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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커피'

by Goldlee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항상 비슷하다.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아요."

술을 마시지 않으니 시간이 남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향기가 남고 커피를 않으니 돈이 남는 것 같다.

커피는 살면서 세 번 마셨다.

중학생이었을 때 엄마친구분들이 남기고 간 커피를 마셔본 기억이 있다. 그날 저녁잠을 못 잤고 심장이 두근거렸었다. 잘못된 음식을 먹은 정도의 기억이었다. 두 번째 군대에 가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아 대기병으로 앉아 있을 때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말년병장에게 이끌려 자판기 커피를 마신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누나나 여동생이 있냐?"

"네. 있습니다. 누나 있습니다."

"그래, 몇 살이지?"

"저 보다 한 살 많습니다."

"넌 몇 살인데?"

"저는 23살입니다."

한두 살 차이가 엄청 컸을 그때는 나보다 어린 말년병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재미없어졌다는 듯 빨리 마시고 가자는 말을 한다. 뜨거운 커피를 한 번에 마시고 그날 나는 잠을 못 잤다. 잠을 자려고 해도 뒤척임만 더 할 뿐이었다. 다음날 소대장에게 보고가 되어 관심병사 취급을 받았지만 커피를 못 마신다는 말에 나를 자판기 앞에서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커피와 나는 그런 관계가 되었던 것이다.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는 시간. 인간이 할 일이 없으면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마신 커피는 신입사원으로 거래처를 가면 물어보는 귀찮은 커피였다.

"커피드릴 까요?"

"아뇨, 저는 물 한잔 마시면 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한잔 하세요."

대부분 커피를 한잔 권하는 사람과 가져다주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입으로 선심 쓰듯 하는 사람은 쉽게 말하고 그래도 배려있고 존중한다는 식의 눈빛으로 말한다. 가져오는 직원은 대부분 귀찮은 눈빛이다. 왜 내가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우선이고 바쁜데 지가 안 하고 왜 시키는 건데라며 마지못해 가져오는 눈빛이었다. 항상 물을 마신다고 하고 직접 물 한 잔을 직접 받아 마셔버리면 일어서다가도 그냥 앉아 있는다. 쓸데없이 시간 쓰지 말라고 미리 움직여 버린다. 그러면 대부분 어색한 웃음으로 할 일은 다 한 것이 된다. 쓸데없는 형식이 무마되는 것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기까지 했던 마지막 커피를 내어준 그 사람이 기억난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작은 커피알갱이를 직접 갈아서 거름망에 대고 걸러주기까지 하는데 신기해서 가만히 보고 있었고 자판기가 아니고 커피믹스가 아닌 원두커피의 맛은 어떤지 궁금해 마셔버리고 말았다. 그날 잠을 못 잔 건 마찬가지다. 심장의 두근거림도 커졌다. 그리고 호기심은 무섭다는 것도 알았다. 그 뒤로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없다. 여전히 커피만을 마시러 가는 시간과 장소에 대해 자발적이진 않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 저래서 사회생활 잘할 수 있기는 한 건가?"

우려와는 다르게 잘 못 하지는 않았다.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시간에 다른 걸 했으니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한 셈이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제 무엇을 봤는지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말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는 지난 이야기다. 느긋하게 자신의 예전 이야기 또는 남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는 고상한 척 무리를 형성하고 그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쓴다. 담배도 마찬가지다. 담배를 피우는 자들의 유세가 대단했다. 혼자도 피우지만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권하고 권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회식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면 그 시간에 같이 나가 피우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뻘쭘함을 견뎌야 하는지 아는가?

"이대리님은 안 가세요?"

"네. 저는 담배 끊었어요."

이제는 아직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냐는 핀잔을 했겠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자는 사회부적응자 취급을 당하기도 했었다. 담배는 몸에 좋을 리 없겠지만 정신건강에는 이로운 점도 있긴 하다. 몸속에 노폐물을 물을 마시고 내 보내듯 내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것들을 그냥 내보낼 수 없을 때 담배연기가 도와주는 듯하다는 것이다. 혼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연기를 자세히 보면 보일 수도 있다. 그 안에는 후련함이란 게 함께 빠져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술을 왜 안 마셔요."

"술 마시면 개가 됩니다."

이 대답을 듣고 나서 술을 권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 올해 1월에 마시고 10월인 지난주에 마셨다. 오랫동안 나를 자극한 사람이 없었는데 지난주에 술을 마시길 권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내 모습을 보기 위해 더 권하고 더 따르고 더 지켜본 그 사람이 보고 싶었던 개 같은 내 모습은 없었지만 다시 볼 수 없는 망설임을 가지게 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내 대답을 듣길 원했고 평가했다. 나는 면접을 보는 듯했고 불쾌하지 않아 계속 호응해 준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에서 나의 금주는 끝이 나고 말았다. 토요일에 마신 술은 일요일을 버리게 했고 화요일인 아직도 정상은 아닌 듯 활기가 없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가장 좋은 점이 시간이 남아서 좋았는데 역시나 다시 마셔보니 시간을 버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술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겠다.


세 가지를 하지 않으면 생기는 것이 있다. 시간. 그리고 알게 된다. 커피를 마시는 나, 담배를 피우는 나, 술을 마시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남는다. 그래서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기까지 한다. 뻔한 이야기일 테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무엇이 생긴다면 커피와 담배와 술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혼자서 할 수 없는 불안감을 커피를 마시자고 담배를 피우자고, 술을 마시자는 말로 함께하기를 강요해도 그 울타리 안을 기웃댈 필요도 없이 혼자서 시간의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대답한다.

"커피를 못 마십니다."

"담배를 끊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개가 됩니다."

20250531- 인더가든의 피아노 위에 놓여져 있던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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