응시생 30명 중에 딱 두 명 붙는 정도였다.
대학생들도 시험을 앞두고 한 두 학기 휴학을 하고 2차 시험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온전히 하루 12시간 이상을 공부에 올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장인이 퇴근 시간 이후 아이가 잠든 이후에 하루 2~3시간 공부해서 합격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공부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고자 출퇴근길 지하철, 점심 식사 이후 30분 정도는 공부에 집중했다. 그렇게 해도 대학생들과의 공부량 격차는 엄청나기만 했다.
결국 2차 시험에 두 번이나 불합격하고 말았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다섯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공부한답시고 회사일은 뒷전이었다. 수면이 부족하다 보니 일에 집중하지도 못했고, 회사일보다는 공부한 것 암기하는데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그때 깨닫게 되었다. 직장 다니면서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격증 취득에 성공하는 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이 있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물론 자격증 난이도에 따라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때보다 취업 난이도가 더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문과 쪽은 취업 자체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이다. 실제 내가 첫 직장에 입사할 때 동기생들이 50명 정도였는데 그중 문과 출신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절반은 법, 경영, 경제학과 출신들이었다.
문과생이 갈 수 있는 회사 자체가 거의 없다 보니 자격증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공무원이 정년 보장 메리트가 있기에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답답한 조직생활에서 벗어나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이 인기가 많은 것이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체력도 좋은 날고 기는 수많은 대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회사를 다니게 되면 합격 확률이 적어도 1/8로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거기에 결혼까지 했다면 거기에서 또 1/2은 낮아진다. 아이까지 있다면 한 명 당 1/2은 또 떨어진다. 그렇다면 아이가 한 명 있는 직장인이 자격증에 도전하면 일반 대학생들에 비해 1/32로 합격 확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노무사의 경우 100명이 도전하면 2명 정도 최종 합격한다. 2% 남짓인 것이다. 그 2%를 다시 1/32로 나눈다면 0.06%가 된다. 이런 극악의 가능성에 내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가정이 있고 아이까지 있는 직장인이 자격증에 합격하는 것은 로또 당첨 같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만일 직장을 다니면서 자격증에 도전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명심하자. 자격증 공부하는 동안 회사일은 엉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그 정도로 따기 쉬운 자격증이라면 크게 경쟁력이 없는 자격증일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에는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해야 한다. 회사 성과는 내가 자격증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만큼 반비례해서 낮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준비하는 자격증이 내가 다니는 회사와 맞바꿀 수 있을 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고민해 보자. 그렇다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시작하다.
나는 시험 욕심 때문에 근무시간 중간중간 조금씩 책을 보았다. 그러나 이건 망하는 길이다. 업무는 업무대로 안되고, 그 시간에 잠깐잠깐 공부한다고 해서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근무 시간에는 공부는 잊고 근무에만 집중하자. 공부는 출퇴근길이나 취침 전 시간을 통해 하도록 하자. 업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직원을 좋아할 상사는 그 어디에도 없다. 회사 업무 외 다른 경제 활동이나 공부 등은 권장되지 않는다. 업무에 그만큼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이게 지나칠 경우에는 성실근무의무 위반으로 징계 이야기까지 나올 수도 있다.
회사 사람들에게 절대로 공부하는 것을 말하지 말자. 내 사생활을 오픈해서 좋을 것은 절대로 없다. 더욱이 공부하는 것은 자칫 회사에 마음이 떠나 있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기 쉽기에 절대 오픈하지 말자.
시험에서 유명한 격언이 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성실한 사람 못 이기고, 성실한 사람은 막판에 미친 듯이 공부하는 사람을 못 이긴다" 그만큼 막판에는 달려야 한다. 시험이라는 게 1~2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커트라인 1점 안에 수 백 명이 따닥따닥 몰려있다. 거기서 1~2점을 더 받고 덜 받고는 막판 스퍼트를 얼마나 더 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시험 한 달 전에는 전시 체제에 돌입하자. 시험 전 최소 2주는 연차를 내고 아예 독서실에서 공부만 할 생각 하자. 그렇게 해도 이미 시험 두 달 전부터 전시 체제 돌입하는 대학생들보다는 한참 불리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합격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다.
회사 다니면서 자격증 준비 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만큼 잃는 것도 많다. 수면 부족 때문에 건강 상하게 되고, 회사 일에도 소홀해지게 되어 회사에서 도태되는 경우가 많다. 성공 가능성도 극히 낮다. 유경험자로서 나는 직장인이 자격증 도전하는 것을 절대 권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꼭 도전해 보고 싶다면 독한 마음으로 시작하자. 그리고 시작 전에 과연 이 자격증이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와 맞바꿀 만큼의 가치가 있는 자격증인지 고민해 보자.
자격증 딴다고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거기도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랐고, 실력 없으면 그대로 도태되고 만다. 정년이 없어서 좋다고 하지만, 회사가 제공하는 각종 복리후생이나 퇴직금 같은 혜택도 싹 다 사라진다. 게다가 늦깎이로 합격하게 되면 법인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나이 많은 신입사원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합격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는 황금 열쇠가 아닌 것이다.
굳은 결심으로 하되, 근무시간에는 근무에만 집중하고 남은 시간에 최대한 공부에 집중하자. 그리고 잠은 꼭 충분히 자자. 그게 30분 더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장기적으로 이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