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모임 '오감'
2023년 뜨거운 여름날씨가 싫어진 하늘은 억수 같은 비를 한정된 곳에 집중적으로 내려주고 있었다. 여수에서 배를 타고 들어 온 나를 반기는 듯 내리자마자 쏟아지고 있었다. 금오도 비렁길은 비와 함께 하게 되었다. 질퍽한 산길은 점점 더 들러붙어 가지 말라고 붙잡는 듯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쯤. 쏟아졌던 비는 나를 반기는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돌아가라는 뜻이었을까. 몇 시간을 혼자 걷다가 마주한 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을 지나치고 보여진 완벽한 검은색의 길. 그 완벽한 검은색의 길은 지금껏 살면서 본 적이 없는 그런 암흑이었다. 눈을 감아도 완벽하게 어둡지 않은데 그 길은 눈을 뜨고 있는 나에게 보여지고 있었다. 그 완벽한 검은 길을 마주했을 때는 돌아가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저 진흙 속으로 다리가 박히고 있을 뿐이었다. 그 검은 길은 무엇이었을까?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날의 그 검은 길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에게는 신기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다는 그런 방법은 아직은 모르지만 나는 눈이 바뀌어진다. 얼굴에 있던 눈이 뒤통수에 간 적이 있었고 손바닥에 간 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다른 사람의 이마에 붙어 그 사람이 보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지만 가끔 있는 일이라 바뀌고 나서는 당황하지만 금세 잊어버리기도 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뒤통수에 눈이 갔을 때는 머리카락에 가려 깨끗하게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뒤통수에 있던 눈을 통해 진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존경합니다. 형님.''멋지십니다. 사장님.''사랑합니다. 고객님.'라고 말하는 세상은 뒤돌아서면 '빨리 꺼져줄래. 인간아.''돈만 밝히는 인색한 사장새끼.''오지 마라 제발, 딴 데 가라. 호갱아'라는 시선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내 뒤통수로 간 눈은 무서워했다. 앞에서 저런 사랑스러운 말을 듣고 어떻게 저런 눈빛을 하고 있을까 항상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서 머리카락 속에 숨어버린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다. 자는 건 아닌데 무서워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감고 있으니 잊어버리게 되고 숨어 있으니 잊혀져 버린 것이다. 사실 얼굴에 있는 눈만 있을 때가 훨씬 좋긴 하다. 좋은 소리를 진실이라고 듣게 되니깐 말이다.
손바닥에 눈이 갔을 때는 재밌었다. 얼굴에 있던 눈이 보기 불편할 때 손에 눈이 있으니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손을 들면 더 멀리 볼 수 있고 손을 벽에 넘겨 볼 수도 있고 작은 틈새. 구멍을 볼 때도 편했다. 얼굴이 들어가지 않는 공간에서도 손바닥에 있는 눈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바코드 찍는 기계 같은 느낌이다.'누군가의 정보를 찍어 식별할 수가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손을 내민다. 오른쪽 손바닥에 있던 눈은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그 사람을 식별한다. '어! 좋은 대학 나왔구나.' 이야~ 연봉 많이 받겠는걸.' '와~ 인맥 좋은데.'라는 정보가 들어온다. 이 정보는 믿을만하다고 믿어 버린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사람을 가려 만날 수 있다. '저 인간은 사람 무시해서 별로야.' '돈 좀 번다고 업신여기는 꼬락서니 보기 싫어.' '인맥자랑 하는 인간은 사기꾼이 대부분일걸.'이라는 생각에 가려 만나게 하는 내 손바닥에 있는 손이 싫어 악수를 잘하지 않게 된다. 지난주에 목요일 저녁 앞산을 올라 가는데 어둠 속에서도 나를 알아본 어떤 사람이 나를 부른다. 그리곤 안부를 묻는데 나도 모르게 바코드를 찍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내민 손에 자연스럽게 마중 나온 손을 잡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장갑 때문이란 걸 금방 알았지만 얼굴에 있는 눈으로 인사를 했으면서 다시 손에 있는 눈으로 인사하려는 자연스러움에 씁쓸하기만 했다. 무엇을 식별하고 싶었을까? 그 검은 길을 보기 전 한참 전 그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다. 경주터미널에서 MJ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내 두 손 가득 MJ의 얼굴을 담아 왔었다. '언젠가는 잊어버리겠지만 느낌만은 잊혀지고 싶지 않아서 내 손으로 널 담아 가고 싶다는 유치한 말을 하며 울었던 나를 보고 같이 울었던 MJ. 그래서 그런지 아직 기억한다. 그때는 눈이 손에 가지 않았으니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내 몸에서만 눈이 바뀌는 게 아니다. 어쩔 땐 다른 사람의 이마에 간 적도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있는 나를 본 것이다. 금오도 비렁길의 그 완벽한 검은 길을 마주하기 전. 몇 시간 만에 한 사람과 서로 교차해 지나갔다. 금오도 선착장에 내렸을 때 비가 억수같이 내려 그 비를 구경한다고 버스를 놓치고 나니 혼자 걷게 되었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몇 시간을 산속에서 진흙길을 걷고 있으니 외롭고 무서웠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보이는 어떤 사람이 숲에서 나오듯 부스럭 거리며 나오고 있었고 길 끝에서 서로 마주치고 응시하며 교차해 반대로 걸어갈 때까지 제대로 인식은 했지만 자세히는 볼 수 없었다. '근데 왜 저 사람은 혼자일까? 이런 길에서'라는 생각을 했고 기다렸다는 말을 하며 나를 혐오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그 시선을 나는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뭘 기다렸는데."
"괜찮아질 때를 기다렸어."
"내가 왜 괜찮아져야 하는 건데."
"내가 왜 지금 안 괜찮은 건데."
더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세상에서 착한 사람은 나니까, 더러워진 네가 괜찮아질 때를 기다렸단 말인가.
"내가 더럽혀졌었나?"
"^------^"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 같은 것을 지어 보이며 나를 보며 말한다.
"그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데."
"누가 기다려 달라고 했는가?"
더럽혀 지지 않았는데 깨끗해 지길 기다렸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본다.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대하듯 보고 있다.
"뭘 보는 데. 어딜 보는 건데."
나를 보는 더럽다며 쳐다보는 그 눈빛을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역겨움을 감추지 못하고 토해내 듯 구역질로 돌려주고 싶었다. 이런 대화가 지워질 때쯤 완벽한 검은 길 앞에서 나는 멈춰 선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그 사람은 나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스치며 내가 온 길을 걸어 들어가는 그 사람은 나였다. 내가 나를 본 적이 없으니 내가 나인 줄 몰랐던 것이다.
나는 그 완벽하게 검은 길을 지나왔을까? 돌아갔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그 완벽한 검은 길이 내 눈에서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날 그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나를 씻어주긴 했지만 말이다.