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이주하고 제주 남서쪽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왔다. 결혼 이후 처음으로 우리 집이 생겼다.
이삿날은 짜장면이지!
동네에 1박 2일에 나왔던 중국집이 있다고 해서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이사 왔을 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이기도 했고 시골 동네라 그런지 음식점들은 아직도 배달 앱보다는 전화주문을 더 많이 받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로 ○○번길 ○○번지 주택인데요 짜장면 두 개 탕수육 하나 배달되나요?"
"짜장면 두 개... 탕수육하나... 어디라고?"
"○○로 ○○번길 ○○번지요."
아니 누구 집이냐고?
"......"
누구 집이냐니... 이게 무슨 말일까? 내 이름을 묻는 걸까? 집주인 이름을 묻는 걸까? 짜장면 시켰는데 누구 집인지는 왜 물어보는 걸까? 최대한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다시 다시 차근차근 주소를 말했다
"저희 오늘 이사 왔고요. 여기 주소는..."
"주소 말고 내가 이 동네는 누가 어디 사는 다 아니까 누구 집인지 말해봐."
"......"
집주소를 다시 불러주기도 전에 사장님은 답답하다는 듯이 계속 누구 집인지 말하라고 다그쳤다. 오늘 이사 온 내 이름을 알리는 없고 집주인분이 어렸을 때부터 여기 살았다고 했으니 집주인 이름을 알려주면 될듯했다. 그렇게 짝꿍과 나는 짜장면을 먹기 위해 임대차 계약서를 찾기 시작했다. 널브러져 있는 짐들 사이에서 서류 한 장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집 보러 다닐 때 몇 번 지나쳤던 큰 길가에 있는 작은 마트 이름이 생각났고 결국 나는 큰길까지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을 '마중'나갔다. 사장님은 그릇을 찾아가셔야 한다며 집으로 안내하라고 하셨다. 큰길부터 집까지 가는 내내 사장님은 집주소 대신 누구 집인지 물으셨지고 집 대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여기~" 하면서 마치 처음부터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떠나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중까지 나가서 받아온 짜장면과 탕수육을 맛있게 먹고 빈드릇은 대문 앞에 내놓았다.
짜장면을 마중 나갔다 온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집 앞 텃밭 정리를 위해서 시멘트 블록 몇 장과 파쇄석이 필요했다. 근처 블록사에 전화를 걸었고 가격을 물어봤다. 블록과 파쇄석 배달을 위해 주소를 말씀드렸다.
텃밭 정리중
"어디로 갖다 드릴까?"
"○○로 ○○번길 ○○번지로 갖다 주시면 됩니다."
"아니~ 집이 어디 마씸?"
"아~여기 ○○○마트 근천 데요."
"누구네 집이우꽈?"
○○○씨 집이고 저희 이사 온 지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이~ 30분 정도 걸립니다."
기다렸다는 듯 최대한 당당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마치 익숙하다는 듯 집주인 이름을 말했다. 블록이 배달 오는 30분 동안 나는 내 멋에 취해있었다. 집주인 이름하나 알고 있는 게 이렇게 뿌듯할 일인가...
사실 내가 유독 뿌듯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계약서에 적힌 이름만 확인하고 말했다면 또 블록을 마중 나가야 했을 것이다. 계약할 때는 집주인의 아내분과 계약을 해서 그분 이름이 적혀있었고 실제로 어렸을 때 살던 남자분의 이름은 계약서에는 적혀있지 않았다.
이사 오고 며칠뒤에 앞집 어르신께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희 며칠 전에 이 집으로 이사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이~ ○○이네 이사완 나가 ○○이 삼촌하고 친구."
이후로 어르신의 자녀들 직장부터 어르신 밭이 어디 있고 무슨 작물을 심었으며 우리가 이사오기 전엔 누가 살았으며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장장 30분 동안 이어졌다. 어르신의 30분간의 일장연설을 꿋꿋하게 들어내고 서류상 어디에서도 알 수 없는 실재 집주인의 이름을 알아났다는 사실이 뿌듯했고 그리고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내가 기특했다. 서울에 살았으면 끝까지 실재 거주했던 집주인의 이름을 몰랐을 것이다. 물론 누구 집인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겠지만...
제주도라고 모두가 옆집에 누가 사는지 혹은 누가 살았었는지 알고 있는 건 아니다. 특히 서귀포나 제주시 쪽으로 갈수록 신축 아파트가 많고 사람도 많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밥숟가락 개수 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집 근처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그 시작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오늘부턴 그냥 지나쳐왔던 이웃들에게 가벼운 인사라도 먼저 건네어보길 조심스레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