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제국 이념을 중심으로-
800년 대관식 이후, 카롤루스 대제는 '기독교 제국'의 황제일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로서의 권위 역시 적극적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는 '로마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고,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여러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는 제국의 권위를 높이고, 동로마 제국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자신의 수도인 **아헨(Aachen)**에 거대한 궁정을 건설하고, 그곳을 **'새로운 로마'**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헨 궁정은 로마 제국의 건축 양식을 모방하여 지어졌으며, 거대한 성당과 황궁, 회의장, 도서관 등을 갖춘 복합 단지였습니다.
- 궁정 성당(Pfalzkapelle): 아헨 궁정의 중심 건물인 궁정 성당은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을 모델로 하여 지어졌습니다. 산 비탈레 성당은 동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카롤루스 대제가 동로마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고, 자신을 '로마 황제'와 동일시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 '로마'에서 가져온 건축 자재: 아헨 궁정을 건설할 때, 카롤루스 대제는 이탈리아의 로마와 라벤나 등지에서 고대 로마 시대의 대리석 기둥과 조각품 등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로마' 건설에 대한 그의 열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제국의 정통성을 고대 로마 제국과 연결 짓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냅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예술과 학문의 부흥을 통해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알퀸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을 아헨 궁정으로 불러 모아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문화 부흥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 고전 연구의 장려: 카롤루스 대제는 고대 로마의 문학과 철학, 역사, 법률 등에 대한 연구를 장려했습니다. 이를 위해 궁정 학교를 설립하고, 수도원 도서관을 확충했으며, 고전 필사본을 수집하고 필사하도록 했습니다.
- 예술 작품 제작: 카롤루스 대제는 로마 제국의 예술 양식을 모방한 조각품, 회화, 필사본 등을 제작하도록 장려했습니다. 특히, 화려한 채색 필사본은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으로 꼽힙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 피핀(Pepin the Short)**과 **할아버지 찰스 마르텔(Charles Martel)**까지 로마 황제의 계보에 포함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는 아헨 궁전에 아우구스투스, 콘스탄티누스, 테오도시우스와 같은 위대한 로마 황제들의 초상화와 함께 자신의 조상인 찰스 마르텔과 피핀, 그리고 자신의 초상화를 나란히 걸어놓았다고 전해집니다.
- 찰스 마르텔(Charles Martel, 688년경 - 741년): 카롤루스 대제의 할아버지인 찰스 마르텔은 메로빙거 왕조의 궁재(Mayor of the Palace)로서,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Battle of Tours-Poitiers)에서 이슬람 군대를 격파하여 서유럽을 이슬람의 침략으로부터 구해낸 영웅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찰스 마르텔을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가문이 '로마 황제'의 자격이 있음을 주장하고자 했습니다.
- 피핀 3세(Pepin the Short, 714년 - 768년): 카롤루스 대제의 아버지인 피핀 3세는 메로빙거 왕조를 무너뜨리고 카롤링거 왕조를 개창한 인물입니다. 그는 교황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으며, 교황에게 영토를 기증하여 교황령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피핀 3세를 '교회의 보호자'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가문과 교황과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카롤루스 대제는 자신의 조상들을 로마 황제의 계보에 포함시킴으로써, 자신의 가문이 '로마 황제'를 배출할 자격이 있음을 정당화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로마적 정체성'을 자신의 권력 기반 강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