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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안경'

by Goldlee



"뭐하노?"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전화기 화면에 보인다. 어떤 기대를 한 것처럼 설레며 받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어보는 질문에 기대는 사라졌다.

"누구십니까?" 퉁명스럽게 받았다.

"내다. 내 번호 지웠나? 내 일식이형이다."

"아! 형님. 전화기 바꾸고 저장된 번호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잘 지내셨죠."


안경회사를 하는 형님은 급한 성격대로 본론만 말한다. 이번 주 일요일부터 운동하려고 하는데 예전처럼 운영을 맡아 달라고 한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바로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안부를 물어본다.

"내일 뭐 하는데?"

"내일은 특별히 할 일은 없습니다. 도서관에 갈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고 후회했다.

"네가 왜?"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보인다.

"그냥 뭐, 책도 보고 뭐, 그러려고."

"내일 할 일 없으면 바다 가는데 같이 가자. 아침 8시에 강창교 건너 대실역 앞에서 보자."

"그러까 예."


요즘 내가 항상 메고 다니는 가방에 두 개의 안경을 넣었다. 물안경과 스포츠 고글, 그리고 선글라스를 쓰고 대실역 앞에서 기다렸다. 8시 30분쯤 전화를 했다. 당당히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놓고 5분 뒤에 보자는 전화 통화를 한 지 10분이 자나서야 만났다. 뒷좌석에 타고 지난주에 술 한잔하고 헤어지 사이처럼 인사하고 옆자리의 낯선 이를 위해 커피를 전달했다.

"차 바꾸셨네요."

"3년쯤 됐는데, 그만큼 오래 안 봤던 거가?"

"아! 4년 정도 지났으니 그런가 봅니다."

"내 배도 바꾸고 샾(배를 보관하고 정비하는 관리소)도 바꿨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로 갑니까? 누구랑 가길래, 저도 가도 됩니까?"

"상관없다. 이가리닻 해수욕장에 지인이 장사한다고 해서 가 보는 건데. 예전에 같이 다니던 동생들 말고 다른 동생들하고 가는 거라 같이 가도 상관없다."

"무서운 동생들입니까?"

"다 착하다."

"아! 양아치들인가 보네. 온몸에 문신으로 도배하진 않았지요. 형님이 대장입니까?"

"지랄한다. 애들 다 착하고 돈 잘 벌고 잘 노는 애들일 뿐이다."

창고의 대문이 안 열려 있어서 전화를 하는 형님의 목소리는 항상 화가 나 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말이 욕이다. 시발이 기본이다. 듣는 사람들도 대충 그냥 넘긴다. 욕은 형님에게 형용사인 것이다. 부사라고 해도 되겠다. 아니면 동사인가. 주어는 확실하다. 문장 전체가 욕이다.

큰 대문이 열리고 나란히 서 있는 힘 좋고 비싼 고급 SUV 차들과 그 뒤에 달려진 제트스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인 내가 봐도 비싸 보이는 보트를 보고 형님이 배도 바꾸셨다는 것을 알았다. 부러움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리고 스치듯 소개해 주는 양아치 동생들과 인사를 했다.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선글라스 속의 나의 두려움은 잠시나마 허세로 둔갑해 목을 쳐들게 했다.

포항 형산강 강변로에 보트와 제트스키를 내리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고 스포츠 고글로 바꿔 썼다. 예전에 타 본 적이 있어서 바람에 날려 가지 않게 준비한 것이다. 형산강 하구에서 포항제철을 바다에서 보며 왼쪽에는 신항만의 거대한 기중기와 오른쪽의 쭉 뻗은 호미곶을 보고 있으니 파도를 칼로 베며 빠르게 앞으로 나가는 보트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싫었다. 직접 조종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서 바람을 맞았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하늘과 바다가 하나인 듯 몽롱한 기분이 들 때 뒤를 돌아본다. 파란 바다를 가르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보트는 획을 긋고 있는 붓이라도 된 듯 뭔가를 새기는 듯했다. 뒤 따라오는 제트스키와 옆으로 앞으로 추월하며 좌우로 왔다 갔다 까부는 듯한 제트스키들. 지우는 건지 덧 칠 하는 건지 그들도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구나 싶었다.

포항을 나와 장사해수욕장까지 해변에서 보는 바다가 아닌 바다에서 보는 해변가는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큰 소리를 외쳐봐야 잘 들리지 않을 보트의 소음과 그 소음을 덮어버리는 더 큰 음악소리는 정말로 해변의 경이로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눈을 더 커지게 했다.

목적지인 이가리닻 간이해수욕장에 조용하고 조심히 진입했다. 바닷가에서 수영이라도 하려고 챙긴 물안경을 챙겼다. 장사를 하시는 지인분은 제트스키를 타던 동생 중 한 명의 지인이었고 해변가에서 매점을 하고 평상을 대여해 주는 이 동네 건실한 청년이었다. 우르르 몰려온 제트스키와 보트로 인해 해변에서 물놀이하던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나는 걱정하며 고글을 벗지 못했다. 평상에 잠시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하며 욕과 욕이 난무하는 대화를 이어갈 때 해양경찰이 들이닥쳤다. 민원이 들어와서 보트 면허증을 검사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누가 신고한 겁니까?"

경찰들보다 더 큰 덩치들이 일어나 웅성웅성거렸다. 나는 보트에서 제트스키로 옮겨 타고 해변에 내릴 때 온몸에 문신을 한 남자가 전화하는 모습이 떠 올랐다. 신고 전화였던 것이다. 왜 신고했을까? 평범한 부모라면 신고를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직접적인 해를 가하진 않았지만 잠정적 해를 끼칠 것을 염려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신고가 들어왔고 특별히 잘 못 한 건 찾지 못해서 해양경찰들은 면허증 검사만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더 커지며 누구에게 들으라는 듯 허공에 대고 소리친다.

"아까 그 새끼 아이가? 문신충?"

"맞나. 시바끄 함 디비까?"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선글라스 속에 있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술을 마시고 이것저것 재는 것 없이 주문하고 음식들을 입으로 구겨 넣고 담배 연기를 내뱉고 꽁초를 튕기고 그걸 다시 밟고 그 발을 다시 평상에 올리고 그곳에서 다시 음식을 놓고 그 음식을 집어넣고 다시 큰 소리로 욕을 하며 큰 사람이라도 되고 싶어 부풀어지고 있었다. 더 커진 배를 드러내며 빨개진 얼굴을 서로 쳐다보며 욕하며 지난번에 돈 얼마 쓴 얘기를 서로 추켜세워주는 모습에 애들은 착하다는 말이 뭔지 알고 싶었다.

해변가를 둘러보며 여자를 찾기 시작한 이 착한 동생들은 저 멀리 보이는 빨간색 비키니(유일한 비키니였다)를 보고 모두 고개를 돌렸다. 나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명이다."

"야! 막내 한 번 가봐라."

"그래 니가 가야 된다. 형님은 그만 선글라스 좀 쓰고 있으소."

쌍둥이를 임신한 것 같은 내 맞은편의 남자에게 누군가 말했다. 막내라는 동생은 그중에서 가장 배가 덜 나왔다. 나는 웃었다. '내 배가 더 덜 나왔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웃었다. 그 빨간색 비키니를 입은 여자분들은 끝내 제트스키도 보트도 타지 않았다. 매점으로 라면을 사러 온 모습을 보니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을 것 같은 나이로 보였다. 그리고 참 이 양아치들과 같은 평상에 앉아 있는 내가 너무 싫어졌다.

다른 해변가로 옮겨간다. 해변가에서 제트스키를 타고 좀 더 깊은 바다에 있는 보트로 옮겨 타고 해변가마다 들려서 사람이 있는지 여자가 있는지 비키니가 있는지를 훑어보는 모습이 참 한심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녀도 태워달라고 하고 타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선글라스 속 내 눈이 기대를 한다. 나도 같은 배를 타고 있음을 알았다.

사람이 없었다. 해변가는 겨울바다보다도 쓸쓸했다. 파도조차 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이 없었다. 간혹 서핑을 배우겠다는 무리들이 있었지만 잔잔한 파도에 노 젓기를 할 뿐이었다. 그저 보트와 제트스키는 바다를 가르며 달리기만 할 뿐이었다. 몇 번을 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돌아다녔지만 배를 내렸던 그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듯 서로 제트스키와 보트를 올려주고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에어컨의 찬바람을 맞으며 창밖의 노을을 보며 가을하늘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탄 곳에서 다시 내린 나는 고글을 벗고 선글라스로 바꿔 꼈다. 선글라스의 안경알이 벌어져 있어서 손때를 묻혀가며 고쳐 봤지만 벌어진 틈을 어쩔 수 없었다. 벌어진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거슬려 벗어버리고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아직도 내 귀에 들리는 욕들은 10시가 넘었는데도 누워있게 했다. 그리고 누워있는 나를 찾아온 스마트폰은 심심하다며 졸라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일어서서 씻고 나간다. 독서토론을 하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노인과 바다'를 토론한다고 해서 나갔다. 그리고 틈이 벌어진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나간다. 내 선글라스 속의 기대와 함께.


20250531- 봉산문화거리의 하늘(독토가기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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