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동안의 여행이 끝났다. 육지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왔다. 사실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 이미 여행 전에 모두 정리하고 떠났으니까
제주도로 내려오고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때맞춰서 코로나가 창궐했고 해외여행이 막히고 제주도에는 관광객이 넘쳐났다.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애주가인 나는 자연스럽게 손님들과 잦은 음주, 배달 음식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야외 활동 감소로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체중이 급속도로 불어났다.
전부터 취미로 서핑을 해왔는데 겨울이 지나고 봄에 꺼내본 서핑 슈트와 서핑보드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슈트에 다리 하나 집어넣는 것도 힘들었고 보드는 물에 잠겨서 떠 있을 수조차 없었다. 라인업까지 나가는 것도 힘이 들었다.
보드와 슈트를 새로 살 것인가 살을 뺄 것인가 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다이어트를 선택했다. 사실 보드를 새로 사는 게 더 빠르고 편한 방법이었지만 당시 자금 사정상 몇십만 원짜리 보드와 슈트를 새로 산다는 게 금전적으로 조금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살을 빼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였다. 요즘은 달리기가 거의 국민 스포츠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코로나가 유행하던 그 당시까지만 해도 달리기라고 하면 약간 마이너(?) 한 취급을 받았다. 특히 마라톤은 더했다. 마이너 하다기 보단 아저씨들이 하는 운동 같은 느낌이랄까?아무튼 트렌디하지 못한 운동은 분명했다
원래 세상 돌아가는 것이나 유행에 큰 관심이 없고 약간의 반골 기질을 갖고 있던 나에게 그런 달리기는 잘 맞는 취미 중 하나였다. 남들은 바디 프로필을 찍고 골프를 치러 다닐 때 제주도 해안도로를 달렸고 돈이 있어도 못 사고 사기만 하면 리셀가가 천정부지로 오른다는 캠핑 장비들 대신 러닝화를 샀다.
당시 내 몸 상태는 엉망이았다. 90킬로가 넘는 체중에 조금만 걸어도 무릎과 허리가 아팠고 통풍이라는 고질병 까지 앓고 있었다. 처음에는 30분만 뛰고 와도 거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녹초가 되었다. 체력도 체력이었지만 발과 무릎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아침에 30분 달리고 와서 샤워 후 아침밥을 먹을 때의 개운함 때문에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주로 동네를 달렸다. 당시 살던 동네는 모슬포였고 가파도와 마라도를 가는 여객선을 탈 수 있는 운진항까지는 약 1.5킬로 정도 떨어져 있었다. 집에서 출발해서 골목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운진항에 도착한다. 운진항 방파제를 따라 500미터 정도 달리면 그 끝에 등대가 있다. 돌아갈 때는 운진항을 지나 하모해수욕장을 거쳐서 마늘밭 사이를 달려간다. 이렇게 달리면 약 5킬로 30~40분 정도 걸리는 코스다. 중간중간 올레길 11, 12코스도 섞여 있고 돌담 사이 작은 골목길도 지나친다. 늦잠을 자거나 조금 늦게 나온 날는 골목길을 지나 등교하는 학생무리들도 볼 수 있다. 계절이 바뀌면 마늘밭이 무밭이 되기도 하고 감자밭으로 바뀌기도 한다. 밭에 심어진 농작물의 변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떤 작물이 심겨있고 추수하는지에 따라 마트에 가보지 않아도 대략적인 야채코너 물가 파악이 가능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빌딩 숲 사이나 차도 옆에서 매연을 마셔가며 달렸다면 지금만큼 달리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서울에는 한강이라는 좋은 코스가 있지만 우리 집 현관문 앞에서부터 시작되는 모슬포 아침 러닝 코스에 비하면 접근성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말 그대로 현관에서 신발만 신으면 한적하고 상쾌한 러닝 코스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10분 정도만 달리면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를 만날 수 있었고 그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 삼춘(어른들을 부르는 제주 방언)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 옆을 헤엄치는 수애기(돌고래)들까지 보면서 달릴 수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반년 동안은 매일 밤 잠들 때마다 다음 날 아침을 기대하며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기다려진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유년 시절 소풍 가기 전날 밤 이후로 정말 오래간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처음 시작은 감량 즉 다이어트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달리기를 시작하고 먹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식욕이 말 그대로 폭발했다. 달라진 점은 그전에는 (술을 포함한) 기름지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야만 식사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달리기 시작 이후론 뭘 먹어도 맛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풀이 맛이 있었다. 이러한 증상은 자연스럽게 건강한 식습관으로 이어졌다. 가려먹거나 의식하지 않아도 체중은 줄어들었고 이미 다이어트는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달리기에 ‘중독'되었다. 뭔가를 위해서 달리지 않는다. 달리기는 그냥 일상이었다. 먹고 자고 싸는 것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안 하면 이상한 일 중에 한 가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더 멀리, 더 오래, 더 다양한 코스를 달리고 싶어졌다. 제주도 구석구석 달릴만한 곳을 지도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트레일 러닝으로 이어졌고 송악산, 올레길, 크고 작은 오름들 그리고 한라산 둘레길을 포함한 여러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1년 내내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는 제주도는 태풍을 제외하곤 달리지 못할 이유가 거의 없다.
약 4년이 지난 지금 5킬로 달리기로 시작한 나는 어느새 50킬로를 넘어 70킬로를 달리는 트레일러너가 되었다. 식단을 하지 않아도 체중이 20킬로가 빠졌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다리 한쪽도 안 들어가던 서핑 슈트는 다시 제 주인을 찾았지만 슈트 주인이 산 달리기에 미쳐있어서 아직 바다에 가진 못하고 있다.
요즘은 가끔 헷갈린다. 제주도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이 달리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제주도에 왔기 때문에 내가 달릴 수 있던 건 아니었을까? 제주도가 나를 달리게 만들어 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